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비운의 왕 단종의 발자취를 찾아서



바람이 제법 맵다. 추위에 놀란 단풍이 서둘러 잎을 떨군다. 가을은 이미 남쪽으로 도망친 후다. 가을이 급하게 떠나느라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비운의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 강원도 영월로 간다.

영월은 강원도 내륙에 자리잡은 고장이다. 편하게 넘는다는 뜻을 가진 영월은 그래서인지 산세가 편하다. 영월 입구에서 곤충박물관을 만난다. 영월은 박물관의 고장답게 책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등 박물관의 수가 열개나 된다. 영월군은 박물관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귀띔한다.

영월로 이르는 길은 소나기재부터 시작된다. 곤충박물관을 지나면 급하지 않은 고개가 하나 나타난다. 고개를 오르면 선돌 사진이 있는 큰 표지판이 나타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걷는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콧노래 한 곡쯤 부르면 선돌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이른다.

선돌은 크고 장엄하다. 선돌 아래로 강이 보인다. 서강이다. 서강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면서 서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강은 강원도 정선에서 흘러내려오는 동강과 영월에서 남한강이 된다. 남한강은 단양을 거쳐 충주, 여주, 양평을 지나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만나면서 한강이라는 큰 이름을 얻는다.

선돌 아래로 흐르는 서강은 빠르지 않다. 어진 영월 사람들의 심성을 닮아 순하게 흐른다. 선돌을 보고 오는 길에서 다람쥐를 만난다. 다람쥐는 산길에 떨어져있는 도토리를 주워 어디론가 사라진다. 다람쥐와 도토리의 인연에 대해 동화작가 유진아는 이렇게 썼다.

어린 다람쥐가 커다란 신갈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두 개 주웠다. 하나는 얼른 까먹고 나머지 한알은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린 다람쥐는 땅을 파고 도토리를 급히 숨겼다. 그리고 몸을 피했다. 그 후에 숨겨 둔 도토리를 잊었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그 위에 쌓였다. - 유진아 장편동화 '토리이야기' 한토막

땅에 묻힌 도토리가 후에 싹을 틔우고 후에 큰 신갈나무로 성장한다는 동화이다. 다람쥐 한마리가 만들어내는 늦가을의 풍경은 풍성하다.

소나기재를 내려가면 영월읍내이다. 여행객의 흥미를 끄는 것은 소나기재에 있는 소나무이다. 소나무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소나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조선 6대왕인 단종의 무덤인 장릉이다.

단종은 비운의 왕으로 기록된 왕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 당한 단종은 1456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를 온다. 그가 17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기까지 영월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되지 않지만 영월에 남긴 흔적은 대단히 많다.

장릉은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왕의 무덤이다. 삼척에 공양왕의 무덤이 있다고는 하나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음에 장릉이 유일한 무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장릉은 산 언덕에 위치한 탓도 있지만 다른 왕들의 능에 비해 화려하지 않아 좋다. 위압적이다 싶을 정도로 큰 다른 왕의 능보다 인간적이다.



장릉은 영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이다. 매년 4월초면 단종문화제를 개최하여 단종의 넋을 기린다. 또한 영월 사람들은 단종제 때 정순왕후를 선발해 단종과 해후하게 해준다. 정순왕후는 서울의 청계천 영도교에서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과 이별한 이후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 마음을 영월 사람들이 헤아려주는 것이다.

정순왕후의 능은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에 있다. 능호는 사릉(思陵)이다. 8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정순왕후이다. 그 때문에 사릉은 조선왕조의 여러 능 중에서 가장 애절하다.

늦가을의 장릉은 산책하기에 좋다. 능으로 오르는 길은 낙엽이 깔려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장릉에 이른다. 장릉엔 산책 나온 영월 주민들이 많다.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도 있다.

장릉에 있는 단종역사관에 가면 단종에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있다. 찬찬히 둘러보면 단종이 왜 영월로 유배를 왔는지, 또한 왜 죽임을 당했는지, 역사적 이유를 알 수 있다.

장릉을 나와 청령포로 간다. 청령포는 단종의 첫 유배지이다. 청령포에서 여행객을 반기는 것은 청령포를 휘감아 도는 물길과 자갈톱이다. 여행객을 실어나르는 배가 청령포에 닿으면 청량한 바람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청령포를 흐르는 물길은 선돌에서 보았던 서강이다. 물이 제법 깊다. 청령포의 백미는 소나무이다. 단종 처소 주변으로 잘 자란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스치는 강바람과 함께 한 세월 보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은 여행객의 마음 뿐, 청령포는 단종의 아픔이 곳곳에 서려있다. 처소 옆에 있는 관음송은 그 나이가 단종의 역사와 함께 한다. 처소 뒤로 가면 망향탑과 노산대가 있다. 단종이 올라 정순왕후를 그리워했다는 곳이다. 청령포 옛길에는 금표비가 있다.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비석이다.

청령포에서의 유배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해 늦장마로 인해 청령포가 물에 잠기면서 단종은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게 된다. 단종은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가을빛이 사그라지는 날 사약을 받는다. 550여년 전의 일이다.

그때 사약을 가지고 온 이는 금부도사 왕방연이다.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왕방연은 그날 청령포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의 넋은 영월 땅 곳곳에 있다. 관풍헌 인근에 있는 자규루는 원래 매죽루였다. 단종이 누각에 올라 '자규시'와 '자규사'를 읊었다고 하여 누각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 지금의 자규루는 대홍수로 폐허가 된 것을 정조16년(1791) 당시 강원도관찰사였던 윤사국에 의해 중건되었다.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 앉았어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 자규루엔 오르지들 마오 - 단종대왕의 시 '자규사' 모두

단종의 흔적을 찾는 여행은 금강정에서 마무리한다. 금강정은 동강변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정자다. 금강정은 영월 8경 중 금강추월, 태화단풍, 계산숙무, 봉소귀범 등 4경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1428년에 창건된 금강정은 한국전쟁 때 크게 파손되었다. 지금의 정자는 1956년 복원했다. 현판에 있는 글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금강정 아래의 절벽은 낙화암이라 부른다. 어린 단종이 사약을 받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들이 그곳에서 한잎 꽃처럼 수십길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낙화암이라는 이름은 그때 지어졌다. 단종과 함께 하기 위해 몸을 던진 시종, 시녀들의 넋은 금강정 옆의 민충사에 모셔져있다.

늦가을 영월 땅에 있는 낙화암에 서면 어린 단종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하다. 또한 모시던 임금을 따라 죽음의 길로 들어선 시종과 시녀들의 비명소리도 바람되어 떠돈다. 550여년 전, 늦가을의 아픔을 만나고 오는 길에 비바람을 만난다. 이것이 단종의 눈물이런가.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