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오히려 ‘약’이 된 선관위 결론



선관위 노 대통령 선거법 ‘일부 위반’ 결정... 선거법 논란 ‘보호막(?)’
선관위의 결론으로 노 대통령의 일부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든 반면
정치권에서 선거법 논란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배수의 진’ 친 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이하 참평포럼) 강연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7일 결론을 지었다.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에 대해서는 위반을 하지만 사전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법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선관위는 이날 발표문에서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특정정당의 집권 부당성을 지적하고 예비 후보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은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에 속한 단순한 의견개진의 범위를 벗어났다”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을 명백히 하고, 대통령에게 선거중립 의무를 준수토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9조1항은 ‘공무원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사전선거운동에 대해서만큼은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낙선되게 할 목적으로 능동적, 계획적으로 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미흡해 법 위반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결론을 지은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선거 중립의무를 준수토록 요청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우선 선관위의 결정은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을 위반했으나 법적 조치가 단순한 ‘자제 요청’을 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점에서 또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특히 선관위의 결론으로 노 대통령이 일부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든 반면 정치권에서 더 이상의 선거법 논란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배수의 진을 친 셈이 됐다.

일단 선관위가 내린 결론 중에는 중립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 조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의문을 준수해달라는 협조 공문이 고작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제동이 걸릴 지는 미지수다.
선관위 결론으로 당분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노 대통령이 또다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는 한 "반격" 차원의 정치적 발언은 계속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관위 결론은 노 대통령의 정치 활동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으나 차기 대선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행보에 ‘방어막(?)’을 쳐준 셈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활동 반경내에서 대선주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범여권 대통합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정치를 주도할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 선관위 결론, 盧에 부담인가?

선관위가 노 대통령의 공무원 중립의무에 대해 위반으로 결론내고 ‘선거중립 의무 준수 요청’은 강제적 제재로 보기 어렵지만 노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참평포럼 때처럼 노 대통령이 앞으로도 고강도의 발언을 쏟아낼 경우 ‘경고 누적’으로 검찰에 고발조치당할 수 있다. 임기내 형사소추를 금지한 대통령의 면책특권으로 당장의 기소는 불가능하지만 선거법 위반 등의 사안에 대한 수사 자체가지 막을 수 없을뿐더러 퇴임후 기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임후 검찰로부터 기소당한 역대 대통령들의 사례가 남아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 기소 받기는 전례가 없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라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 노 대통령은 대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범여권 후보를 비롯해 야당의 후보를 신랄하게 비판, 공격하면서 레임덕을 막아왔지만 앞으로는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ㆍ미 FTA 타결 이후 30%대 국정지지도를 기록했던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참평포럼 발언 등에 매달리면서 지금 2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국정지지도가 이렇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선관위 판결은 노 대통령 역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노 대통령의 스타일상 그냥 앉아 있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근거없는 정치적, 정책적 공세에 침묵한다면 이는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계속 밝힐 것은 밝히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문화와 선거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쟁점화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은 선관위의 결론이 난 7일 정태호 청와대 정무팀장을 통해 국회연설을 요청해 놓았다. 특히 대선 후보가 좁혀져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지원하거나 또는 반대후보들을 계속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 노무현 정치행보에
보호막(?) 쳐준 선관위

이처럼 노 대통령의 후보들에 대한 비난은 일정 수위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발언 수위 상한선을 선관위가 규정지었기 때문이다.
선거법 일부 위반을 한 것으로 결론 났지만 사실상 노 대통령은 별도의 제재나 처벌은 받지 않는다. 다만 중앙선관위로부터 선거중립 준수를 위한 요청만 받을 뿐, 앞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대한 어떠한 제동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한나라당이 선관위의 결정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유명무실한 결정”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예상대로 강력 반발,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의 발언은 근거없는 정치공세에 대한 정당한 반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한 선관위의 결정은 매우 유감스럽고 납득하기도 어렵다”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러한 청와대의 반응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자율권 즉 정치활동 반경을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선진민주국가에서 국가지도자의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보편적 원리”라고 당초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준수요청이라는 것이 선관위법에 명백한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다"며 "형쟁처분인지 등 성격또한 모호한 결정으로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선관위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임기말 노 대통령이 정치행보를 지속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 선관위의 결정은 겉으로는 노 대통령의 활동반경을 제한한 조치로 보이지만 향후 추가적인 선거법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치권에 제시한 것으로 오히려 정치권에 재갈을 물린 셈이 됐다.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에 대한 상한선을 제시함에 따라 노 대통령은 그 범위내에서 정치행보를 취할 수 있다. 때문에 선관위가 제한한 범위 내에서의 노 대통령의 정치활동에 대해 정치권이 앞으로 선거법 위반 문제를 거론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강제적 제재가 없는 선관위의 선거중립 준수 요청인 만큼 노 대통령은 이 상한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
정치권은 선거법 위반 논란이 법적 대응 등 쟁송절차로까지 확대되길 원치 않고 있어 사실상 선거법 논란은 이날 결정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정국에서 한차례 소용돌이로 자칫 대선 판이 흔들려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는 만큼 선관위의 결정에 만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이날 기자와의 만남에서 향후 조치에 대해 “법적대응 등 탄핵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탄핵 사태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정쟁으로 몰고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선관위의 결론은 노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물꼬를 터준 반면 정치권이 더 이상 반발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이밖에 청와대가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면서도 신중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제스쳐도 앞으로의 노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선관위가 또다시 제제에 나설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압박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여, 사실상 선관위도 더 이상의 제재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이뿐 아니라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강연이 국정의 중심에 서기 위한 것이었다면 선거법 위반이란 판단으로 상처를 입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헌법소원, 행정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논란을 이어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앞으로 노 대통령의 대선후보를 겨냥한 발언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며 정국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문 전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늘 제8차 전체 위원회의에서 지난 6월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행한 대통령의 선거관련 발언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관하여 심도있는 논의와 검토를 거쳐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먼저, 공직선거법 제9조가 규정한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여부에 관하여는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선거에서의 중립을 유지하여 공정한 선거가 실시되도록 총괄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져 오고 있는 시기에 다수인이 참석하고 일부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중계된 집회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있어 특정 정당의 집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에 속한 단순한 의견개진의 범위를 벗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위 법조(항)가 정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결정했다.
다음, 공직선거법 제 60조, 제254조 제2항이 정한 선거운동금지 위반 여부에 관하여는 강연의 대상이 참여정부평가포럼 회원으로 국한되었고 위와 같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대한 비판 발언 내용은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야당과 언론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반박과정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를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낙선되게 할 목적으로 능동적, 계획적으로 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미흡하여 위 법조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공직선거법 제 87조 제2항의 사조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위 포럼의 발족 후 지금까지의 모든 활동 내용을 검토한 결과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사조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리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안이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는 보기 어려우나 대통령의 선거에 있어서의 중립의무에 위반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를 준수하고 앞으로 유사한 사안으로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즉시 발송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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