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하동 '평사리 섬진강'



전라도나 경상도
여기저기 이곳 저곳
산굽이 돌고 논밭두렁 돌아
헤어지고 만나며 아하,
그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움에 목말라
애타는 손짓으로 불러
저렇게 다 만나고 모여들어
굽이쳐 흘러
이렇게 시퍼런 그리움으로
어라 둥둥 만나
얼싸절싸 어우러지며
가슴 벅찬 출렁임으로 차오르나니
어화 어화 숨차
어화 숨막히는 저 물결
어화 어기여차
저 시퍼런 하동 포구

- 김용택 '섬진강 10' 모두

섬진강(蟾津江).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 두꺼비 나루? 근데 수많은 이름들을 비껴 두고 왜 하필이면 이토록 아름다운 강을 섬진강이라고 불렀을까. 전남 광양군 다압면 섬진마을에 두꺼비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섬진강 유래비'에 적힌 사연은 대략 이러하다.

1385년, 한반도 남해안 곳곳에 왜구가 자주 나타나던 고려 말엽 우왕 때 광양만과 섬진강 주변에도 왜구들이 나타났다. 왜구들은 하동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나룻배를 타고 섬진마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수만마리의 두꺼비들이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와 왜구들을 바라보며 마구 울부짖었다.

희희낙락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왜구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왜냐하면 저만치 강 건너 나루터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몰려 들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왜구들에 의해서 마구 짓밟힐 뻔했던 섬진마을이 두꺼비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섬진강으로 가는 길은 진주에서 시작하여 다솔사로 이어졌다. 사천시 봉명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다솔사는 지증왕 12년, 서기 511년에 연기 조사가 세운 가람이다. 이 가람은 처음에는 영악사(靈嶽寺)라 불리다가 선덕여왕 5년, 서기 636년에 건물 2동을 새로 지으면서 다솔사라 불렸다고 한다. 그 뒤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영봉사'라 고쳐 부르다가 신라 말엽 도선국사가 고쳐 지으면서 다시 다솔사라 불렀단다.

다솔사는 대웅전 후불탱화 속에서 108점의 사리가 발견되어 학자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한 가람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제의 그물망을 피해 숨어든 곳이며 작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쓴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가람 입구 왼편에 서 있는 해우소와 대웅전 뒤편에 있는 야생차밭이다.

다솔사를 뒤로 하고 곧장 하동으로 나선다. 읍내 곳곳에 동이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하동 읍내를 벗어나자 이내 섬진강이 어서 오라는 듯 늦가을 햇살을 물살 위에 톡톡 터뜨리고 있다. 강둑 주변에는 재첩국을 비롯한 산채비빔밥, 은어 튀김, 매운탕, 녹차 등의 간판이 줄지어 서 있다.

섬진강.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에서 샘솟아 전북 남동부와 전남 북동부, 경남 남동부를 흘러 남해안의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총 길이 212.3km로 우리 나라에서 아홉번째로 긴 강이라고 했지, 아마. 그래, 섬진강은 오랜 세월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빚은 모래가 곱기로 이름 난 곳이기도 하지.

어디 금빛 모래뿐이랴. 바닥이 환히 보이는 섬진강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 재첩과 은어, 참게는 어찌하랴. 은빛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톡톡 터뜨리는 섬진강에 발을 담그고 갖가지 산나물과 녹차를 어루만지고 있는 지리산은 어찌하랴. 섬진강과 지리산을 벗 삼아 몇 송이 풀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어찌하랴.

섬진강의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물과 재첩, 소금으로 우려낸 푸르스름한 재첩국이다. 그 중에서도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경남 하동 모래밭에서 잡히는 자잘한 재첩이 으뜸이다. 재첩국은 황달, 간장병 등에 아주 좋고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 예로부터 속풀이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별미다.



"저기 파는 재첩은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 수입산입니다. 섬진강 재첩은 이 고장 사람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지요. 특히 이곳에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뒤로는 이곳에서도 예전처럼 재첩이 그리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여튼 어디 가나 사람이 문제야."
"광양 제철소가 들어선 뒤부터 저쪽 들판에는 아예 바닷물이 역류를 해서 농사조차도 짓지 못한대요."

