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배신? 개인이나 국가나 노력하지 않으면 결실도 전혀 없다
세상의 두 부류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 vs ‘불만 많고 다투는 사람들’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 “진정 고귀한 것은 과거의 자신보다 더 우수해지는 것”
2020년 대한민국의 선택...선택에 따른 운명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아요. 노오~~~력해봤자 안 되는데... (20대의 74%가 응답)”

“내 자식만큼 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는데...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접어야 할 것 같네요.(응답자의 71.1%)”

2019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값어치가 떨어진 단어가 희망(希望)과 노력(努力)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참으로 우울하고 암담하다. 해당 조사에서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중은 28.9%에 그쳤다. 2009년 48.3% 대비 19.4% 포인트 급감했고 2017년보다 0.6%포인트 떨어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식 세대에 대물림된다는 ‘수저 계급론’이 확산된 결과로 해석된다.

‘본인 세대에서 계층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본 비중은 22.7%에 불과했다. 특히 ‘금수저’일수록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반면 ‘흙수저’일수록 비관적으로 여기는 비율이 높았다. ‘엄마 찬스’로 대학을 가고, ‘아빠 찬스’로 장학금을 받고, ‘부모 찬스’로 집을 사는 뉴스를 보니 희망보다는 절망감이 앞섰을 것이다.

집값이 폭등하자, 전세나 월세로 사는 서민과 중산층들은 물론 사회 초년생들의 좌절감은 더욱 심해졌다. 원인은 정부의 헛발질 부동산정책인데도 그건 보지 않은 채 ‘가진 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표출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과연 그렇게 남 탓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오래전 방영된 TV 광고에서 한 학생이 우등생에게 물었다. “공부 잘하는 비법이 뭐야?” 우등생이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공부나 해?” 2019년 대학 입시에서 수능 만점을 받는 학생의 인생 좌우명은 단순했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남들보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지도 않고, 가정 형편도 어려우니 남은 선택지는 ‘노력이라는 고통’ 뿐이었다는 그의 답변이었다.

재능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재능은 ‘노력’이라고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한자 한자 채우다보니 어느덧 장편을 완성하게 되고, 대작은 붓칠 한 번 한 번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다.

<천지창조>가 그려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은 길이 40.93m, 폭 13.41m의 크기이다. 높이도 20.7m에 달한다. 미켈란젤로는 거기에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빨리 칠해야 완성된다. 20m가 넘는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는 자체가 엄청난 노역이 아닐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면서 <천지창조>를 그렸다. 관절염과 근육통을 앓았고 떨어지는 물감 때문에 눈병까지 생겼다. 4년여의 노력 끝에 미켈란젤로는 후세에게 <천지창조>라는 불후의 걸작을 남겨줬다.

‘죽어라고 노력해봤자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유행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고, 개천의 용과 결혼하면 개천으로 끌려 간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렇지만, 금수저가 마냥 금수저인 것도 아니고, 흙수저가 마냥 흙수저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금수저의 최대 적은 ‘현실에 안주하는 안일한 마음’일 것이고, 흙수저의 최대 적은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주저앉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약하면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할 때 운명 자체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처칠도 “체력이나 지능이 아니라 노력이야말로 잠재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라고 설파했다.

수학 공식으로 이를 풀어보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매일 1%씩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보자. 하루가 지나면 1.01이 되는데 1.01을 365번 곱하면 즉 (1.01)³??=37.7이 되는 반면, 1.00을 365번 곱하면 즉 (1.00)³??를 해도 1이 된다. 조금씩 발전하는 것과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의 어마어마한 차이다.

영화 <킹스맨>의 가장 유명한 명대사는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Manners maketh man)”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대사가 있다. 바로 고귀함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게 아니다. 진정 고귀한 것은 과거의 자신보다 더 우수해지는 것이다. (There is nothing noble in being superior to your fellow man. True nobility is being superior to your former self.)”

국가도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의미한다. 혁명은 수많은 분노와 파괴, 살상을 부르지만 개혁은 삶의 개선과 국가의 발전으로 이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국이다.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모루아는 <영국사>에서 “영국 역사는 인간의 가장 뛰어난 성공의 기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국은 과거 로마시대에 ‘짙은 안개에 휩싸인 세계의 끝’ 쯤으로 인식됐고 마귀들이 사는 세상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영국이 산업혁명을 태동시켰고, 근대사회의 양대 축인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최초로 정착시켰다.

영국의 힘은 ‘모든 의회의 어머니’로 불리는 의회를 통해 나왔다. 영국 의회는 명예혁명(1688년)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완성했고, ‘의회가 왕에 앞선다’는 원칙을 확립하면서 국가재정의 통제 권리가 의회에 있음을 명시했다. (국회를 무시하는 2019년 대한민국과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특히 반역이나 혁명을 거치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는 길을 택했다. 앙드레 모루아는 이를 두고 “영국의 진정한 힘은 타협의 정신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자유와 자율에 기준을 두고 ‘자기 책임의 원칙’을 강조하는 영국인들은 하루하루 ‘개선하는 노력’을 통해 결국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영국 잔디가 푸르른 것은 100년 이상 가꿨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끊임없는 노력이 국가를 번영의 길로 이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성공했거나 성공을 위해 꿈꾸는 사람들’과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2019년 한 해 동안 ‘불만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득세했다. 조용한 다수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래도 어찌 됐든 2019년은 지나갔다. 이제 와서 지나간 세월을 후회한들 바뀔 게 아무것도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2020년을 맞아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와 경제 상황을 냉정히 살펴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일일 것이다. 특히 정치가 경제를 살리기는 어렵지만, 정치가 경제를 망치기는 너무나 쉬운 상황에서 4.15총선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중대한 운명이 걸린 경자년 2020년을 맞아 우리는 두 부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일까? 선택도 그에 따른 ‘도약이냐 패망이냐’의 운명도 결국 우리 모두가 감당할 몫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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