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로 돈 넘치는데 삼성카드 때문에 경영권 '흔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과연 진리인가. 삼성그룹의 간판 삼성전자는 최대의 호황을 바탕으로 '부채비율 0%'라는 신경지에 도전한다. 하지만 에버랜드-삼성카드로 이어지는 특유의 '고질병'인 지배구조 위기도 서서히 압박감을 더해가고 있다. 한국 최대의 기업인 삼성전자가 넘쳐나는 현금을 바탕으로 오는 9월까지 부채비율 '제로' 경영에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현재 삼성전자의 현금보유액은 1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4.1%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 안 해" 2위는 SK(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90.4% 급증한 1조6944억원이었으며, 3위는 현대차로 1조487억원, 4위는 KT로 8708억원, 5위는 S-Oil로 8244억원 등의 순이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포함해 현금성 자산이 무려 9조5000억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현금 1조7000억원, 3개월 미만의 단기금융상품 투자금액이 5조3900억원, 단기매도가능 증권(금융채 및 수익증권)이 2조3656억원 등이었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현금이 넘쳐나면서 오는 8월과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5000억원과 1조원을 차환발행하지 않고 9월까지 전액 조기 상환키로 했다. 또한 지난 1분기 말 현재 3900억 수준인 차입금도 9월까지 모두 갚을 계획.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오는 9월까지 국내 차입금이 '제로'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해외 차입금은 조금 남아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오는 2006년과 2007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사채 4500억원이 있지만 환율 하락을 예상해 조기 상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는 앞으로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도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고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은 않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불필요한 자산도 모두 매각해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 실제로 삼성전자는 하나로통신 주식 836만주와 데이콤 주식 245만주도 1년 내에 모두 매각하기로 한 바 있다. 15조원 이상의 현금 확보 예상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익증권 거래잔고가 1조5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1000억원이 채 안 되는 이들 주식의 매각을 서두를 이유는 없지만, 불요불급한 자산은 모두 처분한다는 경영방침에 따라 이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대신 신기술과 우수인력 확보 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질적 인수합병(M&A)에는 적극 나선다는 방침. 특히 최근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특허침해 문제와 관련, 예방적 차원에서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최근 2조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 소각한 것도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는 차입금보다 보유현금이 훨씬 많아 순차입금이 마이너스 상태"라며, "1/4분기에만 3조원이 넘는 순익을 기록하는 등 올해 천문학적인 수준의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돼 연말까지 최소 15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의 부채를 줄이고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등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경영방침은 다른 계열사에도 확산되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차세대 핵심사업인 PDP와 2차전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에 올해 1조1080억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모두 내부자금으로 투자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지난 1분기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이 9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 관계자는 "경기변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IT기업의 특성상 현금보유량이 많을 수록 좋고 경영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내부 자본축적이 더 이뤄줘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지분 넘겨받은 삼성카드는 '불법' 하지만, 순환출자식으로 형성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6월 1일 금융감독위원회가 삼성카드에 대해 "사실상의 금융기관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에 대한 조치를 이달 말까지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 밝혔기 때문. 이 날 윤용로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당국의 계열 분리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 지분을 취득한 경우를 예외로 인정할 경우, 계열사를 통해 매입한 지분을 계열 금융회사에 넘기는 모든 사례가 가능해져, 법 취지 자체가 무력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지난 9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 분리 명령에 따라 타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던 에버랜드 지분을 넘겨받은 삼성카드 역시 금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금산법을 살펴보면 재벌계열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5% 이상 소유하고 동시에 동일 계열금융기관이 속한 기업집단이 해당 회사를 지배할 경우와 타 회사 주식을 20% 이상 소유할 경우 금융감독 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삼성카드는 이에 대해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99년 공정위 조치에 따라 에버랜드 지분을 넘겨받게 된 것이며 이는 새로운 지배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지분을 취득한 목적이 아닌 만큼 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삼성카드와 옛 삼성캐피탈은 올 1월말 합병인가 이전부터 그룹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지분을 각각 14.0%, 11.6% 보유하고 있었다. 합병 이후 법인인 삼성카드는 현재까지 에버랜드 지분을 25.6% 보유하고 있지만 금감위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감위의 결정 여부에 따라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주식 20% 이상을 처분해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이런 결정이 날 경우 삼성은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삼성그룹은 지주회사인 에버랜드를 시작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 다시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 "시간을 두고 지분을 처분하겠다" 금감위의 결정 여부에 따라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그룹 장악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법 제정권을 가지고 있는 재정경제부도 현재 금융감독위에 최종 판단을 위임한 것으로 알려져 금감위의 결정에 관심이 주목된다. 물론 구조조정이나 시장조성 의무 등 지배 목적의 지분 취득이 아닌 경우 처리방향이 달리 진행될 수도 있다. 또한 금감위는 이미 삼성 측에 이 달 안에 에버랜드의 지주회사 신고 지연과 관련, 처리방향을 제출하라고 밝힌 만큼, 두 사안이 연계 처리될 가능성이 높고 삼성측의 대응 역시 관심 대상이다. 금감위는 현재 삼성카드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간을 두고 지분을 처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카드 외에 현대캐피탈 등 금산법을 위반한 다른 금융회사들 역시 이 달 말까지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결정됐다. 현대캐피탈(현대차그룹 계열) 역시 99년 현대차 등과 기아차 지분 인수에 참여해 10%의 지분을 취득했으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 이번 조사에서 적발된 금산법 위반 사례를 살펴보면 법 제정 이전에 지분을 취득했거나 타 주주가 보유한 지분의 감자로 인해 법 상 보유 한도를 넘어선 경우,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지분을 취득한 경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증권회사의 경우 시장조성을 통해 지분을 인수했거나 미매각 수익증권 보유로 인해 법 위반에 해당된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보험회사는 상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타 회사 지분을 취득해 법 위반에 해당된 경우도 있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해 동부그룹의 경우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을 통해 아남반도체 지분을 9.68% 취득한 경우가 있다. 동부그룹은 당시 당국 승인을 받지 않았으나 나중에 이 지분을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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