압박에 백기 든 文? 尹 “민생·안보 현안 얘기”

문재인 대통령(좌)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우). 시사포커스DB
문재인 대통령(좌)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우).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격한 신경전 끝에 역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 중 가장 늦은 대선 후 19일 만인 28일 청와대에서 첫 만남을 갖기로 하면서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가게 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신경전 끝? 文·尹 회동 왜 갑자기 성사 됐나

지난 16일 이뤄지기로 했던 두 사람의 회동은 인사권 등 문제에서 접점을 이루지 못하면서 사상 초유의 회동 당일 불발되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회동 무산된 지 12일 만인 지난 27일 오전에 문 대통령 측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윤 당선인 측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이 28일 오후 6시에 청와대 상춘재에서 유영민 비서실장,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배석 하에 회동을 갖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신·구 갈등이 풀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간 문 대통령 측과 윤 당선인 측이 충돌한 의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문제가 됐던 감사위원 인선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됐기에 회동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으로 관측되는데, 당초 공석인 두 자리의 감사위원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에선 문 대통령과 당선인이 각 1명씩 추천하자고 제안했지만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에 대한 거부권을 달라면서 사실상 수용하지 않았다.

감사원장 등 7명으로 구성되는 감사원 감사위원은 감사 결과를 심의·의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다수결에 따라 처리한다는 점에서 현재 문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위원이 3명인 만큼 1명만 더 임명해도 과반이 되기에 윤 당선인이 취임 후 문 정부 관련 감사를 사실상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 윤 당선인과 청와대 간 물러설 수 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혀왔다.

하지만 자신의 퇴임 후 운명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는 이 사안을 청와대가 갑자기 양보했다기보다 레임덕 징조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 현실에 부득불 백기를 들어 회동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제청권을 가진 최재해 감사원장이 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었음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 측 의사에 반하는 감사위원은 문 대통령에게 임명해달라고 제청하지 않겠다고 지난 25일 인수위에 입장을 밝힌 점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감사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감사위원을 임명할 수 없기에 결국 어쩔 도리가 없어진 청와대 측이 윤 당선인 측에 조속한 회동을 제안하고 급물살을 타게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임기 마지막 날까지 권한 행사하겠다고 외친 게 무색할 정도로 이미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된 만큼 이번 회동에선 윤 당선인 측이 청와대에 보다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尹 “민생·안보 현안 얘기…조율할 문제는 따로”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은혜 대변인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일일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은혜 대변인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일일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 김기범 기자

일단 이번 회동에 대해 양측은 “사전에 정해진 의제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라며 모든 사안에 대해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자세를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김 대변인은 28일 인수위 브리핑에서 “민생에 대해 무한책임 진다는 자세로 임하려 한다. 코로나 손실 보상 문제는 무엇보다 시급하게 다뤄져야 된다”고 밝혀 윤 당선인이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50조원 지원 공약 관련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4월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28일 비대위 회의에서 “추경은 빠를수록 좋고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완전히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다만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 박 원내대표는 “지출 구조 조정만으로는 (50조원 추경안 추진이) 불가능하고 국채 발생이 불가피하다. 진정한 추경 의지가 있다면 인수위는 그 규모와 재원 마련 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인수위 측에 공을 넘겼다.

결국 현 정부에서 이에 적극 협력해줘야 가능한 사안인데, 기획재정부는 문 대통령 임기 내에 2차 추경안을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고 기재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밝혀 사실상 코로나19 추경엔 협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정작 문 정부는 재임 기간 동안 10차례의 추경을 편성해 예산을 151조원이나 늘려놓고 윤 당선인의 50조원 추경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이날 회동에서 또 다른 갈등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대선 과정에서 국민 판단을 받은 사안에 대해 인수위 방침에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며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경제부총리가 아닌 대한민국 경제부총리라는 생각으로 남은 임기 동안 사안을 판단해 달라”고 기재부 압박에 나섰다.

심지어 민주당에서도 박 원내대표가 홍 부총리를 겨냥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민생보다 나라 곳간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 관료의 문제”라며 한 목소리로 직격탄을 날렸는데, 6·1지방선거가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은 만큼 여야와 임기 말을 앞두고 있는 문 정부 입장이 다르다보니 이 같은 견해 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선 공약 중 청와대 이전 이행을 우선 역설해오다 상당한 반대 여론에 직면해 있는 윤 당선인도 일단 여론 반전을 노린 듯 이날 인수위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과의 회동 의제와 관련 “특별히 없고 조율할 문제는 따로 얘기할 것 같다”며 “민생이라든가 안보 현안 같은 것은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민생 관련 공약인 코로나19 손실보상 지원 공약에 힘을 실으려는 모습부터 보여 이 문제가 양측 회동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김 대변인도 같은 날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자리이나 당선인은 첫째 둘째도 민생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국민께 약속드린 코로나 손해배상에 청와대의 거국적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영업 제한이나 거리두기 행정명령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 손해배상을 당연히 이행해야 의무가 국가에 있다. 현 정부에서도 아마 지금 국민에게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코로나 문제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충분히 공감하고 책임 있게 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힌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靑회동 해도 文정부 ‘기싸움’ 여전?…檢 산업부 블랙리스트 압색도 변수

박범계 법무부 장관(좌)과 홍남기 경제부총리(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박범계 법무부 장관(좌)과 홍남기 경제부총리(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하지만 단지 코로나19나 경제 등 오직 민생 관련 현안만 다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데, 청와대 이전도 의제가 될 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윤 당선인은 말을 돌리려는지 ‘안보 현안’을 언급했으나 이날 “조율할 문제는 얘기할 것 같다”고도 발언했던 바에 비추어 보면 별도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간 여러 이야기가 돌았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설도 이번 회동에서 나올 수도 있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관위원을 비롯해 다른 공공기관 인선 문제도 의제로 나올 수 있다.

한편 홍 부총리가 윤 당선인 공약 추진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서듯 또 다른 문 정부 장관인 박범계 법무부장관도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에 엇박자를 내면서 인수위 업무보고를 하루 앞둔 28일에도 “수사지휘권 폐지와 관련해서 인수위 보고 자료에 반대라고 적어놓지 않았고 들으실만하게 부드럽게 표현해 놨다”면서도 “변경사항은 없다”고 못을 박아 인수위 측과 파열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박 장관과 이 문제로 상반된 자세를 취하며 윤 당선인의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에 찬성하는 검찰은 28일 ‘사퇴 종용’ 의혹 중심에 있는 한국 남동·남부·서부·중부 발전 4개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산업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 2017년 9월에 발전사 사장들을 광화문 호텔로 불러내 사표를 종용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안과 관련해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난 2019년 1월 산업부 고위 관계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수사해달라고 고발했었지만 3년 동안 수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이제 시작되는 모양새다.

이는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문 정부 관련 수사를 본격화하겠다는 변화 조짐으로 풀이되고 있어 박 장관은 이날 검찰의 강제수사 돌입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동부지검에서 압수수색했다는 것을 보고 받고 참 빠르네라고 표현했다”고 비꼬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는데, 향후 산업부에 대한 탈원전 관련 수사 등 사실상 문 정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을 우려한 문 대통령도 윤 당선인에 협조하기보다 끝까지 맞붙으려 할 수 있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갈등이 단순히 회동 성사 만으로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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