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정에서 늦가을 한때를 즐기다



단풍이 빠른 속도로 남하하더니 남도를 온통 빨갛고 노랗게 물들여 놓았다. 남쪽의 유명 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자태를 자아내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연일 산과 들을 찾고 있다.

또 일요일(11일)이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 어디로 갈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을 찾자니 줄을 잇는 자동차 행렬과 발 디딜 틈이 없는 행락객들 틈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평소 자주 가는 곳은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색다른 곳이 좋겠다. 가을의 정취도 만끽할 수 있는 곳. 아이들도 심심해하지 않고 즐거워할 수 있는 곳.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곳이면 더 좋겠다. 마땅한 곳을 찾자니 집에서 조금 멀다. 가까운 곳은 조금 그렇다. 일요일인데….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꼬드겨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남들은 나들이 코스를 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절반이라고 말하는데.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섰으니 그 즐거움의 절반은 이미 포기한 셈이다.

자동차 바퀴를 굴렸다. 방향은 모른다. 하지만 목포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전히 습관적이다. 날마다 출근길이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가보자. 목적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가다가 멈추는 곳이 목적지라는 생각이다.

가는 길에도 ‘어디가 좋을까’ 고민은 계속된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아빠의 그런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나주에 있는 동신대학교 앞,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학교 풍경이 꽤 멋스럽다.



“애들아! 우리 여기서 좀 쉬었다 갈까?”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는 둘째 예슬이가 찬성을 한다. 큰아이 슬비도 동조한다. 학교 안에 있는 화장실을 구경하고 나온 아이들이 조금 놀고 가잔다. (목적지도 없는데) 그러자고 했다. 예슬이가 대뜸 차에서 장난감 활과 화살을 꺼낸다.

슬비는 완연한 가을색으로 물든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단풍나무는 빨갛게,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었다. 그것을 쳐다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빨갛게, 노랗게 물든다. 슬비도 감탄사를 자아낸다.

슬비와 예슬이가 은행잎 수북한 길을 걷는다. 예슬이가 허리를 굽혀 은행잎을 한 움큼 쥐더니 공중으로 날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비도 그렇게 한다. 십이지간상 앞에서는 슬비가 띠별 설명을 꼼꼼히 살펴보며 동생한테 아는 체를 한다.

가만히 두고 보니 둘이 알아서 잘 논다. 큰아이의 의견에 작은 아이가 따르고, 때로는 작은 애 의견에 큰애가 따라가면서…. 잘 됐다 싶었다. 아이들이 하는 대로 지켜보면서 같이 어울려 한참을 놀았다. ‘여기서 이렇게 놀다가 해 넘어가면 집에 가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잠시.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는 슬비의 말에 따라 또다시 자동차를 굴린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과자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샀다. 그리고 또 국도를 따라간다.

이번엔 무안에 있는 목포대학교 앞. 중천에 떠있던 해가 서서히 기울 채비를 하고 있다. 벌써 5시가 됐다. 요즘 해는 짧기도 한데. 금방 어두워질 텐데….

“여기도 단풍이 멋있던데, 우리 여기서 또 놀면 어떻겠니?”

둘째 예슬이가 ‘또 활쏘기 놀이를 하자’며 활과 화살을 가지고 내린다. 봄에 하얀색 꽃을 피운 벚나무의 단풍이 환상적이었다. 누렇게 변한 잔디와 그 위에 떨어진 낙엽도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겨준다.

예슬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활을 쏘느라 바쁘다. 슬비는 이리저리 거닐며 코끝으로 스치는 가을을 느끼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손이 떨려온다. 밖으로 드러나 있는 손이 쌀쌀한 날씨를 먼저 알아차린 모양이다. 금세 해가 기우는가 싶더니 사방이 어둠의 색깔로 변하고 있다.

“날씨가 춥다. 시간도 늦었다. 이젠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횡재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가 가을을 온몸을 느끼고 아이들도 비교적 재밌게 놀았으니 헛된 말은 아닐 것 같다. 하긴 여행이 별건가. 놀러 가는 것이지.

한나절 바깥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찾기에 충분했다. 가는 길에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혼잡한 곳에서 사람에 채이지도 않았으니 그 또한 좋았다.

아이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데려다 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놀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찰도 하면서 가을색깔도 눈으로 익혔을 것이다. 동심도 가을 색으로 새록새록 물들어 갈 터이다. 정말 ‘횡재’한 한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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