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대비하는 석과불식의 자세로 선행·적덕·나눔이 開運의 지름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대중화시킴에는 성공회대 고(故) 신영복 교수의 역할이 컸다. 석과불식을 직역하면 큰 과일은 모두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말이고, 의역하면 종자용의 씨앗(子)인 과실은 다 따서 먹지 않고 다음해의 씨앗인 종자(種子)용으로 남겨둔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지금 당장 코앞의 자기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후손과 후대들 그리고 미래에게 그 씨앗과 복(福)의 씨앗, 행복의 씨앗을 함께 넘겨주고자 하여 좋은 영향을 끼쳐줌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석과불식은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으로써 주역의 64괘 가운데 23번째 괘(卦)인 박괘(剝卦)다. 즉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산지박괘(山地剝卦)에서 나오는 용어다. 산지박괘(☶☷)는 위쪽에 산(山)을 상징하는 간(艮☶)괘가 있고 아래쪽에는 땅(地)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있어 상하로 조합되어 있는 상(象)이다. 주역(周易)의 효사(爻辭)에 있는 한 구절이다.

동양고전 중에서 주역(周易)은 대표적인 자연변동·사회변동·사회변혁이론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것이다. 정치변동·사회변동·경제변동·문화변동 등을 미리 예측하여 준비하려면 정치학자든 사회학자든 경제학자든 문화학자든 주역이론을 심도 있게 탐독하고 음양질량의 체증법칙과 체감법칙을 잘 이해하고 적용시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주역에 64개의 대성괘(大成卦)는 그 하나하나가 세상만사를 범주화한 것이다. 이 64개의 범주 중에서 가장 난처하고 어려운 곤경에 처했음을 나타내어 범주화한 것이 바로 산지박(山地剝)괘인데 여기에서 박(剝)은 빼앗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괘의 모양은 6개의 효(爻) 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단 1개의 양효(陽爻)를 제외하고는 아래의 모두가 음효(陰爻)다. 이 괘의 특징은 전부가 음(陰)이고 맨 위쪽에만 양(陽)이 하나 달랑 남아서 있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철에 감나무 꼭대기에 홍시 1개가 달랑 남아서 위태롭게 달려 있는 모습과 비유될 만 하다.

그 마지막 남은 1개의 양효 마저도 방금이라도 음효로 바뀌어버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불의(不義) 악의(惡意) 가짜와 짝퉁들이 가 만연한 세상에 단 1개의 가느다란 정의(正義)가 선의(善意)가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석과불식이란 말은 이 마지막 남은 1개의 양효를 해석하는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박괘(剝卦)는 세상이 온통 악(惡)으로 넘치고 선(善)을 뜻하는 단 1개의 양효만 남아있는 상태인데 그마저 악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음이다.

박괘(剝卦)는 초겨울에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의 가지 끝에 빨간 홍시의 감 1개를 남겨놓은 그림으로 표현될 수가 있다. 감나무의 꼭대기에 감이 1개만 달랑 남아 있고 나머지 가지에는 다 떨어진 상태와 같음이다. 그래서 씨(子)인 과실은 결코 먹히지 않는 법이며 씨(子)인 과실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음이다.

그래서 이 하나 남은 감은 절대로 따 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잘 보존해서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 내년에 종자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군자(君子)는 따먹지 않고 보존하지만 소인(小人)은 이것마저 몽땅 가로채 따먹어 버려서 후일을 기약하지 못함이 일반적이다.

잘 보존해서 내년에 종자로 사용하려하는 마음은 욕심과 탐욕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나눠 준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복(福)을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다.

옛 사람들은 과일을 딸 경우에는 모두 다 따지를 않았다. 몇 알은 반드시 남겨서 소위 까치밥이라 해서 새들의 먹이가 되게 남겨두는 여유로움을 터득했던 것이다. 벼도 마지막 끝 부분은 베지 않고 남겨 두거나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그대로 놓아둠은 바로 가난한 이들이 이삭줍기를 통해 식량이 되게 배려를 했음인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치열한 경쟁에 내 몰려 있다. 인센티브제와 성과급이란 말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고 일반적인 상용어가 되었다. 같은 직장 같은 급수의 동료라고 하더라도 능력에 따라서 성과급이 다르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서 부축하며 함께 달리느라 입상하지 못한 학생을 장한 학생이라고 칭찬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화에 불과하다.

한 발짝이라도 남보다 더 앞서야만 이기고 승리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때로는 남을 밀치게 되고 쓰러진 경쟁자를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딛고 넘어서야 하는 냉정한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시대인 것이다. 맹자가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저 마다 이로움(利)만을 다투어 싸우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맹자가 가장 혐오했던 이해중심의 치열한 경쟁사회가 되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음이니 너무도 슬픈 현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백의종군이 가능했을까? 예와 충과 의리를 목숨 같이 숭상했던 시대에도 그 같이 갖은 수모를 당했거늘 아마도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왕 따를 당해 노란 싹이 커 보지도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이익과 권력을 혼자 독점하려는 데에서 분쟁이 생기고 이익과 권력을 독점하려는 데에서 시비와 전쟁이 발생하는 법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은 이익을 남과 더불어 나누려하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구조로는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 시대의 질병을 치유하는 길은 까치밥을 남기던 조상들의 인정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큰 과일을 욕심내어 남이 먹을 새라 다 먹어치워 버린다면 정말 어려운 이웃들이 굶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 가난하여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굶주림에 배고파하며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하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 추운 한파에 난방이 안 되는 꽁꽁 언 냉골 방에서 겨울을 보내는 독거노인들도 배려할 때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자신의 불리한 운세를 바꾸고 운발(運發)을 높이는 개운(開運)의 비결은 이렇게 모두에게 필요한 미래를 준비해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키움으로써 복(福)의 씨앗을 키우는 일이 바로 개운(開運)의 지름길이라 할 것이다.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