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진보개혁세력 단일화 좌초, ‘대권헌상론’ 티격태격

▲ 범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치권은 범진보진영이 단일화를 해내지 못하면 마지막 승부수를 잃게 될 거라 우려하고 있다.
범진보개혁세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시민사회쪽 인사도 참여 ‘범진보결집’의 밑그림을 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단일화는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쪽으로 속속 이탈하면서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인제 후보는 “홀로 간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단일화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정동영 후보의 앞날도 밝지 않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쳐둔다 해도 문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 후보측은 “후보 단일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일화를 서둘러야 한다”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문 후보측은 “단일화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후보 검증을 위한 토론회 개최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범진보진영의 모습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정몽준 의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영입하며 ‘대세 굳히기’에 들어간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단일화가 힘들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단일화를 해도 큰 효과가 있겠냐”는 비관론도 고개를 치켜든다.

범진보개혁세력 단일화가 난항을 빚자 이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어르신이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DJ 어르신 나섰다

지난 4일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행사장은 범진보개혁진영이 총결집한 자리였다. 이인제 후보가 빠지기는 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등 주요 대선후보와 신당 오충일 대표, 민주당 박상천 대표 등 주요 인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와 함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광태 광주시장 등 동교동 인사들과 임채정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수 노동부장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정, 문 후보가 나란히 맞은편에 앉자 “둘이 앉으니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문국현 후보까지 포함하는 후보단일화’를 주장했던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본 것. 정치권은 이를 은근한 단일화 압박으로 풀이했다.

정 후보는 “대통령님 덕분에 이렇게 자리가 됐다. 걱정 안 끼쳐 드리게 잘 협력해서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후보도 미소로 답했다.


63빌딩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7주년 행사
정동영·문국현 대선후보, 오충일·박상천 대표 등 범여 결집?

정, 문 후보는 이날 서로 김 전 대통령의 눈에 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문 후보는 “젊을 때부터 계속 유한에 있었냐”며 관심을 표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34년 동안 유한에서 일했다,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총회장을 역임했다. 홍업이(김 전 대통령 차남) ROTC 동기로 군 생활을 했다”며 개인적 친분을 강조했다.

문 후보보다 늦게 행사장에 도착한 정 후보는 “다음에는 청와대에서 모시겠다”고 말했다.


단일화 ‘同床多夢’ “힘겹네”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행사가 있던 날은 문국현 후보가 정 후보에게 단일화를 공식 제의한 날이기도 하다. 문 후보는 “16일까지 후보단일화 하자”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정 후보도 “하루라도 빨리 만나자”고 화답, 행사장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는 시작부터 힘들게 전개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은 안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놔 문 후보가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전국 방송 1회, 지역방송 5회 등 총 6회 TV토론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고비’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신당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이명박-이회창’, ‘권영길-타 후보’ 등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TV토론 기회를 주는 대신 ‘정동영-문국현’ TV토론을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자”고 요청했다. 선관위 ‘단일화 TV토론 중계 금지’의 우회로를 찾자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한국당 김영춘·정범구 선대본부장은 “전국을 돌면서 참여정부 5년 실정에 대한 씻김굿을 해야 한다. 요식적인 절차는 의미가 없다”며 이를 거부, TV토론 6회를 고수했다. TV토론이 ‘나비의 첫 날갯짓 한번을 폭풍으로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민 본부장은 “문 후보쪽이 단일화 의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단일화 논의와 관련해 시민사회 인사들에게서 문 후보 태도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문 후보가 외면당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중재를 맡기로 했던 시민사회인사 9인모임도 “양당이 합의도 못하고, 문 후보쪽이 미합의사항에 대해서는 권한을 위임하겠다는 약속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중재에 나설 수 없다”며 중재 중단을 선언했다.

이인제 후보도 단일화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의 행사 불참에 대해 “유세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범여권 단일화에 응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의 불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후보는 범여권 후보단일화 시도에 대해 “원칙과 명분을 잃고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내세운 야합”이라고 비판한 뒤 “민주당 노선에 기반한 정권을 세우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대선 완주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몸집 커지는데 뜨질 않아


후보 간 단일화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지만 범진보진영의 결집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이 신당에 합류했으며 신국환 의원도 신당에 새 둥지를 틀었다.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와의 단일화·연대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동영 ‘문국현 감싸안기’ 난항…이인제 독자행보 가속화
“‘이명박 대세론’에 치여 이대로 지리멸렬 하지는 않을 것”


한 정치분석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범진보진영의 후보단일화는 대선 최고의 변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 기운도 거의 소진한 상태”라며 “이제 ‘모이는’ 것 보다는 ‘뜨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민심을 뒤엎을 ‘태풍’이 될 수 없으면 그 효과는 미미하리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시각도 이와 같다. 문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이인제, 이수성 후보 등 범진보진영의 대선후보들과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는 것이 정동영 후보측의 계산이지만 범진보진영의 지지율이 모두 모인다고 해도 30%에 미치지 못한다. 45~5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게서 역전을 거두기 위해서는 +α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기적 문제도 빼 놓을 수 없다. 대선은 19일이지만 부재자 투표는 13, 14일 실시된다. 단일화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늦어도 부재자 투표 전 단일화가 성사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의 독주를 가장 견제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 범진보진영”이라며 “우왕좌왕 하는 듯 보이는 모습 뒤에는 ‘대세론’에 치여 이대로 지리멸렬하지 않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막판 단일화와 지지율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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