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망언 논란’ 코너 몰린 한국당,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역공’
민주당, ‘역사왜곡·탄핵부정·극우화’ 소재로 철벽방어
블랙리스트인가 체크리스트인가…당청, “전임 정부와 달라” 단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여야가 국회 정상화를 뒤로한 채 날카로운 공방만 벌이고 있다. 단순히 의혹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 서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의혹’을 ‘의혹’으로 덮는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악재와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 구속 등으로 수세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논란이 국면 전환,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된 만큼 정국 주도권 회복을 위해 한국당의 ‘역사왜곡’ 프레임을 부각시키면서 대대적인 대야공세에 나서고 있다.

코너에 몰린 한국당은 지난해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찬반원의 폭로로 이슈화 됐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최근 청와대도 개입했다는 정황이 나오자 이를 계기로 정국의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과 한국당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 두터운 대치전선을 형성, 정치권 갈등이 더욱 격화되면서 3월 임시국회 개최마저도 안개 속에 빠지고 있다.

◆여야 간 ‘칼과 방패’ 싸움…총선 전쟁의 서막인가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비하한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박고은 기자]

여야는 21일 5·18 망언 논란과 탄핵부정, 김경수 법정구속 및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두고 대치전선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및 탄핵 부정 논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5·18 망언이 나왔던 공청회에 이어 촛불혁명을 부정하려는 행사를 국회에서 또 다시 열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반성이 전혀 없다. 한국당은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바로잡을 생각 없는 것 같다”고 맹비난 했다.

홍 원내대표는 “‘탄핵은 잘못됐다’고 했던 전직 총리출신 당권주자는 비난여론 빗발치자 ‘탄핵에 세모로 답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극우의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국민들의 지탄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5·18 망언 의원을 퇴출해야 한다는 여야 4당 요구에 대해 어떻게 '민주당이 역사왜곡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국민적 분노를 정치공세로 치부하는 건 역사적 퇴행을 넘어 극우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박경미 원내부대표는 “한국당은 건전한 보수가 아닌, 극우의 길을 가며 대한애국당과 합체되고 있다”고 거들었다.

한정애 정책위수석부의장은 영화 ‘극한직업’을 패러디하며 “지금껏 이런 전당대회는 없었다”고 비꼬았다.

한 정책위수석부의장은 “5.18을 모욕하는 발언이나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을 보면, 한국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다함께 미래로’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다함께 전두환 시대로’, 아니면 ‘다함께 다시 박근혜로’로 바꾸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며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앞에서 열린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비리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반면 한국당은 청와대가 전날(20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을 두고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대응한 것과 관련 “내체남블(내가 하면 체크리스트, 남이 하면 블랙리스트)”이라면서 역공에 나섰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내로남불 정권에 이어 이제 ‘내체남블’이란 새로운 닉네임을 열었다”고 비아냥 거렸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26일 ‘김태우특감반 진상조사단회의’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흔들면서 시작된 사건”이라며 “검찰 수사로 58일 만에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끝이 아니란 건 누구나 상식적으로 짐작하고 있다”며 “환경부뿐 아닌 330개 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블랙리스트를 검찰이 즉각 수사해달라”고 촉구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청와대의 ‘체크리스트’ 발언에 대해 “국민을 바보로 알아도 유분수지 황당한 궤변”이라며 “앞에 정부가 한 건 뭐냐”고 맹비난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날 ‘블랙리스트라는 말로 먹칠하지 말라’고 한것에 대해 “먹칠은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먹칠하지 말라는 말 속에 검찰에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인가 체크리스트인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청와대는 지난 20일 “환경부의 일부 산하기관에 대한 감사는 적법한 감독권 행사”라며 “산하 공공기관 관리·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체크리스트”라고 해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블랙리스트라는 ‘먹칠’을 삼가 달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김 대변인은 과거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체크리스트에 차이점을 비교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근거로 삼았다.

