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은 토지 사용권을 ‘절대 착하지 않은’ 정치인과 관료에게 넘기는 일
경제민주화는 효율성이 우선인 경제에 정치를 입히는 행위로 ‘결과는 뒤죽박죽’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공동체는 결국 ‘비효율적인 정치공동체'로 변질된다
블룸버그 통신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자 정부’ - “한국 경제는 개집(doghouse) 신세 됐다”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민주노동당, 정의당 같은 경우가 사회주의적 정책을 띄고 있다. 경제민주화, 토지공개념 등등은 이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정책의 하나라고 그렇게 본다.”(9월6일 조국 법무장관 청문회)

"우리 헌법 속에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모두 포함돼 있다"(9월26일 조국 법무장관의 국회 답변)

조국 법무장관의 발언에 언론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세한 분석도 거의 없었다. 그런 모습이 더욱 위험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일반 국민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까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정자본주의’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한 언론사 논설위원도 “지금은 사회주의가 악(惡)인 시대가 아니다. 수정자본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고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가 접목되는 건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국민은 조국을 사회주의자라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적었다. 과연 그는 사회주의의 본질 즉 사회주의 도그마에 빠지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되는 지를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는 것일까.

조국 법무장관의 ‘사회주의자’ 발언 이후 블룸버그통신은 문재인 정부를 ‘사회주의자 정부(Socialist Government)’라고 규정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7월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주의 실험으로 한국 경제는 개집(doghouse)신세가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국장관 임명은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정부임을 공포한 것”이라며 사회주의에 숨겨진 악마적 성격을 경고했다.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평등과 분배, 공동체 정신’ 등의 단어에 반감보다는 호감을 갖는 것 같다. 그 속에 담긴 ‘비민주적이며 파괴적인 성격, 그리고 패망으로 귀결되는 악마성’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회주의 정책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기에 한 나라의 경제와 민생을 망가뜨리는 걸까.

조국 법무장관이 언급한 토지공개념부터 보자. 땅은 사람이 발을 딛고 사는 기반이자 모든 생산 활동의 기본 자산이다. 그러면서도 땅은 움직이지도 않고 사실상 늘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부동성(不動性)과 공급의 한계로 인해 늘 공공(公共)개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게 국가나 공기관이 소유권을 갖는 공유(公有)나 모든 사람에게 소유권을 부여하는 공유(共有)개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얘기되는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토지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토지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붐이 일어났을 때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등이 시행됐다가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토지거래신고제, 농지취득자격증명제 등의 제도는 시행중이다.

토지공개념의 취지는 참으로 좋은 것 같은데 왜 위헌판결이 나오고 그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 지는 시장경제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토지에 대한 개인 소유가 허용되지 않고 사용권만 인정된다. 도시를 건설하려면 농촌의 땅을 국유화(징용)하고, 정지 작업을 거친 후 부동산 개발업자나 기타 수요자에 배분한다. 농민이 경작하는 땅을 보상할 때는 농작물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데, 징용 전 3년 평균 연작물의 6~10배 규모다. 지방정부는 이를 행정배정, 출양(出讓), 연조, 기업출자, 수탁경영의 방식으로 토지사용권을 넘긴다. 가장 보편적인 출양의 경우 현이나 시의 정부가 토지사용권을 부동산업자에게 넘기고 일시불로 토지출양금을 받는 것이다. 토지사용권의 기간은 주거용지 70년, 공업용지 50년, 상업용지 40년 등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지방정부가 받는 출양금이 농민들이 받는 보상비의 10배가 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출양금이 1조원이라면 농민에게는 기껏해야 1천억 원 안팎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나머지 9천 억원은 지방정부의 몫이 된다. 농민들은 당연히 엄청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 시위에 나서는데, 집단시위 사건의 원인 가운데 절반가량이 토지 징용과 재개발 관련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출양금에서 보상비를 뺀 엄청난 이익을 지방정부, 달리 말하면 공산당 간부들이 마음대로 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 개발업자도 엄청난 부를 얻게 된다. 토지징용으로 인해 농민만 피를 흘리고 ‘공산당 간부와 부동산업자의 돈잔치’가 이뤄질 수 있는 게 토지 소유를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현실이다.

