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코오롱 캐피탈 임원 6년 동안 저질러

회삿돈 470억여 원을 몰래 빼돌려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린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과천경찰서에 따르면 코오롱캐피탈 자금담당 임원(CFO)인 정 모씨(45) 가 지난 98년 12월부터 지난 6월 중순까지 회사 자산인 머니마켓펀드(MMF) 등 수익증권과 단기사채 등을 몰래 팔아 472억원을 빼돌린 뒤 주식ㆍ선물ㆍ옵션 등에 투자했다가 회사에 손실을 입힌 사실이 드러났다. 횡령금액으로 볼 때 사상 최대 금융사고일 뿐 아니라 코오롱캐피탈 총자산(892 억원)중 53%에 달하는 대형 사고다. 장기간 지속적 자금 횡령 코오롱 캐피탈 정 모 상무는 회사 예금을 지속적으로 회사 현대증권 계좌에 있는 수익증권을 팔아 챙긴 돈을 다른 증권사 계좌로 옮기는 수법으로 횡령했다. 최근까지 수백 차례에 걸쳐 이런 방식으로 거액을 빼돌렸고 이 돈으로 주식 옵션 등에 투자해오다 대부분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 사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 지분 14.9%를 인수해 코오롱캐피탈의 위탁경영에 참여한 하나은행이 지난 8일 예금 등 자산을 실사하면서 발각됐다. 하나은행은 증권 예금통장이 없는 것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횡령사실을 자백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하나은행측은 내부 공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거액을 6년 동안 들키지 않고 빼돌렸다는 점에서 공모혐의가 짙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 2국 관계자는 "자금이 장기간으로 인출됐다는 것은 내부 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 라며 "검사를 마친 후 제재수위를 결정하겠다" 고 말했다. 결과에 따라서는 코오롱 각 계열사에 파장이 미침은 물론 이웅열 회장의 경영능력까지도 검증 받아야 할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한국기업평가에서 코오롱캐피탈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등록하는 등 이번 횡령 사건은 그룹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코오롱, 악전고투 코오롱 그룹측은 대외신인도나 구조조정에 악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동안 그룹 계열사 중 수익성이 떨어지고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일부 사업부문에 대해 해당 사업분야에 노하우가 있는 업체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코오롱 그룹은 지난 3월 유선방송 계열사인 월드와이드넷의 지분 50.9%를 YTN에 매각했고, 지난달에는 코오롱캐피탈의 지분 14.9%를 하나은행에 매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코오롱그룹은 주력업종인 섬유부문의 불황에다 2개월에 걸친 구미공장의 장기파업에 따른 영업손실, 코오롱캐피탈의 횡령사고 등 잇단 악재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악재가 겹쳐 곤혹스럽지만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고 코오롱캐피탈의 경영도 조기에 정상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 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룹계열사의 경영에 고삐를 죄고 구조조정도 더욱 가속화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실사 대충 처리 회계법인의 형식적 실사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코오롱캐피탈 지분 14.9%(2대주주)에 투자하기 전 삼일회계법인에 실사를 의뢰했다. 하나은행은 실사결과를 바탕으로 예정대로 42억원을 투자했고, 지난 7일 주총을 거쳐 위탁경영에 들어간 상태였다. 위탁경영 후 불과 이틀만에 횡령 사고가 터진 것이다. 회사 실사나 감사 과정에서 잔액증명조회서는 회계법인이 직접 발송하고 회신 받는 것이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코오롱캐피탈 관계자는 "정 상무가 증권사 잔액증명조회서 수령주소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 자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지난해 2조원의 천문학적 SK 분식회계도 회계법인이 조회서를 대충 처리한 것이 문제가 돼서, 당시 해당 회계법인은 감독당국으로부터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은 전례가 있음에도 또다시 회계법인의 형식적 실사가 낳은 금융사고로 남게 됐다. 이번 횡령사고로 인한 손실액은 전액 대주주인 코오롱그룹에서 추가 출자 형식으로 보전해주기로 했다. 앞으로 출자지분을 늘려 코오롱캐피탈을 자회사로 편입하려 했던 하나은행은 책임소재와 손실액에 관계없이 일정 부분 타격을 입게될 전망이다. 신용등급 하향 조치 신용평가사들도 470억원대 횡령사고가 터진 코오롱캐피탈의 신용등급에 대해 신속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 한국신용정보(한신정)는 13일 코오롱캐피탈의 회사채 및 기업신용등급과 기업어음(CP) 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등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국기업평가(한기평)도 코오롱캐피탈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등록했다. 한신정은 "횡령 규모가 400억원대로 추정돼 자기자본규모 등과 비교해 과대한 점을 감안, 코오롱캐피탈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등재했다"며 "횡령사고에 대한 코오롱 그룹과 하나은행의 사후대책 마련 여부 및 진행경과, 사후대책의 효과에 대해 분석을 진행 중에 있으며, 분석 결과에 따라 향후 등급조정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한기평은 "코오롱캐피탈은 현재 자금담당 임원의 횡령사고로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안이 향후 재무상태 및 신용도에 미칠 영향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코오롱캐피탈 발행 무보증사채와 기업어음에 대한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negative review) 대상에 등록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신용평가사들은 지난 6월30일 코오롱캐피탈 회사채 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안정적)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으며, CP등급은 A3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금융사고, 올 들어 벌써 몇 번째 올 들어 금융기관들의 초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금융기관 임직원의 신뢰성 추락과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수위에 달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옛 우리카드 직원들이 고객돈을 빼돌려 선물투자를 하다가 중국으로 도주한 사건이 이후 9월까지 6건의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5월에만 ▷동부생명 20억원 ▷전북은행 28억7천만원의 횡령 사건이 터졌고 그 후로도 ▷동부화재 3억원(6월) ▷산업은행 58억원(7월) 등이 잇따라 터졌다. 최소 수억원대에서 최대 수백억원대 규모의 금융사고가 지난 4월 이후 한 달에 한번 꼴로 발생한 셈이다. 금융사고 범행수법 갈수록 대담해져 금융기관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는 대개 고객돈을 횡령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코오롱 캐피탈처럼 회삿돈을 빼내는 수준으로 범행수법이 과감해지고 있다. 이미 올 상반기에만 은행 증권 보험 등에서 횡령ㆍ유용 등으로 인한 금융사고 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다. 여기에 은행 임직원들이 돈을 모아 집단으로 주식 투자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우리카드는 지난 4월 옛 우리카드 합병과정에서 당시 회계담당 박 모 과장과 자금담당 오 모 대리가 공모해 법인 명의 예금계좌에서 5차례에 걸쳐 446억원(순횡령액 400억원)을 부당 인출해 횡령하기도 했다. 우리카드와 코오롱캐피탈 사건은 기업 인수ㆍ합병(M&A)을 앞둔 시점에서 인수대상 기업 임직원들이 공금을 횡령한 대형 금융사고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책은행 임직원이 집단 주식투자에 나선 사례도 있다. 산업은행 직원이 직장 동료와 친지 등 110여 명에게서 58억원의 돈을 받아 주식투자로 날린 것이다. 돈을 맡긴 산업은행 임직원 중에는 내부 주식투자를 감시ㆍ감독해야 할 검사부 직원들까지 포함돼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 동부생명 자금담당 직원은 회사 거래인감을 도용해 회삿돈을 빼낸 사례도 있고, 국민은행과 전북은행 직원은 예탁한 고객돈을 무단으로 인출해 주식투자를 한 뒤 적발됐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