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공 나선 한국, 수위 높이는 바른미래, 방어막 치는 與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강효상 의원의 한미정상 전화통화 내용 유출 사건에 이어 황교안 대표의 전방지역 GP(감시초소) 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자유한국당이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비공개 회동을 두고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적만남”이라고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한국당은 “관권선거”라고 주장하며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민주당도 한국당을 향해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강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방침을 검토하는 등 야당의 반격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여야가 상대의 악재를 두고 사생결단 공방전을 벌이면서 국회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양정철-서훈 ‘밀월’…관권 선거의 서막인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 및 총선전략을 구상하는 양 원장과 국내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인 서 국정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넷 언론 ‘더 팩트’는 지난 27일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이 지난 21일 오후 6시20분부터 4시간 이상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 집에서 독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의 만남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양 원장은 기자들에게 “당일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서로 아는 오랜 지인”이라며 “국정원 원장과 몰래 만날 이유도 없지만 남들 눈을 피해 비밀회동을 하려고 했으면 강남의 식당에서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정원장이 비밀 얘기 할 장소가 없어 다 드러난 식당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가정 자체가, 정치를 전혀 모르는 매체의 허황된 프레임일 뿐”이라며 “비밀 이야기를 나눠야 할 눈치 보이는 회동이라면 어떻게 둘이 함께 당당히 걸어 나와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예의를 갖춰 헤어지는 모습을 다 노출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양 원장은 독대가 아닌 지인들과의 식사자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지인들의 경우 공직자도 아닌 민간인 신분을 프라이버시 고려 없이 제가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일방적으로 공개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단순한 발언만 오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독대를 두고 신(新) 밀월관계로 들어선 당정청이 기획하는 관권 선거의 서막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가뜩이나 혼란스런 국회에 기름 끼얹은 양정철-서훈의 만남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 문제와 관련 국정원에 항의 방문을 하거나 서 국정원장을 정치 관여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제9조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판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8일 “총선을 1년도 채 앞두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서 도대체 왜 정보기관 수장이 (여당) 선거 실세와 만나야 했는지 국민들의 의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며 “온갖 민감한 정보와 기밀을 다루는 국정원 원장이 친문 공천 특명을 받은 대통령 측근 실세와 밀회 해 아예 대놓고 국정원장이 직접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 내 공천자에 대한 정보 수집, 야당 죽이기를 위한 정보 수집, 그리고 대북 정보의 수집 통인 국정원을 통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여러 시도가 있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서 원장을 피고발인으로 한 고발장을 가급적 오늘 안에 제출하려 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도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의 만남에 대한 비판에 가세한 상태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총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전략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최측근과 장시간 만남을 가진 것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시비를 자초하는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오 원내대표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의무를 져야 하는 서 국정원장이 이 부분에 대해서 대체 어떤 성격의 만남이었고,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인지 성실하게 해명 하고, 청와대는 국정원장과 대통령 최측근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도 최소한 주의라도 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적인 대응”이라고 주문했다.

민주당은 야권의 과잉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지인 간 사적인 만남”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원내대표는 총선개입 의혹 제기와 관련해서는 “지나친 해석”이라며 “아예 안 만나야 되는 것인가. 정말 그렇게(정치 개입) 하려고 했다면 아예 은밀하게 만나야 한다. 과하게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왜 국정원 국내정책파트, 정치개입파트를 없앴겠는가”라며 “사적으로 만난 것인데 왜 자꾸 불필요하게 정치적으로 말 하는지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혜훈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 “사적인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은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랑 아주 오래된 지인이고 너무나 가까운 가족 같은 사람이라 만나서 여러 가지 의논한 게 아무 문제 없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쏘아 붙였다.

이 위원장은 “국정원의 수장이 여당의 총선 전략을 짜는 사람을 만나서 밀담을 나눈 현장이 포착됐고 만난 건 확인됐다”며 “그런 의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사자들 얘기일 뿐”이라고 사적인 만남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문제를 제기 했다.

