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잊을 수 없는


파라노이드
1) 편집증의, 피해망상의
2) (구어) 이유 없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 무한의 길, 무한의 죄의식, 무한의 침묵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가 당신에게 ‘지성적 진공(眞空)’을 말하려고 한다.

어느 날 알렉스는 친구 자레드한테 ‘파라노이드 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가자던 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깨자 혼자서 파라노이드 파크를 찾아간 알렉스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를 따라 달리는 기차에 매달리는 놀이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철도경비원을 죽이게 된다.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변변치 않은 습관적 사고’에 매몰된 부모, 일방적인 대쉬로 처녀성을 떼버리려는 여자 친구 제니퍼, 호감은 갖고 있되 핀트가 잘 안 맞는 자레드, 알렉스를 짝사랑하는 메이시 - 알렉스는 이런 주변 사람들 속에서 살인자의 비밀스런 고뇌 속에 파묻힌다.

그러나 과실치사를 범한 살인범의 고뇌는 관객이 원하는 스토리 라인 속에서 과장될 생각이 없다.

살인은 존재한다. 살해당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가해자-피해자 사이에 존재할 법한 감정의 교류는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우발적인 살인 - 살인할 만한 갈등이나 동기는 없었다. 알렉스가 때린 철도원은 기찻길 위에 쓰러져 다가오는 기차를 몸으로 받아 반토막 나 죽었다.

▲ '관계' 부재의 학교 속을 나 홀로


알렉스는 제니퍼가 보기에 이상하고 모호하다. 보통 청소년들이 왕성한 본능과 조기 성장욕에 조바심을 쳐서 몰입하게 되는 섹스, 마약, 우정 따위에 태무심한 알렉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니퍼. 되바라진 소녀 제니퍼는 학업, 미래의 꿈,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략 전쟁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다.

알렉스는 ‘이라크 전쟁’을 자신을 좋아하는 메이시에게 얘기한다. 일상을 벗어나는 창(窓)으로서.

알렉스의 대상 없는 시선. 일상 너머를 들여다보고 싶은 알렉스의 욕망 안에 이라크 전쟁이 존재할 뿐이다. 한 미국 청소년의 심리적 탈출구로서 존재하는 이라크 전쟁.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논리나 항변에 알렉스는 동감하지 못한다. 지적으로 무기력한 알렉스. 덩치만 클 뿐, 전쟁 삶 사랑 가족 제도의 모순 등에 대해 할 말을 할 수 없기에 침묵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발언할 혀의 무능력이 알렉스의 삶을 진공 지옥 속으로 내다박는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는 ‘제도적 지식’은 알렉스를 충동하지 못한다. 알렉스는 살인하게 되었고 그 살인을 통해 알렉스는 고독 속으로 처박힌다. 고립적 고독. 아무도 아무 것도 알렉스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알렉스조차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타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알렉스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범한 자신의 모호한 죄의식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자신을 갈구하는 관능적인 소녀와 가진 섹스의 감미로움조차 불행한 알렉스의 냉막(冷莫)한 고뇌를 지우지 못한다.

알렉스의 행동은 죽어버렸다. 알렉스의 삶은 마비 상태다. 침묵을 선택한 것은 알렉스가 아니다.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자유의 나라를 건설하려던 관념의 허울에 미친 미국에 태어난 알렉스는 지성적 노력으로 파괴 못한 원죄의식이 강요한 침묵에 평생을 붙박혀 약소국에게 총질을 해대는 군인으로 변신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의 비극이다.

▲ 그늘진 미국의 보통 청소년



<엘리펀트>를 감독한 구스 반 산트가 크리스토퍼 도일의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쓴 이 이야기는 11월 22일부터 명동 스폰지 극장에서 상영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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