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뻗고 못자는 한국당 ‘왜’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회동하고 있다.[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와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침입 그리고 북한이 25일 새벽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단거리미사일 2발을 동해로 발사하면서 동북아시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여야는 경제·외교·안보 분야 등 다방면에서 맞은 격랑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 답을 찾기보다 문제에 대한 소모적인 정쟁에만 몰두하는 등 정치력 부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야당은 일련의 안보 현안 사태와 관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의 총체적 난국이라고 공세를 펼치고 있고 여당은 이러한 지적을 저지하고 문제 해결에 당력을 집중하면서 추가경정예산안과 선거제 개혁이 또 다시 뒷전이 된 형국이다.

◆민주당 추경 급하다더만 뒷전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 초청 오찬 간담회에 앞서 이인영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5당 대표와의 회동에서도 10차례 넘게 추경 처리를 강조한 것에 이어 지난 23일 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오찬 회동에서 추경을 당부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추경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본 경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추경 대응이 시급하다고 압박하지만 정작 자유한국당의 원포인트 안보 국회 제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의 추경 통과조건은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한국당이 끊임없이 조건을 쌓아올려 ‘추경절벽’, ‘추경산성’을 세운 것”이라며 “국민과 단절, 소통을 하지 않겠다던 ‘명박산성’과 같은 추경불통의 상징물을 만들어버렸다”고 맹비난 했다.

이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지금 막고 있는 것은 비단 추경만이 아니라 경제 활성화 그 자체”라며 “경기대응이 늦어지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한국당의 추경처리에 대한 행태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지뢰를 매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분명하게 경고한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추경에 대한 한국당의 태도가 일본이 경제를 정치 분쟁으로 악용하는 나쁜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이제라도 자유한국당은 정치와 경제를 뒤섞는 일본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당정은 상반기 재정집행관리실적을 토대로 하반기도 확장적 재정기조를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고 당정은 금명간 핵심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내년도 본예산에 관련예산을 1조원 이상 반영할 것”이라면서 “당정이 수립한 하반기 재정전략에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추경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추경 처리를 압박했다.

조 정책위의장은 추경을 통해 시급히 예산충원에 나서야 할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중소조선사 전용보증사업 ▲고용·산업위기지역에 희망근로사업 ▲중소기업 융자사업 ▲국민안전관련 사업 등을 열거하며 추경 처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안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열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제안을 구체적으로 들어봐야 하겠지만 어떤 목적에서 말했는지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어 “저희는 지금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중요하고 안보 협의도 중요하지만 (원포인트 국회를) 하자고 하면 여러 가지 조건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은 우리가 볼 때 정상적인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제안하는 것 자체가 존재감을 보이고 정쟁을 위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그간 ▲패스트트랙 사과 ▲국방부장관 해임 ▲목선 국정조사 ▲경제실정 청문회 ▲특위 위원장 양보 등 이슈가 바뀔 때 마다 끊임없이 조건을 달아 왔다면서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더 이상 정쟁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며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추경 포기한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사진 / 시사포커스 DB] 

오히려 민주당을 향해 야당이 ‘추경 의지가 있느냐’고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지난 22일 여야 3당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은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아래 회동, 추경 처리를 위한 7월 임시국회 소집 등 의사일정 협의에 나섰지만 여야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이와 관련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지난 23일 KBS 1TV '여의도 사사건건'에 출연해 “추경이 그렇게 급하다고 해놓고 그 해임건의안 표결도 거부하는 민주당에 모든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또한 “지금 일본의 무례한 무도한 보복 때문에 추경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11월, 12월부터 일본 보복 문제가 사실은 정권에서 이걸 고려하고 있었다면 4월 추경안에 국산 소재 부품화, 예산을 담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라며 “국회에 3000억, 8000억 얘기하면서 그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무조건 백지 수표로 위임해 달라, 세상에 우리 국민의 혈세를 쓰면서 어떻게 그 내역도 안 가르쳐주고 무조건 돈 내놔라? 이런 추경을 하자는 것도 내용적으로 잘못돼 있고 형식적으로도 정말 민주적인 국회법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가진 민주당인지, 전혀 납득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해줄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며 “추경이 최장기간 지금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데 지금도 하시는 말씀 결국 들어보면 추경은 안중에 없고 추경 이외의 정치적 공세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플러스알파를 얻겠다는 속셈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4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이 요구하는 일본 경제보복 대응 추경 예산과 관련해 ‘깜깜이 예산’이 아닌 정보 공개를 할 경우 일본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날 “이 부분이 국회를 통해서 완전 오픈되는 것은 경제전쟁의 상황에서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산자부가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여당으로서 국정과 관련돼 있는 최종 책임은 늘 여당의 몫”이라면서 “통 큰 양보를 통해서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오히려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서 당당하게 우리가 국익 중심으로 해서 대응해야 할 이때, 한국당의 도발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할 부분은 대응하되, 만약에 이 부분에 대해서 통 크게 협의할 부분도 같이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보면 민주당은 추경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야당의 요구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주목되는 점은 민주당이 7월 국회가 아닌 8월 국회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윤후덕 의원은 지난 23일 문 대통령과 원내대표단 오찬 자리에서 “8월에는 추경을 반드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 원내대표를 만난 후 기자들에게 “7월에 결정이 돼야 한다. 물론 8월 초로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추경은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 뻗고 못자는 한국당

한국당도 일본 경제보복 대응 관련 추경이 늦어질수록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보복을 대응하기 위한 추경안 처리가 한국당의 정경두 해임건의안 상정, 안보 국정조사 등 무리한 요구로 막혔다는 비판이 계속 되고 있고 무엇보다 대일강경모드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여당을 한국당이 지적하는 것에 ‘친일’이라는 딱지가 붙이면서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한국당의 지지율도 많이 빠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2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를 보면 한국당은 전주 대비 3.2%p 내린 27.1%를 기록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대비 4.0%p 오른 51.8%를 기록했고 민주당도 3.6%p 올라 42.2%로 반등했다.

리얼미터가 25일 발표한 정당 지지율./ⓒ뉴시스.

또한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성인 1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5일 발표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다. 응답률은 4.8%)를 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2.2%p 오른 54.0%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지난주보다 1.1%p 오른 43.3%, 한국당은 지난주 대비 0.3%p 내린 26.8%를 기록했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부의 경제·외교에 공세 수위를 높이던 한국당이 되레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 군용기의 우리 영공 침해와 관련해서도 ‘대한민국 사방이 뚫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한국당과 공조 강도를 높였던 바른미래당에서도 우리 군 대응을 칭찬해 한국당의 비판을 무색케 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24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합참은 러시아 군용기 영공 침범에 대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단호히 대응했다고 밝혔다”며 “영토수호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 우리 군과 박한기 합참의장의 대응에 박수를 보낸다”고 치켜세웠다.

하 의원은 “안보불안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많은데 이것을 해소하는 길은 우리 군이 국민과 영토방위에 대한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러시아 군용기 영공 침범에 대한 우리 군의 단호한 대응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한국당의 안보불안 공세가 잘 먹히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한국당이 제안한 ‘원포인트 안보국회’가 일종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민생 그리고 추경안 처리에 방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부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정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를 여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한 결의안도 외교통일위원회에서만 통과돼 있는데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국회 전체 의견도 밝힐 필요가 있다”며 “집권당이 정신 차리고 국정 운영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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