이처럼 문제가 불거지자 회동에 동석한 한 언론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민감한 정치적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국정원장-유력 정치인-특정 언론인이 만나는 ‘밀실정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여권 내에서도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의 만남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 아무리 사적 모임이라고 이 시점에 뭐하러 만났는지라는 느낌은 있다”고 말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사진 / 시사포커스 DB]

◆꼬리 무는 ‘공방’

외교부는 이날 강 의원과 기밀을 유출한 소속 외교관 K씨를 형사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발맞춰 민주당도 한국당의 역공에 맞서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외교부·국방부 관계자들과 긴급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를 열고 강 의원의 기밀 유출 논란에 대해 논의했다.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이 강 의원의 기밀유출과 관여했다는 의심을 하거나 황 대표의 ‘GP 발언’을 문제 삼고 사과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한국당이 눈앞의 이익을 쫓느라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국기를 문란케 하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긴급 회의를 소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강 의원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한미정상의 신뢰를 훼손하고 굳건한 한미동맹까지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며 “지금 한국당이 강 의원을 비호하는 듯한 입장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이러한 범죄행위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1야당까지 관여한 행위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익을 수호해야할 외교관을 이용해서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이를 왜곡해서 정부에 대한 무분별한 비방에 활용하는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하겠다”며 “사익을 위해 국가기밀을 악용하고 당리당략을 위해 국가조직을 동원하는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호히 조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제가 황 대표에게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내신 분이 말씀을 삼가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또 다시 ‘군은 정부·국방부 입장과 달라야 한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 국가는 군대가 국민이 선출한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며 “황 대표께서는 국민에 의해 탄핵된 정부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신 분이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발언을 당장 취소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칠 사안이 아니다”라며 “강 의원이 유출에 나선 목적과 과정의 배후에 대해 사법당국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곤혹스런 與, 답답한 野…국회 정상화는?

민주당으로서는 국회 정상화에 몰입해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야권의 악재에 이어 여권에서도 악재가 나온 것에 대해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만들겠다는데 목표를 둔 민주당은 국회 내 정쟁이 장기화할수록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입법 지원도 늦어지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경제 활력 조치 등 민생 법안 처리에 차질이 불가피해 지기 때문에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즉 성과가 필요한 시점에 정쟁으로 시기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때문에 당장 정치권 핫이슈로 떠오른 양 원장과 서 국정원장의 비공개 회동은 골칫거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양 원장이 서 국정원장을 사적으로 만났다지만 야권에 ‘관권선거’라는 공세의 명분을 제공,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 시켰다는 점에서는 여권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한국당으로서도 현 상황이 답답하다. 한국당이 국회 복귀 명분으로 요구한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사과 및 철회, 원점 논의와 국회 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 요구를 민주당이 거부했고 일대일 영수회담도 청와대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국회로 돌아갈 명분이 전무하다.

정치권에서는 장외투쟁을 두고 ‘회군하기 어려운 전술’이라고 흔히 말한다. 즉 돌아올 명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목적 없이 돌아올 경우 지지층과 당 내 의원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당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4개월째 공전 중인 국회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과 당 지지율은 급락하는 등 한국당이 장외투쟁의 동력은 점차 상실해가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이 ‘추경 등 때문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한국당으로서도 ‘조건 없이는 국회를 열기 어렵다’는 배수의 진을 쳤지만 장외 투쟁이 장기화 될수록 피로도도 높아지고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아지기 때문에 장외투쟁 동력은 확실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발 물러서 국회로 돌아오게 되면 한국당 지도부의 리더십마저 흔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물러 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을 역공할 수 있는 여권의 악재를 계기로 대여공세 수위를 초강도로 끌어 올려 여권의 공세에서 벗어나 지지율 상승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회 공전을 바라보는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고 여야 원내지도부가 물밑 접촉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의견 조율 가능성도 제기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