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아무래도 루저(loser, 패자)인 것 같다. 미세먼지 재앙에 온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승자(winner) 혹은 국민을 루저로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생명은 영양소, 물, 공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신체에 미치는 중요도는 먹는 양에 비례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공기이며, 다음이 물이고 영양소가 세 번째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1.5kg의 음식을 섭취하는데 여기에는 수분도 포함돼 있다. 성인의 하루 물 권장량은 음식에 포함된 수분을 제외하도 1.5~2kg에 이르며 운동할 때는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공기는 하루에만 14kg에 달하며 음식의 10배에 이른다. 사람에게 공기, 물, 영양소의 공급을 중단하면 죽는다. 공기가 없으면 바로 죽는다. 죽음을 ‘숨이 끊어졌다’고 표현한다. 물이 신체에 1~2%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끼며 물 없이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 신체는 며칠 동안 양분을 공급받지 않아도 견뎌낼 수 있다.

공기 좋고 물이 좋은 곳은 장수 마을이 된다. 중국 광시성의 바마(巴馬), 조지아의 캅카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일본의 오키나와, 우리나라에서 장수촌으로 일컬어지는 전북 순창ㆍ임실, 강원 인제 등이 대부분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기가 나쁘고 물이 나쁘면 골병이 들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는다.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맑은 공기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모를 리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미세 먼지 30% 감축’을 약속했다. SNS에 “아이 대신 미세먼지를 다 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정부의 무능과 안일에 분노한다. 정부 대책은 미세먼지 오염도를 미리 알려주는 문자메시지 뿐이다”라고 썼다. 국민 감성을 자극했고 칭찬을 받았다. 당선 이후 행보는 어땠을까. 대선 이후 페이스북에 미세먼지 언급조차 없다. 3월 들어 매일 미세먼지 테러가 일어났는데도 닷새가 지난 3월5일에야 환경부장관으로부터 긴급(?)보고를 받았다. 긴급은 영어로 이머전시(emergency)이며 병원 구급차에 쓰여 있다. 사태 발생 후 5일이 지난 보고에 ‘긴급’이란 단어를 아무리 봐도 생뚱맞다.

그러면서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고 장관들을 질책했다. 이낙연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인 출신으로서 아직도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노영민 비서실장은 도보로 출근하며 “솔선수범을 보여야한다”고 말했다. 국정 담당자의 책무는 문제 해결에 있지 감성팔이가 아닌데도 ‘만절필동’이라는 표현을 쓴 시인이라 그런지 언행이 묘하다.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응도 더 가관이다. 여당은 이명박 정부 때 디젤 차량이 늘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경유 승용차 판매는 노무현 정부 때 이뤄졌다. 화살을 잘못 날렸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석탄발전소를 많이 지었다고 탓한다. 사실과 다른 얘기로 분노의 대상을 돌린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다양하다. 다만 한 설문조사를 보면 중국으로부터 유입(82%), 국내의 발전 및 공장(12%), 국내 자동차(3.8%)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문재인 정부가 워낙 ‘국민의 뜻’을 중시하니 대책도 이런 방향에서 나와야 했다. 중국이 미세먼지 원인이라면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외교적 노력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는데 지난 2년간 전혀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에 왜 말 한마디 못하느냐”고 국민들이 질타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서 오는 미세 먼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해 긴급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뜸 나서서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주장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뜻을 받들어 "한국 미세먼지에 중국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나섰다. 환구시보는 8일자 사설에서 “최근 몇 년 새 중국 하늘은 점차 파랗게 되는데 한국 미세먼지는 나날이 심각해졌다”며 중국 탓으로 돌리는 한국의 행태를 비난했다.

한국과 중국 간에 ‘미세먼지 책임론’을 놓고 싸우는 격인데 과연 이런 싸움으로 얻는 게 무엇일까. 그동안 ‘친(親)중국 모드’로 일관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한 마당에 중국이 우리 얘기를 조금도 들어줄 것 같지 않다. 결국 대통령과 외교장관의 말은 “우리도 중국에 말은 했어‘라는 면피용 색채가 강하다. 국내 발전과 관해서는 탈(脫)원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MWh의 전력을 생산할 때, 석탄은 초미세먼지를 120g, LNG는 15g, 원전은 0g을 발생시킨다.

LNG가 석탄보다 낫지만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오염물질과 초미세먼지를 배출하며, 깨끗한 공기 측면에서 원전보다 한참 아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고 적폐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다보니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를 비교하면 국내 발전량에서 원전은 2016년 29.9%에서 2018년 23.4%로 줄었다. 미세먼지를 풀풀 날리는 석탄발전은 39.5%에서 41.8%로, LNG비중은 22.3%에서 26.8%로 늘었다. 석탄과 LNG발전을 늘린 주역은 문재인 정부였다.

환경단체의 행태는 참으로 난해하기만 하다. 미국산 소에 광우병이 걸리고, 사드 갖다 놓으면 전자파로 온 몸이 튀겨진다고 했던 사람들이 미세먼지에는 아무 말이 없다. 오히려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6일 서울 도심에서 “핵폐기물 답이 없다”는 행사를 가졌다. 원전 하나 지으면 석탄발전소 5개를 안돌려도 되는데 그러한 과학적 사실은 외면한다. 그러다가 마지못해 ‘공기 후진국, 특단대책 마련하라’ 정도의 1인 시위만 하는 형국이다. 하기야 환경단체 사람들이 줄줄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원자력안전기술원 감사 등 요직을 꿰찼으니 정부에 싫은 소리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최소한 환경단체는 시민단체가 아니며 친정부 이익단체라고 이실직로라도 해야 도리가 아닐까. 서울환경운동연합이란 단체는 과거 ‘우왕 좌왕! 재탕 삼탕! 박근혜 정부 미세먼지 졸속대책 규탄한다’는 피켓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물 문제는 국민 관심사에서 크게 멀어진 상태다. 지금 한반도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고 나날이 더워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물부족 국가로서 나날이 수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라며 4대강 보 철거에 나섰다. 금강과 영산강 유역 농민들의 절반 이상이 보(洑)가 필요하다고 해도 밀어붙인다. 농민과 현지 주민도 국민인데 정부는 여당 지지자와 환경단체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 미세먼지 재앙과 4대강 보 철거를 놓고 많은 국민이 루저(Loser)임을 실감하고 있다. 좋은 마스크나 공기청정기 살 돈이 없는 서민들, 돈이 부족해 도로 옆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 한국을 잠시 피해 동남아로 여행갈 돈이 없는 사람들, 화력발전소 30개가 몰려 있는 충남지역 주민들, 농사지을 물이 없는 농민들 모두 루저 대열에 포함됐다.

미세먼지 승자(winner)는 탈원전 바람 속에 정부 지원금 받아 태양광 발전하는 사람들, 좋은 자리 찾은 환경단체 사람들이 생각나는 데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SNS와 언론에는 유머와 재치와 해학으로 가득 찬 수많은 글들로 넘쳐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를 패러디한 글이 많다.

“미세먼지가 아니고 문세먼지다.”
“사람이 먼지다. 아니 사람이 먼지만도 못하다.”
“(남북대화에만 관심 있다며) 북한 사람이 먼저다.”
“대통령 딸은 동남아 나가고...”
“대책은 무슨...그냥 마스크나 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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