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의원 대권 삼수 선언

그동안 통합작업으로 부심하던 중도개혁통합신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합당을 마무리 지음과 동시에 대선판 만들기에 뛰어들면서 예비후보들도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 그 첫 주자로 김영환 전 의원이 대선 출사표를 던졌고, 5일에는 이인제 의원의 대권선언이 이어졌다. 앞으로 추미애, 김민석 전 의원의 출사표도 예상된다. 이들 중 특히 정가의 이목이 이인제 의원에게 쏠리고 있다. 그의 이번 출사표는 지난 1997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이기 때문이다. 이미 두 차례의 고배를 마셨던 그의 행보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동안의 아팠던 정치경험이 그를 더욱 성숙시켰다”며 ‘이번 대선에서는 분명…’이라는 시선으로 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인제 중도개혁통합신당 의원이 5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이날 민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중도개혁주의의 깃발을 들고 연말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눌러 이기는 선봉에 서고 싶다”는 각오를 표명했다.

‘고난의 정치’가 자산

이인제 의원에게 대선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지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두 차례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그의 이번 대선출마에 대해 “정치의 계절이 오니 대권병을 버리지 못하고 또 나왔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그를 주목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인제 의원은 1987년 통일민주당을 통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뛰어난 의정활동으로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장관과 경기지사를 역임하는 등 정치지도자로서 로얄코스를 밟아왔다는 평가를 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이인제 의원은 그러한 정치경력을 통해 중앙행정은 물론 지방행정을 섭렵했고 차근차근 국가지도자로서의 국정수행능력과 덕목을 키워오다 1997년 대권에 도전하게 된 것”이라며 “2번의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은 이미 인정받은 바 있으며 그의 정치경력도 호락호락하게 볼 수준은 아니다”라고 이 의원의 대권도전이 단순한 정치실험이 아닌 준비된 행보였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인제 의원은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2백억원을 수수했다”는 허무맹랑한 흑색선전에도 불구하고 5백만표를 얻었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와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았다. 하지만 DJP연합의 벽을 넘지 못해 대권행이 좌절됐다. 2002년 대선 때는 시종 ‘대세론’을 이끌며 승승장구를 하다 보수언론의 세무조사, 햇볕정책과 관련한 정치적 소신 견지, 그리고 불투명한 당내 경선으로 인해 또 다시 대권도전을 접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 독이었던 고난의 정치사도 이제는 약이 될 수 있다. 국민의 뇌리에서 그가 능력을 인정받은, 국민이 원했던 대선후보였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의 정치사는 더욱 풍부한 정치력을 보여주는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정치인의 말처럼 언제까지나 그의 고난이 좋지 않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3개의 조롱박을 던져 상황을 모면하고 좋은 결말을 얻은 한 전래동화처럼 그에게도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조롱박 3개가 존재한다.

조롱박 던져라

첫 번째 조롱박은 ‘시간의 조롱박’이다. 그가 대선에 뛰어들기에 판도 시간도 적절하다는 것이다. 현재 범여권은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후보군 속에서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대권선언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판세를 점검하는 동안에도 끝나지 않는 범여권의 후보 난립은 그가 ‘확고한 1인의 위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합민주당의 한 의원은 “현재 나오고 있는 지지도는 무의미하다. 7월말이나 8월 초가 돼야 제대로 된 지지율이 나올 것”이라며 아직 대선에 임할 진정한 후보군 구성이 자리 잡지 않았고 민심도 누구를 차기 정부의 수장으로 정할 것인지 정하지 않았다는 말로 통합민주당 후보들의 뒤늦은 출발에 대한 우려를 덜어냈다.
두 번째 조롱박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악연으로 얻을 수 있는 ‘속풀이 조롱박’이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승부에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내몰려 법적 고초를 겪는 등 정치적 핍박과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점이 ‘노무현 대통령·열린우리당 허물벗기’에 나선 다른 후보들과 이인제 의원을 차별화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이후 져야 할 짐이나 참여정부 실패론에서 자유롭고 국민의 속이 후련하도록 이를 질타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현재 범여권에서 대선주자로 나선 이들은 국민들에게 ‘그놈이 그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한 자리씩 했던 이들이거나 아직도 노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제 얼굴에 침뱉기다”라고 지적하며 “국민의 심경을 대변하는 비판들을 앞장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할 수 있는 인물은 몇 안 되고 그 중에 이인제 의원도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은 그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해 줄 수 있는 조롱박이다. 일명 ‘DJ조롱박’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8일 원광대 특강에서 “1997년 대선에 이기니까 호남, 충청이 손잡아 이겼다고 하는데 전자계산기로 두드려보면 이인제씨가 동쪽에서 5백만표를 깨주지 않았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는 것 아니냐. 이인제씨가 또 있느냐”고 말한 바와 같이 이인제 의원에 대한 DJ와 호남의 ‘정치적 빚’은 상당한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이 의원이 5백만표를 가져오는 ‘뺄셈의 정치학’으로 DJ의 당선을 사실상 뒷받침한 형국이 된 것을 DJ와 호남대중은 잊지 않고 있다. ‘이인제 효자론’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대세론’을 가능케 하는 뒷배가 돼 줬다.
DJ가 노 대통령과의 절충안으로 ‘대통합이 힘들면 후보단일화라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 대통령은 민주당이 당선시킨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중심으로 해서 다음 후보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민주당 중심으로 후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점을 상기해볼 때 DJ의 숨겨진 인물은 이인제 의원 일 수 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또한 이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도 ‘햇볕정책의 창조적 계승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공약을 포함하는 등 DJ의 뒷배가 건재함을 암시했다.

꼬리표 따라다녀

하지만 그가 가진 남다른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정가 일각에서는 그의 세 번째 도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철새 정치인’이라는 오명이 그를 항상 따라다니고 있고 그가 민주당을 떠나 있는 사이 그의 세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지난 5일 이인제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에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대한민국 주요 정당을 ‘한바꾸’ 돌았다는 의미의 ‘한바꾸 이인제’라는 말을 사용하며 그를 맹비난했다. 나 대변인은 “이인제 의원은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국민신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통합민주당까지 9번의 당적을 바꿨다. 이 의원 주장대로 자연히 당명이 바뀐 것을 빼도 5번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경재 통합민주당 최고의원은 “이인제 의원이 당적을 많이 옮겼다고 신문에서 많이 얻어맞고 있지만 당적을 옮긴 건 서너 번”이라며 “여덟 번이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윈스턴 처칠도 영국에서 당을 많이 옮겼지 않았느냐”며 당적을 많이 옮긴 것이 대선에서 결코 걸림돌로 작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내에 이인제 의원 지지자들이 상당수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을 떠나 있던 4년 반 동안 민주당의 정치지형이 많이 변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 당 지도부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간다는 의사를 보이며 접촉하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인제 의원은 당 지도부가 최근 범여권 경쟁 주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데 대해 “대찬성”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도개혁주의 본산은 통합민주당”이라며 “중도개혁주의를 지지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합류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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