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포석용 전직 대통령 예방 완료

하안정국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권 겨냥 민생행보가 다시 시작되면서 ‘대권도전 독주 안전한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박 대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비롯 전두환 김영삼(YS) 노태우 최규하 전 대통령을 예방, 정식 대표로서 국정운영에 대한 의견도 수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박 대표의 전직 대통령 릴레이 예방과 관련 전여옥 대변인은 "분열과 갈등, 편가르기로 모두가 상처입고 모두가 피해자가 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과 통일이기 때문에 박 대표는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행보는 차기 대권 도전 잠룡으로서의 포석용으로 풀이된다. DJ에 `유신피해' 사과...DJ, 박 대표 방북 권유 박 대표는 지난 12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방문 DJ에게 "아버지 (집권)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비공개로 면담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과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이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과거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 주니 감사하다"면서 "정치를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박 대표가 재임 중 박정희 기념관 건립결정을 내린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자 "기념관 문제를 푸는데 최대의 정적인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면서 "공과는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이날 선친을 대신해 김 전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조만간 박 대표가 `유신독재' 과오에 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은 "내 정치활동 가운데 가장 미진했던 게 지역화합, 지역감정해소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면서 "내가 못한 일을 박 대표가 해달라. 박 대표가 제일 적임자"라며 지역갈등과 국민화합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앞으로 남북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겠다"고 공식요청한 뒤 "한나라당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얘기가 되는 사람"이라면서 "박 대표가 (지난 2002년) 북한에 다녀온 것은 잘한 일이며 기회가 있으면 또 가라"며 방북을 권유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시절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기간 햇볕정책을 주창해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냈던 만큼 두 사람의 회동에서는 대북정책 문제가 주요화제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우세한 관측이다. 비록 박 대표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박 대표가 대북문제와 관련, 모종의 역할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김 전 대통령이 박 대표에 대한 방북 권유는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경제를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면서 "박 대표가 경제인을 만나 국민 심리를 안심하게 해달라. 제1야당이 안을 내고 여당과 정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도 지지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 대표가 소나무 분재를 선물하자 김 전 대통령은 "미처 선물을 준비 못했다"면서 햇볕정책 3원칙이 새겨진 펜과 영국 체류시절 정계복귀를 앞두고 집필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라는 책을 선물했다. 특히 박 대표의 김 전 대통령 방문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화해정책에 대해서도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나라당내에서는 과거 호남 소외정책을 사과하고 호남에 접근하지 않으면 집권하기 어려운 만큼 적극적인 호남화해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규하, 박정희 정권 시절 석유 파동 일화 소개 박 대표는 이에 앞서 지난 8일 서울대병원을 방문 입원 중인 최규하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예방했다. 병실에서 환자복에 회색 상의을 덧입은 차림으로 박 대표를 맞은 최 전대통령은 "몸이 시원치 않아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을 꺼냈고, 박 대표는 "쉬셔야 하는 데 불편하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인사를 했다. 최 전 대통령은 이어 "요즘 경제 말들 많이 하던 데 경제는 잘 돼가느냐"고 물었고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 전 대통령은 최근 고유가 상황을 거론하면서 70년대 1,2차 석유파동 때 유류 확보를 위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외교특보시절인 72년 박 전대통령이 산유국이 한국에 대한 석유 할당량을 줄이지 않도록 외교활동을 하라고 지시, 베이루트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며 "프랑스 등 각국 정상 수 십명이 와 있는 상황에서 운 좋게 프랑스 다음으로 왕을 접견하고 선처를 부탁해 할당량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 때는 실패하면 무슨 낯으로 대통령을 보나 걱정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면서 "1,2차 석유파동 때는 정부가 에너지 절약시책을 주도했는데 요새는 도대체 절약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고유가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도 잘 챙키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표는 또 지난달 부인 홍 기 여사가 별세한 데 대해 최 전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위로의 뜻을 전했다. 최 전대통령은 "몸이 불편해 활동을 잘 못하는 데 상 당했을 때 묘소가 3백리 길이어서 주변에서 가지 말라고 말렸다"며 "그러나 마지막 가는 데 같이 하는 것이 인정이라고 생각돼 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부부 중 한쪽이 먼저 별세했을 때 장지에 안 가는 것이 관례라고 해서 어머니(육영수 여사) 때도 아버지(박정희 전대통령)도 안 가셨다"고 전했고, 이에 최 전대통령은 "그 때는 (박 전대통령이) 현직이라 그런 것이고 건강만 괜찮으면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두환, "재임초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인재를 많이 썼다" 박 대표는 최 전 대통령 예방에 이어 지난 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했다. 전 전대통령은 이순자 여사, 이양우 변호사와 함께 자택 현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이날 회동에서 전 전대통령은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박 대표가) 두 번째 정당 대표다. 그전 박순천 여사는 할머니였지만 박 대표는 일하기 좋은 연령"이라며 "국민이 여성대표에 대해 기대가 클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3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등에서 모두 여성이 수석졸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인류역사의 흐름이 원래 상태인 여성상위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에 있을 때 장한 어머니 포상을 하면 눈물 없이 못 들었다"며 "애는 빨리 낳아 4∼5명이나 되는 데 남편은 전사하는 바람에 아이들 업고 농사.장사해 훌륭히 길러냈다"고 여성의 강인함을 강조했다. 이에 박 대표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이 약해 보이지만 10명 이상 키워도 안 굶기고 교육도 잘 시켰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했다. 