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개발의 붐을 타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가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카자흐스탄 등에서의 자원 개발에 참여하여 적잖은 성과를 기대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비(非)자원 개발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아직은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쌓아가며, 미래의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에너지 및 광물 자원 개발을 통해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중앙아시아 주요 4개국(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비 자원 개발 시장에 대한 전반적 평가와 함께, 한국 기업들의 성과는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자원 개발을 제외한 시장성은 아직…


많은 국내외 언론에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자원 개발에 관한것 일 뿐, 자원을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매력은 또 다른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 적어도 현재 관점에서 볼 때 자원을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경제규모나 시장성, 비즈니스 환경 등은 자원 매력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앙 아시아지역에서 자원 매력이 가장 크고, 또 경제 규모 및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카자흐스탄도2006년 기준 GDP 규모가 772억 달러 내외이고, 중앙아시아 Big 4의 GDP 규모를 다 합쳐도 1,400억 달러에 채 못 미치고 있다. 이 정도 경제 규모라면 600억 달러수준인 베트남 보다는 크지만, 태국보다도 작은 수준이다. 게다가 각국 GDP에서 에너지 등 자원 개발 분야가차지하는 부분을 빼면 자원 개발 이외의 시장 규모는 약800억 달러 내외이며, 이를 또 외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범위로 좁힌다면 그 규모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


● 경제 규모의 확대에 따른 시장 확대 기대


이 지역이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원인은,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자주 접하는 얘기지만, 자원 개발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통해 다른 지역들 보다 경제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자원 개발 이외의 시장 기회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금은 네 나라의 GDP 규모가1,400억 달러가 채 안 되지만 2010년 2,800억 달러, 2015년 4,000억 달러 규모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구소련 시절의 경제난으로 지난 20~30년 간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각종 건설 및 인프라 분야에 우선적으로 자본이 투입되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각국 경제가 안고 있던 급한 불끄기에 급급해 뚜렷한 투자 성과를 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각 정부에서 경제 발전 장기 계획, 에너지 의존 경제 구조 탈피 정책 발표 등을 통해 비 자원 개발 분야 육성에 대해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소비 시장이 계속 세분화되면서 이에 따른 시장 기회가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쉽게 할 수 있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국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수요층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소비 시장 역시 확대될 것이다. 1인당 GDP가 5,000 달러를 넘어선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전, 자동차, 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고급 시장이 이미 형성되고 있고, 아제르바이잔 역시 고가형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 아직도 유효한 시장 선점 효과


또 다른 이유는 경쟁 업체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시장 선점을 통한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특히, 원유 수출 등을 통해 일찍부터 고유가 혜택을 가장 크게 입은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2,660만 명의 역내 최대 인구를 보유한 우즈베키스탄 경제가 최근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역내 최대 가스 생산, 수출국이지만 강한 폐쇄성으로 대외 교류가 거의 없던 투르크메니스탄도 올 초 20년 장기 집권의 니야조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변화의 기대감이 일고 있다.


한국에게 중앙 아시아는 블루오션인가?


전반적으로 중앙 아시아와 한국 간의 경제 관계는 양호한 편이다. 특히 1990년대 가전 제품을 중심으로 구소련지역에 활발히 진출한 한국 가전 기업들과, 1990년대 우즈베키스탄에 집중 투자를 한 대우 그룹의 적극적 활동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아직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실적은 중국·터키·일본·미국 기업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수출액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의 시장에서 한국은 중국, 터키, 일본, 미국 등에 뒤지고 있다(<그림 1> 참조). 특히 역내 최대 시장인 카자흐스탄에서는 중국의 1/15 수준이고,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으로의 수출은 1억 달러도 안 된다. 그나마 대우의 투자로 현지 기반과 경험이풍부한 우즈베키스탄에서만 선두를 달릴 뿐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자원 개발 다음으로 가장 매력이 큰 분야이자, 수요가 많다고 일컬어지는 건설, 인프라, 플랜트 수출 등의 분야에서도 한국 업체들의 실적은 초라하다. 해외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2006년 말까지 지난 16년간 중앙아시아 4개국에서 한국 업체의 건설 관련 실적은 6억 달러가 겨우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그것도 최근 2년 사이 한 업체의 주상 복합형 아파트 공사와 관련된 실적일 뿐, 이를 제외하면 특별히 내세울만한 실적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반면, 터키·중국은 중소형 건설 분야에서, 미·영·일·유럽 업체들은 에너지 플랜트 분야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건설, 플랜트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투자 분야 역시 큰 차이는 없다. 공식 통계상으로 한국의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으로의 투자는 전무하며, 나머지 두 나라에 투자된 금액도 최근 5년간 실적을 다 합쳐도 3억 달러를 조금 넘을 뿐이다. 아직 절대적 시장 규모도 작고, 또 이 시장의 근본매력이 자원 공급지라는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쯤되면 BRICs에 이은 또 다른 블루오션이라 불리는 이 시장을 과연 우리가 잡을 수 있을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같은 환경에서 외국 기업들은 크고 작은 실적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들의 중앙아시아 진출 성공 사례


● ODA를 발판으로 시장을 점령하는 일본 종합상사


이토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시미즈 상사 등의 우즈베키스탄 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및 TV 송신설비 확장 프로젝트, 아제르바이잔에서의 가스 발전소 건설, 투르크메니스탄의 철도 현대화 설비 공급 등은 일본 종합상사들의 대표적인 ODA(OfficialDevelopment Assistance-공적개발원조) 자금을 활용한 프로젝트들이다.