청와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대상은 영화·문학·공연·시각예술·전통예술·음악·방송 등에 종사하는 ‘민간인’이고 이번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대상은 공공기관의 기관장, 이사, 감사들로 리스트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 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넓이와 깊이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또한 “그 숫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발표 내용을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여 동안 관리한 블랙리스트 관리 규모는 2만1362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가 확인된 것만 8931명의 문화예술인과 342개 단체였다”며 “한국당 등 일부 야당이 ‘블랙리스트 작성, 청와대 개입 근거’라고 주장하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에 나타난 것을 보면, 거론된 24개의 직위 가운데 임기 만료 전 퇴직이 5곳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더욱이 임기 초과 퇴직은 9곳으로 2배가량 많다”며 “게다가 문건은 사실관계 조차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지난 12월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밝혀진 바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환경부뿐만이 아닌 다른 부처의 산하기관의 경우 대부분이 임기를 보장받았다”며 “오히려 후임자를 찾지 못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사·감사들이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근무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임 정부에서의 블랙리스트와 현 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는 다른 종류라는 입장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환경부의 문건은 ‘불법적인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인 체크리스트’”라며 “대통령이나 장관이 가지고 있는 임면권을 갖고 한 합법적 행위를 ‘블랙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청와대가 개입한 근거’라고 일부 야당이 막무가내로 정치공세에 나서고 있다”고 응수했다.

권미혁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이 믿고 싶지 않을 뿐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이번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의 리스트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권 원내대변인은 “본연의 업무는 방기한 채 무리한 뻥튀기와 검찰에 대한 압박을 행하는 것은 5·18과 탄핵부정 망언으로 궁지에 몰린 한국당의 국면전환용 정치공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또한 박주민 최고위원도 이날 YTN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12월 30일 운영위에서 거의 하루 종일 이 문제를 다뤘지 않았나. 그때 나왔던 자료들 기억나시겠지만 김태우 특감반이 얘기했던 그런 분들이 임기를 다 채우거나 심지어 임기보다 더 길게 그 자리를 지켰던 케이스 였다”고 맞섰다.

박 최고위원은 “피해자라고 주장하셨던 분 녹취록도 틀었는데 사실상 그분이 임기를 다 채우고 정상적인 퇴임식까지 거치고 나가신 분”이라며 “사실 알고 봤더니 자유한국당이 추천했던 분”이라고 청와대의 해명을 거들었다.

◆답답한 국민

국회 본회의 모습.[사진 / 오훈 기자]

이처럼 여야가 ‘강 대 강’ 대치를 계속하면서 여야간 감정도 악화되고 있다. 보다 못한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게 국회냐”고 두달 째 ‘일 안하는 국회’를 향해 호되게 꾸짖었다.

문 의장은 19일 국회 의장실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2월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하자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의장은 이날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해 국회 앞으로 몰려올까 두렵다”며 “국회를 계속 열지 않으면 민심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고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경고했다.

여야가 논란을 정치 쟁점화 하게 되면 소모적 논쟁만 커지면서 국회 정상화를 어둡게 한다. 또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여야가 극한 대결에 들어 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면서 1·2월 임시국회에 이어 3월 임시국회도 파행으로 치달을 위험에 처했다.

문제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민생·개혁 법안들이 산적히 쌓여 있다는 것이다.

야3당이 제시한 선거제 개혁안을 비롯 지난해 처리 못한 유치원3법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19일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법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고발로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근절 3법, 의료인 안전 강화와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임세원 법’ 등 현안이 차고 넘친다.

민주당은 민생현안 외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 관련 법안 처리에 의욕을 보이고 있고 국정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국회 정상화가 필요한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당이 손혜원 국정조사를 비롯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국회 정상화를 위한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한국당과 협상이 안될 경우 바른미래, 민주평화, 정의당 등 야3당과 함께 다음달 7일 또는 14일 연동형 비례제를 비롯 개혁법안들을 묶어 신속처리법안, 즉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기로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총사퇴까지 언급하며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 돼 3월 임시국회마저 열리지 않게 된다면 민생을 외면한 채 투쟁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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