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초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꾸준이 그 명맥을 이으며 우리 혼과 우리 생각, 우리 사회를 대변해주는 우리 창작극의 몇 가지 공통된 경향 중에서, 역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이라면 해학적 요소가 깊이 가미된 사회풍자극의 전통일 것이다. 이들 '사회풍자극'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풍자, 노골적인 풍자, 풍자와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뒤섞은 드라메디 등, 그 모습도 각양각색으로 나뉘고, 또 제각기 변화되며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왔는데, 이번에 공개된 <줄리에게 박수를>의 두 스타, 박수진 작가와 송대원 연출의 재결합작 <초야> 역시, 이 오랜 '사회풍자극'의 전통 속에서 탄생된 절품이라 하겠다. <초야>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하고, 또 통렬하다.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일명 '국토회복 결혼 패키지'라는 기절초풍할 상품을 판매한다. 장가 못간 농촌 총각들과 연변 처녀들을 짝지어 주고 전통혼례까지 치러주는 신상품이다. 이 상품은 '고구려영토회복준비위원회' 일명 '고영회'에서 기획한 것으로 회장 '이치수'와 쇼호스트는 판매에 열을 올린다. 곧이어 연변에서 공수(?)된 연변 아가씨들까지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화가 폭주하는 가운데, 8번 아가씨 선옥자가 단연 인기폭발이다. 장가 못간 늙은 아들을 둔 노모가 이 방송을 보게 되고, 아들 강채용이 8번 아가씨와 만나도록 주선하는 상품을 구입한다. 연변처녀 선옥자는 여주에서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짓는 강채용과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함 받는 날, 옥자의 고향인 연변 도문 월청에서 옥자의 친구들인 일명 '연변 제비들' 세 명이 함꾼들 홀릴 요원으로 선발되어 서울에 입국한다....이후의 이야기는 가리봉동 쪽방촌에 살아가는 실업자 및 소외계층과 사회사업단체로 위장한 '고영회'와 방송국이 만나 서로 '격돌'(?)하는 일대 풍자의 한 마당이다. <초야>가 '때 되면 등장하는' 여타 사회풍자극과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라면, 다른 것보다도 '휴머니즘'적 요소가 짙게 드리워져 지나치게 냉소적이라거나 또는 지나치게 멜로드라마적이라는 느낌이 잘 제어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박수진의 대본도 술술 잘 넘어가는 대사와 재기 넘치는 플롯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이를 넉넉하고 부드럽게 감싸안는 송대원의 연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어찌보면 <초야>가 보여주는 '사회적 휴머니즘'의 세계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가장 잘 들어맞는, 냉소적인 시각으로도, 빗발치는 치열한 시각으로 풀어낼 수 없는 갈등에 대한 하나의 해답일 수도 있겠다. (장소: 극장 상상 BLUE, 일시 2004.09.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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