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분석에서 식신(食神)은 천연의식주이고 상관(傷官)은 인위적인 의식주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 사주분석·운세분석에서 동원되는 육신(六神)들 중에서 식신(食神)은 타고난 천연적인 의식주이자 생산수단이다. 반면에 상관(傷官)은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 내야하는 인위적인 의식주이자 생산수단이다. 이런 상관(傷官)의 운세기간에는 어떤 자세로 처세를 해야만 성공적인 처신이고 본인에게 유익한 운세코칭이 될 수 있을까?

이처럼 상관(傷官)이라는 육신(六神)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의식주와 생산수단을 생산한다고 하드래도 결코 천지신명을 구성하는 하늘과 자연의 섭리를 등지고서는 뭐든 제멋대로 생산해 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식신(食神)처럼 천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傷官)의 역할은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의식주를 생산하고 만들어내는 데에 몇 배의 노력과 머리를 더 써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령 인위적으로 의식주를 제아무리 생산을 해낸다고 하드래도 자연적으로 마냥 주어지는 천연과실처럼 풍족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황무지나 사막에서 농사를 짓거나, 심신산골의 산골짜기에서 화전(火田)을 일구는 경우를 보자. 이같이 농경의 조건이 불리한 경우에서는 제아무리 애를 쓰고 몸부림을 쳐봐도 결실한 수확의 내용이 적어서 결과물이 박절할 뿐이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다하지만 거둬들이는 수확물이 적다는 말이다.

그래서 상관(傷官)의 역할은 더욱 더 머리를 짜내야만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만 하며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상관(傷官)은 늘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부지런히 활동을 하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할 따름이다.

결국 상관(傷官)은 허허벌판의 메마른 광야에 버림받은 천애의 고아처럼 주변의 그 어떤 누구도 보살펴주는 이가 없는 처량한 신세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상관(傷官)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부모형제와 주변의 따뜻한 손길도 공부도 직장도 사회활동도 이러한 모두를 자신이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상관(傷官)에게 베풀어지는 그 누구의 어떤 은혜나 은공도 시혜(施惠)를 받지 못하게 금지되어 있음이고 가로막혀 있는 처지다.

그래서 상관(傷官)인 그를 보살피려고 부모나 후견인이 등장해 나타나면 그러한 인연을 단절시켜버리기 위해서 천지신명은 부모와 후견인을 내쳐서 분리를 시켜버리고 만다. 그에게 호의호식이 베풀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도 모두 다 분리시켜서 회수하고 철수시켜 버림으로써 철저하게 고립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천지만물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불평불만을 해댈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이렇게 가시밭길에서 성장한 천애의 고아이기 때문에 상관(傷官)인 그는 덕성과 관용이 없고 대신에 차가운 얼음처럼 냉혹하고 호전적일 뿐만 아니라 무자비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타고난 사주(四柱)가 상관(傷官)의 인생은 부모형제·후견인에 차단당한 인간고(人間苦)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고(人間苦)란 사람이 세상살이 속에서 겪으면서 받는 고통을 지칭하는 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인간고(人間苦)를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보편적인 정의를 하고 있다.

누구나 살아생전에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살이 속에서 겪으면서 받는 고통이라는 인간고(人間苦)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숙명이자 과제다. 저마다 타고난 사주팔자 속에 끼어 숨어있는 고약한 흉살(凶殺)들로 인해서 후천적인 삶 속에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고(人間苦)를 완전히 제거해 소멸할 방법은 묘연하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봉인(封印)해 최소화하며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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