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감사인사, 국정원 협상 고개 갸웃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에 인질로 붙잡혔다 풀려난 우리 국민 19명이 45일 만인 2일 오전 6시 35분께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땅을 밟았다.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낸 국내 여론을 의식한 듯 한결같이 고개를 푹 수그뜨린 채 "죄송하다", "큰 빚을 졌다", "저희가 받은 사랑을 꼭 다시 돌려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KE952편으로 돌아온 이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피랍자 대표 유경식(55)씨가 소감을 밝혔다. 유씨는 "뜻하지 않게 피랍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정부에도 크게 부담을 드리게 돼 대단히 죄송하다"며 "저희들이 가정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염려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유경식씨는 특히 "국정원 김만복 원장님과 외교통상부 박인국 실장님, 국방부 전인범 준장님과 관계기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여러분의 신중하고도 목숨을 건 구출작전이 아니었더라면 아프간 봉사팀 모두가 생명을 잃을 뻔 했다. 저희들은 이번에 조국과 국민 여러분께 큰 빚을 졌고 앞으로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못박았다.

유씨는 이어 "평소 존경하고 따르던 배형규 목사님과 사랑하던 심성민 형제가 무참히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몸을 가누기 힘든 충격 속에 휩싸여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저희와 함께 돌아오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존경하는 배 목사님과 사랑하는 심 형제의 유가족께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배목사와 심씨의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유씨는 또 "국민들께 끼쳐드린 심려를 생각하면 석고대죄가 마땅하겠지만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40여일 동안 지내왔다"며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면 안정을 취하는대로 모든 것을 소상하게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피랍자 가족대표 차성민씨(30)는 "이번 피랍사태와 관련해 많은 힘을 써 준 정부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희 가족들이 40일 동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저희가 받은 사랑을 꼭 다시 돌려드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오후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및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갖고 아프간에서 피랍된 한국인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한국군의 올해 안 철군 방침이 피랍사건 발생에 앞서 이미 결정돼 있던 사항임을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철군 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재건을 계속 지원해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카르자이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도 "피랍자의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데 따른 위로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카르자이 대통령은 한국의 지원 방침을 환영하면서 앞으로도 양국이 제반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희망했다. 이에 따라 노대통령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방한을 초청했으며,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에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유도요노 대통령과 가진 통화에서 "지난 7월 유도요노 대통령의 방한이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 "9월 APEC에서 다시 만나 유익한 협의를 가질 것을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양국 사이에 포괄적 경제협력 관계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 해결에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인질들의 석방협상을 아프간 현장에서 지휘하고, 사건해결 뒤 언론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김원장은 지난 달 22일 아프간 카불로 건너가 탈레반 무장세력과의 석방협상을 챙긴 뒤 풀려난 19명의 한국인과 함께 2일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김만복 원장은 이에 대해 "협상을 진전시킬 필요가 있었다"며 "현장에서 지휘함으로써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고 아프간의 열악한 통신 사정을 극복한 것은 물론 협상팀과 본국과의 통신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제3자의 감청 등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발뺌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탈레반 측의 추가 살해 위협이 있는데 협상은 답보상태여서 원장이 직접 현지에 가는 것이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석방 노력을 한 것"이라며 "김원장이 카불로 들어간 직후인 지난달 25일 외신을 통해 '전원 석방 합의' 보도가 나오는 등 협상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김 원장의 역할이 주효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일 "피랍사태 해결의 중대한 고비를 앞두고 피랍자 석방을 하루라도 앞당기고 전원 석방을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의 활용을 위해 정보 라인의 최고책임자로서 간 것"이라고 못박았다. 천대변인은 이어 김원장의 언론 노출에 대해선 "(카불)호텔이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라는 공간상 한정성 때문에 노출된 측면이 있다"며, 노출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음을 내비쳤다.

국가의 기밀을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장의 아프간 피랍사태 해결에 따른 적극적인 활동은 옳은 것일까, 잘못된 것일까.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국정원장의 언론에의 잦은 노출에 있다. 그 노출 때문에 여론이 국정원을 콩깍지 낀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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