기본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시장의 구매력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았고, 또 위험 감수(Risk Taking)를 싫어하는 일본 기업 특유의 성격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본 종합상사들은 ODA 자금을 활용해 대금 회수와 관련된 리스크를 상쇄시키며‘안전한’비즈니스 위주로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고성장을 하고, 또 이들이 보유한 자원 가치가 계속 오르자 일본 상사들의 전략은 점차 적극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제는ODA를 통한‘안전한’사업뿐 아니라, 그간의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대형 인프라 사업 입찰에도 참가하고, 또 현지 고위층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력을 바탕으로 자원 획득이라는 또 다른‘대박’사업까지 노리고 있다. 올 봄 우리 정부가 카자흐스탄에서 도입하려던 우라늄 사업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결렬이 난 반면, 우리보다 뒤 늦게 협상에 뛰어든 일본이 우라늄 공급권을 받아간 사례는 일본이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노리고 있던 ‘대박’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중앙 아시아 지역에 씨앗처럼 뿌려둔 약 25억 달러 이상의 일본 ODA 자금이 이제는 서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순간이다.


● 가격과 물류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중국


중앙아시아 가전 시장은 한국, 일본 제품이 아직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소비 시장은 중국이 접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 생필품은 물론, 의류, 신발, 식음료 등 일상 생활과 밀접한 소비 분야는 중국 제품의 완승이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과 함께 편리한 물류 접근성이 주요인인데,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동북아 물동량이중국의 TCR(Trans China Railway-중국횡단열차)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은 중앙아시아로의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최근에는 중국 중서부 시안(西安)에서 출발하여 대 중앙아시아 물류 기지 우루무치를 경유, 키르기즈스탄을 관통해 우즈베키스탄까지 연결하는 중국-중앙 아시아 고속도로도 건설 중에 있다. 新실크로드라 불리는 이 고속도로의 중국 내 구간은 이미 다 완공되었고 나머지 구간도 2008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인데, 철도에 이어 도로망까지 갖춰진다면 중국의 중앙아시아 접근은 더욱 용이해질 전망이다.


● 지리적 인접성과 언어적 동질성을 활용하는 터키


터키 역시 중앙아시아 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다. 또 터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같은 터키어족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언어적 장점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섬유 산업이 발달한 터키는 면화가 풍부한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일찌감치 진출하여 현지 섬유 산업을 장악하였고, 이제는 건설과 유통, 그리고 가전 산업까지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유통 분야이다. 터키 업체들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의 Ramstore, 우즈베키스탄의 Migros, 투르크메니스탄의 Yimpas 등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최초로 대형 하이퍼마켓(Hyper Market)을 선보였는데, 이들은 스스로 고급유통 시장을 만들어가며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르다며 주저할 때 과감히 고급 유통분야로 뛰어들었다.


결국 이 전략은 적중하였고, 이제는 터키 유통 업체들이 현지 유통 시장의 리더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 뿐 아니라 가전 분야에서도 VESTEL, BEKO, ARCELIK 등의 터키 가전 업체들은 1990년 한국 가전 업계가 해외 선진 시장에서 사용했던‘품질 대비 가격 만족’이라는 모토를 앞세워 무서운 기세로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중앙 아시아 시장에 쏟아내며, 한국과 일본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씨앗 뿌리기


우리 기업들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전, 자동차 등 상품 수출 경험이 비교적 풍부하지만, 현지에서의 대형산업 플랜트 건설이나 투자 활동 경험은 일천하다.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한국의 종합 상사들도 많지 않다. 그나마 카자흐스탄 정도가 대부분이고, 우즈베키스탄에2~3 업체 정도가 전부이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에는 한국인 종합 상사 주재원도 전혀 없다. 건설, 엔지니어링 업체의 진출 역시 전무한 상황이다. 과거 한국가였던 러시아의 진출이나, 지리적으로 인접한 터키, 중국의 진출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유럽,미국, 그리고 일본 업체들도 요소 요소에 나가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우리 기업들은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 아시아는 우리와 문화권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일종의 특수 지역이다. 한국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시장 정보를 얻거나, 시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현지 경험을 갖고 있는 기업만이 뭔가를 도모해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 기업이 유독 우즈베키스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 경제 규모는 카자흐스탄의 1/4도 안 되는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수출이 카자흐스탄으로의 수출보다 2배나 더 많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10년 전 한국의 한 대기업이 현지에 다양한 투자 사업을 벌였고, 이를 보고 순차적으로 진출한 각 기업들의 크고 작은 성공 사례들이 계속 쌓이며 한국 기업들 사이에 시너지가 계속 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최대의 방적 업체로 성장한 대우 텍스타일은 인도 등 해외 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이며, 1997년 3백만 달러 투자로 인수한 이동통신 업체Unitel을 투자금의20배 이상의 가격으로 2005년 매각해 큰 수익을 남기는 대우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동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마땅한 사업도 없었고, 또 일본과 달리 한국은 ODA 자금 운용 규모도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제야 씨 뿌릴 땅이 있는지 기웃거리는 상황인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우리보다 10년은 앞서 중앙아시아 시장에 씨를 뿌려둔 상태이고, 중국, 터키 업체들은 지리적, 언어적, 가격적 이점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닌 장점들을 우리가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 경험, IT와 서비스 개념이 접목된 신개념 건축, 교통 카드 등 IT 능력을 내세운 SI 분야 등 한국 업체가 지닌 장점과, 지난 15년 이상 가전, 자동차 등 소비재 수출로 닦아 놓은 한국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 그리고 최근 에너지 외교를 위해 정부에서 조성한우호적 국가 간 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시장 여건이 급변해 우리가 씨를 뿌릴만한 기름진 땅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산중턱 어디라도 씨를 뿌리며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 5년, 10년 후 이 시장에서 뭔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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