다른 자원과 마찬가지로 토지도 소유권과 사용권으로 분리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 소유권을 제한할 경우 사용권에 대한 정부의 권한 행사부분이 커진다. 정부란 정치인과 관료들을 의미하므로 실제로 소유권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권한 행사를 하는 것이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국민 세금을 제멋대로 쓰는 사례, 힘 있는 권력자와 결탁한 기업인들이 공공사업에서 대거 이익을 취하는 사례와 비슷한 일이 토지공개념 확장의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으로 대표되는 공적 통제란 결국 국민 개개인이 아니라 정치인과 관료들이 제멋대로 자원을 사용할 권리를 확대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공개념에 의해 개인의 소유권이 제한될 경우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날 수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에서 농부들이 너나없이 가축을 키워 토지를 황폐화시킨 사례를 말한다. 개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토지를 함부로 사용해 땅을 망가뜨리고 더럽히는 것이다. 동유럽과 소련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 조사해보니 토지에 대한 오염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비해 너무나 심해서 서구 경제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국내에서 ‘공유지의 비극’으로 명태가 사라진 것을 들 수 있다. 바다에는 주인이 없어 먼저 잡는 어부가 이익을 얻게 된다. 결국 어부들이 쌍끌이 어선으로 마구 잡아들이다보니 명태가 사라져버렸다.

경제민주화란 자유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빈부격차를 보다 평등하게 조정하자는 취지의 용어이다. 좌파 사회주의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노동계층의 기업 경영 참여 등을 강조한다. 그러한 제도는 과연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까?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최근에는 마을 공동체)은 구성원들까지 서로 돕는 착한 존재’이고, 기업은 ‘이윤만 밝히는 부도덕한 존재’로 인식한다. 서로 마음과 힘을 합친다는 ‘협동’이라는 자체가 참으로 달콤하게 들린다. 하지만 막상 협동조합을 운영하다보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대실패로 끝났던 집단농장과 같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리라’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국에서 유기농 매장으로 유명한 홀푸드마켓의 설립자인 존 매키는 “협동조합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의 현상이다”고 잘라 말했다. 매키가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 과정이 흥미롭다.

매키는 젊은 시절 기업과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탐욕과 이기심,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윤이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필요악’으로 간주했다. 경쟁이 아닌 협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를 개혁할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윤이 아닌 사람을 위한 식품’이라는 식품조합의 구호에 공감했으나 곧바로 환상이 깨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동조합의 실제 모습을 보면 기업가적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정치적 화젯거리로 변질돼 효율성이 떨어지며,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사람들이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의견을 내세워 협동조합을 장악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개선을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불매운동 대상 기업 선정에 에너지를 쏟는다고 지적했다.

존 매키는 자본주의를 죄악시하는 많은 학자들이 ‘시장경제란 너와 내가 만든 협력체제가 아니라, 너와 나를 지배하는 구조적 폭력’이라고 설명하는데, 존 매키는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이러한 학자들의 시각을 반박했다. 그는 기업을 둘러싸고 소비자, 근로자, 투자자, 공급자(협력업체)가 있다며 다음처럼 설명했다.

‘소비자(고객)는 시장에서 해당 기업 외에 다른 기업 제품을 선택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근로자(직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투자자(주주)는 이익이 신통치 않으면 다른 곳에 자본을 투입할 수 있다. 공급자(생산자)는 여러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어느 누구도 기업과 거래는 강요받지 않으며, 투자자 경영진 직원 공급자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이익을 얻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존 매키는 아무리 훌륭한 취지와 의욕을 갖고 있어도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은 우리 제품이 너무 비싸다고 여기고, 직원들은 월급 수준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며, 공급자들은 구매 규모가 작고 납품가격 때문에 늘 불평이며, 지역 비영리단체들은 끊임없이 기부를 요청하며, 정부는 세금을 포함해 회비 면허요금 벌금 등 가지각색의 비용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존 매키는 “나는 탐욕스럽지도, 이기적이지도, 사악하지도 않은데 어느 순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기업가가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존 매키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사회주의 철학에서 벗어났다고 강조했다. (필자의 <이기적 국민> 참조)

노동자의 경영권 장악은 기업을 정치판으로 만드는데, 베네수엘라에서 그러한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노동자들이 의논을 해서 경영을 하도록 했더니 친정부 노동자들은 기술이나 숙련도와 관계없이 중요한 직책을 차지했고 당연히 생산성과 효율성이 감소했다. 경영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risk-taking)’로서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데 노동자들에게는 그러난 능력이 없었다. 당연히 새로운 기술과 장비의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에서 민주주의는 결과 못지않게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중요하다. 반면에 경제는 의도 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효율성이 우선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좌파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를 외치지만, 경제에 정치 용어인 민주화를 입히면 경제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도 좌파 사회주의는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방법을 궁리하는 것에 앞서 사회적 강자 특히 부자를 욕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다. 가난한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것보다 부자들을 강탈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부(富)가 피와 땀의 산물이요 노력의 결정체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 가난해지는 결과를 빚는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혼란스럽고, 불공정하며, 파괴적이다’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래 보인다. 하지만 다른 모든 대안에 견주어 가장 정확하고 실용적인 방법이 무엇이냐고 할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다른 어떤 대안보다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의 비현실적인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떠받드는 ‘무지몽매한 외눈박이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마치 조국처럼.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