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근(한국지역연구원장,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교수)
임배근(한국지역연구원장,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교수)

흙수저 김범수가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고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선정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누르고 1위에 등극했다. 여덟 식구의 단칸방 생활에 아버지의 부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견디고 기존 재벌을 넘어서 1위가 되었다는 것은 산업생태계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방증해주고 있지만 김범수의 뛰어난 통찰력과 도전정신으로 이룬 성과라 극찬할 만하다.

그렇다고 김범수를 흙수저라고 부르기에는 멈칫해진다. 부모로부터 재산은 물려받지는 못했어도 좋은 두뇌라는 큰 자산을 물려받았으니 뛰어난 사람으로 흙수저라기보다 비범한 천재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국민의힘 이준석대표의 선출로 시작된 화두는 능력주의와 경쟁이었다. 대변인 선출도 토너먼트 경쟁방식으로 치러졌고 능력 위주로 선발되었으니 우리 사회의 학연·지연·혈연 등 고질적인 연고주의와 파벌주의를 타파하라는 시그널을 준 점에서 신선했다. 그렇지만 공당의 대표가 던진 화두로서는 생각해볼 점이 있다.

사회가 능력과 경쟁으로 치닫게 될 때 오는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일 수밖에 없다. 적자생존, 무한경쟁, 약육강식이 좋을 리 만무하다. 1등 위주의 사회는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 뿐이다. 골프대회에서 1등만 집중 조명하는 것은 흥행 상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잘못되었다. 한타 차이에서 우승과 준우승이 갈리는데 그 보상은 천양지차다. 훌륭한 3등은 아예 없다. 경쟁의 뒤안길에서 사라지는 낙오자의 눈물과 비애는 어떠한가.

경쟁은 미덕인가. 경제학에서도 경쟁은 효율성을 높여주어 성과를 보장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쟁이 성과를 보장하는가. 대학별 성과를 수치로 계량화하여 대학을 순위화한다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의 대학이 되었는가. 경쟁의 논리로 많은 대학끼리 경쟁시키면 대학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김영삼정부 시절 대학 인허가를 마구 내준 결과 지금 어떠한가. 지방대학은 다 몰락할 상황으로 되어 버린 것은 결국 경쟁지상주의의 결과인 셈이다.

출발선이 다른데 경쟁에 의한 능력주의를 주창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인간은 고귀하게 존엄성을 가지고 평등하게 태어난 것은 맞다. 그렇지만 현실은 출생과 동시에 불평등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기 선택과는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개인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지만 부모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 사회다.

출발선이 다른데 무조건 경쟁의 벌판으로 내모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세상은 그냥 두어도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도 예외 없는 경쟁을 더 부추기는 것은 잘못이다. 경쟁과 능력주의의 본질은 불평등 양산이다. 이런 것들을 시정하고 나아가 소외된 자나 약자를 보듬어 안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여성할당제나 지역할당제와 국가균형발전정책 등은 불평등을 완화 시키는 유효한 정책수단이다.

국가가 내세워야 할 가치는 공정과 정의지 능력과 경쟁은 아니다. 존 롤즈가 주창한 경제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며 가장 혜택을 적게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 정의에 부합되며 출발선을 같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이나 기본자산 개념이 펜데믹으로 급변한 현 상황에서 더욱더 중요한 정책이 되고 있다. 기본소득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결과에 동의하는 주장과 다름없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사고도 좀 더 진취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고 / 임배근 한국지역연구원장,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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