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은 면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극적인 양보로 경선룰 갈등은 수습 국면으로 돌아섰다. 또 4.25 재보선 이후 전개돼온 한나라당 내홍 사태도 일단 봉합되면서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경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전 시장의 ‘양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4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경선 룰 중재안의 핵심 부분인 ‘일반 국민 투표율 하한선 보장 조항’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양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시장은 회견에서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 중 3항인 '67% 조항'을 조건 없이 양보하겠다”며 “나만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양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일반 국민 투표율 하한선 보장 조항’이 여론조사 반영률을 왜곡한다며 수용불가를 외쳤으며 박 전 대표에게는 ‘당의 결정을 따르라’고 촉구해왔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약속과 원칙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잘 판단하셨다.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나가자"고 김무성 의원을 통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양 측 다 명분과 실리 챙겨

이명박 전 시장의 ‘양보’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측 모두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이다.
이 전 시장은 당내 분열까지 예견되던 경선 룰 갈등에서 통 큰 양보로 먼저 손을 내밀어 당의 내홍을 진압하는 정치력을 보였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14일 “정치인 이명박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동안 경제 전문가로서의 강점에 비해 약점으로 꼽혔던 정치력 부족을 상쇄할 전기를 마련했다.
실리에 있어서도 손해 보는 것은 없다는 분석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중재안 합의로 8월 경선이 미뤄지는 것을 막았으며, 앞으로 뒤따를 세부 경선 논의에서 이 전 시장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며 “국민선거인단 사전등록제 등으로 국민참여 투표율이 높아진다면, 여론조사 반영비율 하한선 보장은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도 크게 잃은 것은 없다. 원칙을 고수하며 이를 관철시키려는 정치력을 보여줬으며 더 잃을 표를 없애는 실리도 챙겼다.
그는 이번 경선 룰 문제에서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국민에게 그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자,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새겼다. 그리고 발목을 잡고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북한 핵실험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박 전 대표에게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장 큰 장벽”이라면서 “4·25 재보선 이후 박 전 대표가 보여온 굽히지 않는 모습은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숨통을 틔었다. 사퇴결심까지 하며 고심하던 강 대표에게 이 전 시장의 양보와 이를 수용하겠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은 그의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당내 경선을 주도할 2대 주자들의 재신임을 얻은 만큼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경선 관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갈 길이 멀다

한나라당은 1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상임전국위원회 등을 통해 경선 룰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 된다면 5월 하순부터는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정면 승부가 이뤄지게 되는 것.
하지만 그들의 정면 승부 전에도 넘어야 할 산들은 많다. 핵심 당직자의 “경선 룰이 어렵사리 매듭지어졌지만 앞으로 양측이 부딪힐 소재는 많다. 수차례 더 당 분열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말처럼 내분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기 때문.
이 전 시장의 말처럼 “아름다운 경선”이 될 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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