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장외투쟁 or 회군…기로에 선 한국당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을 끝내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의 맥주 회동을 계기로 급물살을 탈 것 같던 국회 정상화의 길은 점점 아득해지고 있다. 여야 간 국회 정상화에 대한 공감대는 갖고 있지만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사진 / 백대호 기자]

◆與, 한국당 제안 거부…국회 정상화 더 아득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22일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사과 및 철회와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소 고발 취하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정국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이인영 원내대표께서 오늘 나온 이야기를 듣고 (국회 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소 취하는 안되고,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사과발언도 안된다는 의견을 수용했다”며 “대신 국회 정상화 위해 더 만나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총에서 어떤 발언이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고소 취하는 안되고 사과 발언도 안된다는 강경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며 “조건 없이 국회 정상화에 응하게 되면 그와 맞물려서 적절한 표현 있을 수 있지만 사과와 철회를 전제로 국회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상화를 위해 사과 표명하는 것은 받기 어렵다”며 “패스트트랙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최소한의 요건으로 진행한 것이고 진행 과정에서 불미스런 장면은 있었지만 오히려 민주당은 저지당하는 피해 입은 것이지 그걸 갖고 사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어 “의원들은 원내지도부에 국회 정상화를 위해 심한 압박은 주지 않고 전권을 주기로 했지만 국회 정상화라고 하는 심한 부담감으로 원칙 없는 행동은 원하지 않는다”며 “처음 발족한 원내 지도부에 대해 힘 실어주는 발언도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국회 정상화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오는 27일로 추진되던 추가경정예산안에 관한 정부의 시정연설도 불투명해졌다. 박 원내대변인은 “다음주에 국회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지금 27일에 여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 21일 이원욱 민주당·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회동과 관련해서 “수석끼리 만났는데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잠깐 정지하고 전열을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여야는 주말동안 여야 접촉에 대비한 전략을 세우는 등 숨고르기를 거친 후 내주 초 다시 물밑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이 다시 원안으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사실 저분들이 돌아오고 싶은데 명분 바라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그러면 우리가 줄 수 있는 명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 이뤄졌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돌아올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진정성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의원들은 명분을 주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경해진 당 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 / 시사포커스 DB]

◆與, 갑자기 분위기 싸늘?…예견된 ‘갑분싸’

애초 전날 있었던 3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서 국회 정상화 합의가 불발되면서 민주당의 강경 입장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더욱이 이원욱 민주당 수석부대표는 이날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의 합의문 초안을 받았는데 보기에 황당할 정도의 내용”이라며 “여당으로서도 통 크게 양보하고 싶어도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사과 및 철회, 원점 논의와 국회 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을 향해 “과도한 요구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여야가 국회정상화를 위한 숙성의 시간을 갖고 있지만 국회정상화에 대한 공감대만큼 여야 간 뚜렷한 입장 차이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야의 충돌과정에서 있었던 반목 이런 것을 털어내는 것도 필요해 보이지만 일방적 역지사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또한 남인순 최고위원도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사과와 철회,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들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정말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 최고위원은 “패스트트랙 지정 철회나 국회선진화법 위반 고소·고발 취하를 하지 말라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뜻”이라면서 “황 대표의 장외투쟁이 24일 마감한다고 하니 조건 없이 국회를 정상화해서 추경 예산안을 비롯한 유치원3법,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고교무상교육, 노동관계법,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민생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22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 대표가 민생 투쟁 버스 대장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사진 / 박상민 기자
22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 대표가 민생 투쟁 버스 대장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사진 / 박상민 기자

◆회군이 더 어려운 장외투쟁…한국당, 강경해진 이유는

한국당도 국회 정상화의 시급함은 인식하고 있지만 오는 24일 일정으로 마무리되는 장외투쟁으로 인해 국회 복귀 명분 찾기에 고심이다. 사실 장외투쟁은 소수당인 야당이 여당을 상대로 정치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성공하게 되면 야당 지도부의 존재감이 부각되지만 실패할 경우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벼랑끝 전술’이다.

정치권에서는 장외투쟁을 두고 ‘회군하기 어려운 전술’이라고 흔히 말한다. 즉 돌아올 명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목적 없이 돌아올 경우 지지층과 당 내 의원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당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4개월째 공전 중인 국회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과 당 지지율은 급락하는 등 한국당이 장외투쟁의 동력은 점차 상실해가고 있는 중이다. 청와대가 제안한 5당 대표 회동을 일대일 영수회담으로 역제안 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수회담을 돌파구로 원내 복귀 명분을 찾으려던 한국당으로선 당청이 5당 대표회동을 고집하면서 ‘회군’의 모멘텀을 찾기도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건 없는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게 될 경우 지도부의 리더십만 타격받기 때문에 한국당으로서도 이같은 합의안을 제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상화를 향한 여야의 팽팽한 기싸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중진 의원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국회 파행은 결국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을 강행해 만든 것”이라며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한 입장 표명과 향후 처리에 대한 입장 표명 없이 그냥 국회 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국당 지도부도 강한 투쟁의 의지를 계속해서 피력하며 민주당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특히나 민주당이 이번주 중 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고 오는 27일부터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요구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경 등 때문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내부적으로 속내가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조건 없이는 국회를 열기 어렵다는 배수의 진을 쳤지만 장외 투쟁이 장기화 될수록 피로도 높아져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4일 장외투쟁이 마무리되고도 국회로 복귀하지 못할 경우 2차 장외투쟁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서는 대치정국이 장기화로 흐를 경우 한국당이 추경 처리와 6월 국회 개원을 지렛대 삼아 여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도 이날 소상공인특위·소폐경활특위 소상공인 오찬간담회에 참석,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안고 죽고 싶다고 하더라”며 “국민들은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체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지원기본법은 저희 당이 그동안 계속 중점추진법안으로 (추진)했다”며 “ 저희가 어떻게 하면 빨리 기본법을 통과시켜서 우리 소상공인 여러분들한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서 6월에 꼭 중점추진법안으로 해서 꼭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사실상 국회 복귀를 시사했다.

◆결국 당청이 손 내밀어야

결국 국회 정상화와 한국당의 장외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도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회군에 대한 부담을 물론 더 강한 명분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한 사과 및 철회, 국회 선진화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 등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조건이 어느 것 하나 성사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여야간 정쟁과 대결의 구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독재자 후예’ 발언으로 불만이 가득하다. 황 대표가 제안한 일대일 영수회담에 대해서도 여전히 청와대와 민주당은 ‘5당 대표 회동’으로 고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손을 내밀어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국당이 회군의 명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도 이날 여당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중진 의원 회의에서 “여당이 야당에 이기려는 모습은 정말 못난 모습”이라며 “야당에 져주고 의원총회에 돌아가 동료의원들에게 깨지는 것이 훌륭한 여당 원내대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 “나 원내대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된 것은 과거에 했지 않느냐, 이제 들어와서 함께 논의해보자’ 이런 정도는 해야 되고 여당 원내대표는 야당한테 좀 져줘야 된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일대일 영수회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도 좀 져줬으면 좋겠다. 황 대표가 땡강 놓으면 어떠냐. 대통령은 대통령인데”라며 “황 대표도 5당 대표 만나고 그 다음에 별도로 만나주겠다고 하면 대통령을 존중해서 해야 하는데 둘이 똑같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여당이 결국 국회정상화라는 당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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