전 전대통령은 이어 "예전 같이 정치가 싸움질하고 이런 게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며 "당내에도 정치인들이 야심 많으니까 야당총수로서 섭섭하고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라발전을 위해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국가경쟁력과 국민행복을 위해 정책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은 또 "재임초기 (국가운영에 밝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인재를 많이 썼다"며 "천하의 인재를 두루 모아 팀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공무원이 나라의 중심이고 일도 많이 하는 데 요즘 너무 폄훼하는 시류가 있다"며 "경찰이 범인 한명 놓쳤다고 매도하면 설 땅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YS와의 독대 30분 무슨 얘기 오갔나 또한 지난 10일에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다. 배석자가 포함됐던 최규하, 전두환 두전직 대통령 예방 때와는 달리 이날 회동은 독대 형식으로 30분간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마저 폐지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고, 의문사위 논란과 북한 함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사건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박 대표가 전했다. 독대에 앞서 두 사람은 거실에서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 데 인사를 나누고 잠시 환담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어떻게 된 판인 지 걱정이 많다"며 "그중에서도 한미관계가 가장 중요한 데 미국인들이 완전히 고개를 돌려버렸다"고 말하고 "중국을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말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중국은 우리를 변방취급하고 모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신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정치, 정당에 관심이 없다"며 "정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접촉하는 데 그들은 절대 정치 이야기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박 대표가 대표가 됐기 때문에 그만큼 이길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라고 격려하고 "(정치는) 숫자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힘, 지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가 "당의 지지, 국민의 신뢰회복은 대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당 전체가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이 대표이고,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싫어도 따라오고 국민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대표가 예전 같이 힘이 없다. 국민의 뜻을 대신해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 외에는 힘이 없다"고 말했고, 김 전 대통령은 "당 체제,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다. 중심을 잡고 정의롭게 나가면 안 따라 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태우-박근혜 환담, 경제 살리기 초점 외유 중이라 마지막으로 지난 20일 노태우 전 대통령을 연희동 자택을 방문 환담했다. 두 사람은 경제살리기 방안 등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지난 8일부터 시작한 최규하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5명에 대한 예방을 모두 마쳤다. 한편, 박 대표는 여권이 '과거사 캐기'에 몰두하고 있는 데 비해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정치 행보에 나섰다. 또 박 대표는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 각분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 민생.경제 현장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할 방침이다. 박대표 2기체제 한달 한편, 박 대표는 지난 19일로 '2기체제'를 가동한지 한달을 맞았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하면서 기회와 도전을 함께 맞았지만 아직까지 두 가지 모두 제대로 활용하거나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는 취임 이틀만인 지난달 21일 "정부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할 시기가 올 수도 있다"며 폭탄발언을 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 발언은 박 대표가 표방했던 '여야 상생정치'에서 '대여 강공'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른바 '국가정체성 논란'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여권은 곧바로 '색깔론'으로 맞받아쳤고 박 대표의 선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의혹과 유신독재 과오,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의 불법 헌납강요 등을 거론하며 대야 총공세에 나섰다. 박 대표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할 말을 했을 뿐"이란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국은 한치의 양보없는 여야 대립으로 민생.경제는 실종된 채 극한 정쟁 양상으로 치닫는 등 요동쳤다. 하지만 국가정체성 논란은 박 대표에게는 당내용으로는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강한 야당 지도자'란 이미지를 당안팎에 심어주며 당을 정체성 논쟁 전선으로 이끌어 어느 정도 리더십을 과시하는 성과는 거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1기체제 때 '상생정치'를 내세우며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과시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여당 2중대', '야성 상실', '리더십 부재'란 비판에도 직면해야만 했다. 박 대표는 또 대선과 총선 패배후 흐트러진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당을 제 궤도에 다시 올려놓는 데 힘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태희 대변인과 심재철 기획위원장 등 당의 '허리'에 해당하는 재선급과 이성헌 전 의원 등 원외인사를 전면에 배치, 소장파 일색이었던 주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중화시켰다. 그러나 3선 이상 중진급의 '겉돌기'는 막지 못한 점은 여전히 그의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남겨놓고 있다. 박 대표는 당초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문수 이재오 의원을 당직에 기용하려 했으나 본인들을 설득하는데 실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진과의 접촉기회를 넓히겠다는 약속도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 대표는 취임 후 새정치수요모임과 대구.경북(T.K) 초선 의원들과 접촉했을 뿐 중진과의 만남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않다. 중진의 '비주류화'는 당의 통합을 저해하고 전력 누수를 가져오기 때문에 박 대표로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정책대응 능력도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지난 6월부터 대여공세의 핵으로 삼은 행정수도 문제에 대해 정부의 예정지 확정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데 대해 당 안팎의 눈총이 따가운 상황이다. 이와 함께 여권이 주공격 타깃으로 삼고 있는 `유신독재' 등 박 대표의 '아킬레스 건'에 대한 해법을 서둘러 찾아야 하다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자신이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유신독재 시절의 전반에 대한 대 국민 사과가 이뤄져야 정치 지도자로서 명분과 대의를 확보, 바로설 수 있고 여권의 공세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당일각의 조언을 어떻게 수용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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