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도 박도 못하는 검찰 승부수 작전명 ‘007’

삼성 비자금 수사를 둘러싼 검찰과 국회, 청와대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삼성그룹 불법 비자금’ 파문이 ‘떡값 명단’ 등 로비 의혹으로 번지며 각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것.

검찰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정확한 수사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야 하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이 밝힌 로비명단에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와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등 검찰 수뇌부가 자리하고 있는 등 검찰 내 40여 명이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는 말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회는 당장 “못 믿겠다”며 특검을 들고 나오고 있고 고발인들도 검찰이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검찰의 앞길은 오명으로 얼룩지게 된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검찰, 그들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와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뇌부도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대독한 전종훈 신부는 “임 내정자는 2001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때 내가(김용철 변호사) 관리대상 명단에 넣었다. 임 내정자를 관리하던 사람은 구조본 인사팀장으로 임 내정자의 부산고 선배인 이우희씨”라고 밝혔다.

전 신부는 이어 “이 중수부장은 청와대 사정비관시절부터 관리대상이었으며 정기적으로 현금이 전달됐다. 이 위원장에 대한 로비는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이 맡았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 등과 삼성그룹은 사제단의 발표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했다. 임 내정자는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을 통해 “김 변호사와 일면식도 없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마주친 기억조차 없다. 이우희씨가 고교선배인 것은 사실이나 그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어떤 청탁이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며 로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중수부장과 이 위원장도 전혀 사실 무근이며 모함이라고 펄쩍 뛰었다. 삼성그룹도 “로비 명단과 관련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악의적 주장”이라고 밝혔다. 제진훈씨와 이우희씨는 김용철 변호사를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과 국회, 청와대도 발칵 뒤집혔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검찰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사제단측에 미리 ‘떡값 검사’ 명단을 달라고 했다. 명단을 달라고 할 때는 주지 않다가 하필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안으로 굽는 팔 못 믿어”

사제단의 명단 발표는 검찰에게 시련의 시작이었다. 정치권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이유로 들어 특검법안을 제출했고 이 사건의 고발인이었던 참여연대 등도 이와 같은 이유로 ‘고발인 조사’를 거부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도 잘못한 게 많이 있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사필귀정이 아니겠냐. 가장 중요한 건 실체적 진실이 뭔지 밝히는 것이다. 30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진실 위에 이뤄진 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란 교훈을 얻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임을 시사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3당은 14일 공동으로 삼성의 불법대선자금과 각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내용의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날 발의한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은 1997년 이후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주체·방법·사용처, 정·관·법조계 등 로비, 불법상속 의혹 등이다.

반면 한나라당이 15일 별도 제출한 특검법안은 2002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과 노 대통령 당선축하금 등 최고권력층 로비 의혹,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이 제기한 비자금 의혹에 집중됐다.

당의 의견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범여권은 2002년 대선자금, 이른바 ‘당선축하금’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유언비어 유포라며 반발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수사대상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의 불법상속과 언론·학계 로비의혹 수사에 대해선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다. 이는 범여권 특검법에 포함된 사항이다.

검찰은 특검법에 대해 수사대상이 너무 포괄적이고,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종료된 사안,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정치권은 “검찰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검찰총장 내정자까지 명단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른다는 표정이다.

입 다물고 강행 돌파

검찰이 상황타개책으로 내세운 것은 특별수사·감찰본부다. 검찰은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특수2부에 배당했다 4일만에 특별수사·감찰본부로 옮겼다.

김경수 대검찰청 홍보기획관은 “수사감찰본부를 설치해 이번 사건을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며 수사감찰본부 설치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가장 효율적으로 밝힐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홍보기획관은 또 “최근 구체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기는 하나, 검찰총장 후보자 등 일부 검찰간부들이 삼성그룹의 관리대상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국민들의 의혹이 증폭됨으로써, 기존의 수사지휘 체계에 따른 검찰수사로는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수사주체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독립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독립적 수사’란 수사과정이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나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미 ‘뇌물 검사’ 명단에 포함돼 논란에 휩싸인 이들에게 수사 진행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결단은 이번 사건을 정면돌파로 뚫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고위 인사들이 삼성과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점에 이번 사건을 특검팀에 넘기게 되면 한계를 자인하게 된다는 것. 이는 통상 절차대로의 수사는 고발인의 협조마저 이끌어 내지 못해 더 이상의 진척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여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검찰은 대검 중수부장 이상의 직책을 가진 이에게 특별감찰본부를 맡기고 뇌물 의혹 뿐만 아니라 비자금 조성 등 삼성그룹 관련 의혹 전반을 수사키로 했다. 또한 특별감찰본부 구성에 임 내정자나 이 대검 중수부장과 관련성을 가진 이들을 최대한 배제한다는 방침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참여연대는 검찰이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구성,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검사 대상 로비 의혹 사건 수사를 맡기로 한데 대해 “로비 연루 의혹이 있는 검찰 간부를 지휘 계통에서 배제하는 등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만 보인다면 적극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김용철 변호사가 나머지 ‘떡값 검사’ 명단을 모두 공개해야 공정한 수사 본부를 구성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에는 “명단을 완전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수사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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