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리더는 허세 없이 뒤에서 일하고, 성공해도 자랑을 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에서 맹활약 중인 각국의 영웅을 소개하면서 쓴 말이다.

코로나19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고 정치적인 계산을 일삼는 우두머리들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늘 나오는 정치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 등은 코로나19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진짜 영웅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매일매일 묵묵히 일하는 전문가들이었다. 방역전문가, 의사, 간호사, 소방관 그리고 생필품을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들이 우리 삶의 기둥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별로 받지 못하지만 그들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가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상사에서도 진짜 영웅은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예견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위기를 미리 경고한 자는 영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폭우를 예견하고 댐을 잘 보수해서 홍수를 막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아도, 댐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갈 때 보트를 타고 구한 사람은 매스컴을 통해 영웅이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렇게 ‘가짜 영웅들’이 많아질수록 나라와 사회가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도 비슷하다. 선진국은 미래를 예견하고 미리 잘 대비하는 나라들이고, 후진국은 위기가 닥칠 때까지 천하태평으로 있다가 뒤늦게 허둥대는 나라들이다. 후진국의 경우 누군가 사전 예측과 경고를 하면 ‘억지 주장’이나 ‘민심 교란’ 등으로 공격을 받기 일쑤다. 한반도 역사에서 비극으로 꼽히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 망국 등은 대체로 후진국 근성을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엉망이 됐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5월 수출이 전년동월대비 23.7% 감소했다. 4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수출이 급감한 것인데 지금 기업 현장에서는 수출 주문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수출이 잘 되지 않고 코로나19로 ‘사회적 격리’가 강화되다보니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는 2,693만 명으로 일년 전보다 39.2만명이나 줄었다. 15세 이상 고용률도 60.2%로 전년 동월대비 1.3%포인트 하락했다. 청년층 체감실업률로 26.3%나 됐다. 실업자와 실업률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 실적이 부진하고 소비도 줄어들면서 세금도 갈수록 덜 걷히고 있다. 올해 1~4월 정부 총수입은 166.3조원인데 작년 같은 기간보다 4.4조원이 줄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 본격화되는 5월 이후에는 세수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그런데도 ‘돈 풀기’에 여념이 없다. 올들어 1차 추경(11.7조원), 2차 추경(12.2조원)에 이어 3차 추경(35.3조원)을 준비 중이다. 3차 추경으로 23조 8천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돼 올 한해 늘어나는 나라 빚만 111조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한 해 5% 포인트 이상 높아져 40%대 중반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치권, 관료까지 재정건전성 얘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애써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재정이 당면한 경제위기 치료제이자,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체질,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 역할까지 해야한다”며 ‘재정=만병통치약’으로 인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정부와 여권은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에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다보니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재정은 국가신용도의 기준이자 미래에 갚아야할 빚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급기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심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최근 정부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으로 절대 인구와 생산가능인구도 줄고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될 텐데 온통 'K-국뽕'에 빠져있다. 이 나라도 20여 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로 접어든 게 아닌 가 우려된다”고 적었다.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노동·자본 투입과 기술 진보 등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뒷걸음질 쳤다”며 “코로나19와 관계없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제한, 기업에 대한 반감 등 애초에 경제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경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경고는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사안이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김무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2015년 당 대표시절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는 1991년 당시 국가부채가 GDP의 68% 수준이었으나, 재정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 20여년 만에 통제를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초저출산 현상’을 심히 우려했다. 당시 발언을 보면 김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화는 일본보다 더 늦게 나타났으나 속도는 더욱 빨라 대한민국의 최대 고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합계출산율의 경우 한국은 2013년과 2014년 연속으로 1.19명에 불과해 14년 연속 초저출산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습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 1.37명보다 훨씬 낮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2명으로 더 낮아졌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지지층인 ‘젊은 여성 유권자’를 의식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이나 여권은 ‘초저출산 문제’를 크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망국(지옥)으로 가는 길은 단순하다. 미래세대가 줄어들고(초저출산), 경제 활력이 사라지며(저성장 혹은 마이너스성장), 나라나 개인의 빚이 늘어나며(재정 악화와 가계빚 악화), 공짜를 좋아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등) 그 나라는 망한다.

김무성 전 의원이 과거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모두가 무지개를 쫓아갈 때 누군가는 낭떠러지를 살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 정부, 여당 등에서는 아무도 낭떠러지를 보지도 않고, 심지어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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