조금 더 달려가자 저만치 섬진강 언덕 위에 악양루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새처럼 포근하게 엎드려 있다.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에는 늦은 오후의 가을 햇살이 일곱색 무지개를 챙그랑 챙그랑 빚고 있다. 그 무지개 사이에 텅 빈 나룻배 몇 척이 자꾸만 몸을 뒤챈다. 어서 나를 묶고 있는 고삐를 풀어 달라는 듯이.

악양루를 지나 쏟아지는 늦가을 햇살을 끼고 한동안 달려가자 저만치 지리산 자락 아래 박경리의 대하 장편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 마을이 까마득히 보인다. 그 마을 앞에는 악양 들판이 가지런한 벼 밑둥을 물고 넓다랗게 펼쳐져 있다.

그래, 지금은 드넓게 펼쳐진 저 악양 들판도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티없이 맑은 섬진강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곳에 19번 국도가 생기면서 55만여평의 모래톱이 지금처럼 문전옥답으로 변했다. 지리산 형제봉의 치맛자락에 해당하는 악양들판의 처음 이름은 '악양무딤들'이었다고 한다.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지형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한국전쟁 때 동족 간의 전투가 치열했다는 악양 들판. 그때 이 들판에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다가 반쯤 뜬 눈 차마 다 감지 못하고 애처롭게 죽어갔을까.

악양무딤들을 품고 있는 산자락 아래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 마을 곳곳에는 금세 쓰러질 듯한 초가집들이 잿빛 지붕 위에 박과 수세미를 덩그러니 올려 놓고 있다. 황토 마당 곳곳에 놓인 장독대, 을씨년스럽게 놓인 마루, 마루 아래 돌돌 감아놓은 덕석, 동이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

언뜻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날 내가 살던 고향으로 되돌아온 듯하다. 흙담 곁에 선 코스모스가 까만 꽃씨를 터뜨리고 있는 골목길을 돌아나가자 촤참판댁의 솟을 대문이 초라한 초가집들을 발 아래 짓뭉개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곧 드라마 <토지>를 촬영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 세워진 대부분의 초가집과 가와집들은 예로부터 있었던 집들이 아니라 드라마 <토지>를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다.

저만치 악양들 왼편 섬진강변 잔디밭에는 대봉감 축제가 한창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부르기도 좋고 듣기에도 좋은 '동이감'이라는 우리 낱말을 버려 두고 '대봉감'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래야 죽어라 농삿일만 하는 무지랭이 내음이 가시고, 솟을 대문을 단 최참판 댁처럼 좀 더 근사하게 보이는 것일까.



잠시 요란한 축제장을 곁눈질하다가 길게 드러누운 섬진강 둑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섬진강에는 지리산의 단풍을 태우는 늦가을 햇살이 구슬처럼 와르르 쏟아져 금빛 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끝 간 데 없이 드러누운 모래밭 한켠에는 억새가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물고 은빛 머리칼을 빚으며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저물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바라보는 섬진강. 늦가을 섬진강은 온통 금빛과 은빛으로 눈이 부시다. 마치 저물어가는 가을과 햇살이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듯하다. 아니, 늦가을 햇살이 저만치 달아나는 가을의 그림자를 밟으며 끝내 보내지 않으려는 듯 용을 쓰는 것만 같다.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 않은 섬진강. 문득 김용택의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이 든다는 싯귀가 떠올라 이대로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늦가을의 옷자락을 꼬옥 물고 서 있는 저 은빛 억새처럼 죽을 때까지 머물고 싶다.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니
이 땅에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김용택 '섬진강 3' 모두

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이 쓸쓸해질 때면 훌쩍 길을 떠나 다시 찾고 싶은 곳. 사랑하는 그 누군가 멀리 떠나 있을 때, 사랑하는 그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운 그런 날 천천히 걷고 싶은 섬진강. 그래, 마음이 저 강물처럼 어디론가 자꾸만 흘러가는 늦가을에는 재첩처럼 모래밭에 퍼질고 앉아 울컥울컥 지는 핏빛 노을에 잠겨 보자.

☞가는 길 1.서울-대전-전주IC-19번 국도(섬진강변)-남원-구례-화개장터-하동 악양-평사리(지내) 섬진강
2.부산-마산-진주-하동읍-만지배밭-악양-평사리(지내) 섬진강
3.광주-곡성-구례-화개장터-악양-평사리(지내)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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