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나누고 베풀되 상대에게 자신을 알리지 않고 실천함이 최고의 적선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석과불식의 지혜가 운세를 바꾸는 開運기술의 첫걸음❶>에서 계속…석과불식(碩果不食)은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으로써 주역의 64괘 가운데 23번째 괘인 산지박괘(山地剝卦) 줄여서 박괘(剝卦)다.

산지박괘(山地剝卦)를 읽을 때마다 고향의 감나무가 생각난다. 장독대와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감나무다. 무성한 낙엽을 모두 다 떨어뜨리고서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는 겨울들판의 전신주와 함께 겨울바람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겨울의 입구에서 그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홍시의 감 1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이다. 그것은 따서 먹는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씨를 남기는 것이다.

나무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런 씨 과실은 그것이 단 1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 있는 씨앗은 이듬해의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석과불식이 표상하는 이러한 정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언어를 이처럼 낭만적인 그림으로 갖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낭만은 흔히 또 하나의 추억이나 환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곤경에서 갖는 우리들의 희망이 단지 소망이나 위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의미로 이 정경을 읽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은 우리들 스스로가 키워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심는 경작과 땀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희망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환상이나 소망이 아닌 진정한 희망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이자 숙제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뼈대를 똑바로 제대로 보는 일이다.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한파 속에 깨를 훌렁 벗고서 팔을 쫘악 벌리고 서있는 나목(裸木)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기나긴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그러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들 스스로의 자화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든지 엄동설한의 겨울을 넘기고 나면 또다시 봄이 오겠지 하는 것은 안이한 답습의 낡은 언어이며 결코 희망의 언어가 아니다. 희망은 새로운 땅에 싹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희망은 새로운 땅을 일구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꽁꽁 언 동토(凍土)에 쟁기를 박아 넣는 견고한 의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더 이상 패배할 수 없는 천근의 땅에 씨앗을 심는 각오여야하기 때문이다. 무더위로 그지없이 힘든 여름이었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이다. 그러나 등 뒤에 매서운 겨울한파를 거느리고 있는 금년 가을은 우리에게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파발마일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을을 잃어버리고 겨울의 한파를 견뎌야 할지 모른다.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희망의 언어이므로 희망을 키워내려는 우리들의 각오가 필요함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로 석과불식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00%의 권력과 권한을 가졌다고 하드래도 70~80%의 권력과 권한만을 사용하고 남겨두는 자세가 바로 이러한 자세일 것이다. 그래야만 그 권력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만약에 100%의 권력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이상으로 그 권한을 쓰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그 권력에서는 부패한 썩은 냄새와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는 그 권력의 뿌리가 썩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에도 품질이 있음을 우리가 느끼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팔자대로 산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자기 팔자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고 팔자와 운세를 고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지천명(知天命)하는 것이다. 즉 팔자를 뜯어고치려면 우선 운명을 깨닫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예컨대 하늘의 명(命)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천명(天命)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어디를 뜯어 고칠지를 판가름할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문제점을 알면 고치는 방법을 모색할 수가 있게 됨이다.

둘째로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적선(積善)을 하는 것이다. 적선은 착한 일을 뜻한다. 예컨대 착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팔자를 고치고 좋은 운을 바라는 자는 도둑놈의 심보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해서 적선을 행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과 크고 많은 홍복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적선을 지속적으로 할 경우에는 그 복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손에게까지도 미친다. 이렇게 적선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귀신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법이다. 이렇게 선행에는 조물주인 천지신명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선이나 선행이 복이 되려면 반드시 그 수혜를 받는 사람이 적선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이루어져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이렇게 적선을 통해서 팔자도 고치고 운세도 향상시킬 수가 있음이다.

셋째로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명상(冥想)을 하는 것이다. 고요함 속애서 눈을 지그시 감고서 깊이 만물과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 명상이다. 일반적으로 삶(生)의 3부작을 명상(冥想)·영상(靈想)·환상(幻想)이라고도 한다. 명상을 통해서 이치를 깨달으면 그 지혜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가 있게 됨이다.

넷째로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풍수(風水)의 생활화다. 풍수는 음양오행에 기초한 방위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력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자연력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자연 공간 속에 공짜로 널려있다.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활용을 못하는 자에 비해서 훨씬 앞설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다섯째로 팔자와 운세를 고치는 방법은 독서(讀書)를 많이 하는 것이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글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내용과 의미를 헤아리거나 정확히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독서를 통해서 사물의 이치를 많이 터득하게 된다면 시행착오와 실수할 수 있는 확률을 그만큼 줄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음이므로 이 또한 운세를 향상시키는 걸과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운수대통(運數大通)을 소망하고 기리며 살아간다. 눈이 빠지게 마냥 기다린다고 좋은 운(運)이 그저 오지 않음도 다들 안다. 운수대통(運數大通)을 달라며 하나님·부처님·천지신명님·조상님 전에 기원하며 신앙생활도 한다. 운수대통(運數大通)이 언제 올지 궁금해 철학관·영매·무당들을 찾아가 묻기도 한다.

운수풀이와 점사를 해주는 그들도 자신의 운수대통(運數大通)을 몰라서 다들 그렁그렁 살아간다. 좋은 운(運)과 나쁜 운(運)은 늘 상대적이다. 즉 자기하기 나름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알고 싶어서 궁금한 것들이 많다. 진행하는 일(事)·가족(家族)·미래(未來)·근심·걱정거리 등등 운수대통(運數大通)해 좋은 운(運)을 받으려면 그 방법이 뭔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① 좋은 운(運)을 받을 수 있는 마음(心)의 준비·자세·노력이 필요하다.

② 좋은 운(運)을 받을 수 있는 그릇(身)의 준비·자세·노력이 필요하다.

③ 마음·정신·영혼이 청명(淸明)하지 않으면 좋은 운(運)을 받을 수 없다.

④ 자기분야에 1인자, 최고실력자, 고수(高手)가 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도통(道通)하는 지름길이고 운수대통(運數大通)의 지름길이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좋은 운(運)이 갈 리가 만무하다. 좋은 운(運)과 나쁜 운(運)은 다 자기하기 나름이다.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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