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향 시의 새 지평.2



우리의 통일시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게 독일의 통일시를 둘러싼 여러 상념들이다. 아마 양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독일을 능가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분단. 통일. 통일지향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는 제반 시작품의 목록은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대개가 민족적 고통과 비극을 관념화하거나 구호화 혹은 격문화 함으로써 잔잔한 감동의 공감대를 넓혀가기 보다는 자아 도취적 차원에 머문 예가 많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분단의 비극을 고루 다 겪은, 지구 위의 어떤 나라보다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우리 민족의 분단은 그 아픔에 비례해서 아름다운 노래 또한 적지 않았다. 통일지향 정서를 노래한 숱한 작품들 중 이기형이 엮은 <<그날의 아름다운 만남>>(살림터)은 구호의 단계를 넘어 비교적으로 시적인 형상화에 성공한 것들을 한자리에 모아 일단 주목을 끈다.

휴전 직전에 쓴 김규동의 <열차를 기다려서> 같은 시는 지금 읽어도 감동을 자아내며, 신석정의 <벽의 노래>,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 문병란의 <직녀에게> 등등은 이미 통일지향시문학사에 굳건히 자리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 일련의 시는 한결같이 우리의 삶 그 자체에서 통일의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점이 돋보인다.

“별들이 내려와 창문을 두드리는 어느 겨울 밤. / 사슴의 발자국을 좇아 / 전설처럼 그이가 북에서 눈길을 찾아 오면 / 그때 / 새 독을 헐어도 좋지 않겠니? / 평양 냉면에 / 전라도 동치미를 곁들인다면 / 우리들의 가난한 식탁은 또 얼마나 / 풍성하겠니?”라는 오세영의 <김치>같은 시도 요즘 꽤나 진하게 다가서는데, 이건 통일이 가져올 엄청난 역사적인 의미에 도취하기 쉬운 흥분을 가라앉혀 차분하게 남북한의 정서적인 궁합을 맞춰 나가는 자세가 특이한 데서 잔잔하게 다가서게 만든다. 이육사의 <청포도> 끝 구절을 연상시키는 결구가 유난히 돋보이는 건 이 대목에서 구호가 안 나오고 “가난한 식탁”이 등장하고, 이 두가지 음식만으로도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감성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 지향시는 여전히 이념적인 초석 위에서 민주화와 민중의 염원과 일치하는 민족 주체적인 당위성으로서의 통일과업이라는 역사적인 이상도 결여되어 있는 데다가 현실적인 생생한 삶의 현장성이 실리지 않은 관념론적인 설교조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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