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경영권 승계 첫 발 디딘 삼성家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그룹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의 후계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무의 승진은 그동안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으로 비판적이던 여론에 잠잠했던 삼성의 후계 작업이 본격화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무는 아직 총수의 자리까지 먼 길을 남겨두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로인한 경영권 세습에 대한 여론 악화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내부적으로 삼성차에 채권 문제가 소송으로 번지는 등, 이 전무가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일류그룹 삼성. 차기 총수가 경영권을 승계받기까지 풀어야할 난제와 그 배경을 살펴보자.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인사이동은 그 여느 때보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올해가 바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내 재계는 활발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돼왔었기 때문.

대선 앞두고 활발해진 승계작업

실제 삼성은 지난 달 16일 이재용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며 차기 총수로서의 승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 이재용 전무의 직책은 CCO(Chief Customer Officer). 우리말로 ‘최고 고객 담당 임원’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모으고 대변하는 기업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CEO급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직책인 것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경영기획실에서 각 계열사의 경영상황까지 보고받았던 상무시절의 제왕수업이 일보 더 전진한 것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제왕수업을 수료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독자적인 행보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내야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재용 전무의 승진은 이미 예견됐었다. 오히려 승진이 너무 늦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 이재용 전무는 입사동기들에 비해 전무를 늦게 단 편에 속한다. 재계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삼성의 신중한 승계전략에서 찾고 있다. 파격적 승진은 없되, CCO라는 이전에 없던 직책까지 신설해서 막대한 권한을 실어주는 것으로 명분과 실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 2006년 초 이재용 전무(당시 상무)의 승진설이 돌았을 때는 “황제의 대물림” 등 재벌 경영권 승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대다수였지만 올해 이 전무의 승진은 조용히 성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까지 남은 길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수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커다란 난관이 굳건하게 놓여있기 때문. 이 난관의 극복은 이재용 전무의 앞에 놓인 숙제이자, 또한 경영권 승계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로 손꼽힌다. 역시 대표적인 과제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통칭 에버랜드 전환사채(CB)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재용 체제 전환의 초석이 되는 지분 편법상속에 대한 논란으로 현재 공판이 7년째 진행 중이다.
에버랜드 CB사건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재벌가 재산증여 수법이라는 평을 받으며, 시민단체의 고발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민사적 성격이 아니다. 핵심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세금 없이 넘기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점에 있다.

에버랜드 CB발행을 통해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이어지게 됐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삼성가 자녀에게 넘긴 혐의 이재용 전무가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삼성가 자녀에게 넘긴 혐의 받는 것은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전 사장이지만 정작 이건희 회장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아 전형적인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상식이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일사불란하게 지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구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판이 시작된 것이 7년 전이라고는 하나 사안이 사인이니만큼 사건을 지켜보는 여론의 시선도 따갑기 그지없다. 심지어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삼성은 지난해 2월 7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며,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의 증여 문제와 X파일 같은 문제들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깊이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 국민 여론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당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 내 수뇌부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삼성 에버랜드CB사건의 공판도 마무리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 전무는 그동안 자신에게 `주식 몰아주기'가 이뤄져 에버랜드 지배권을 넘겨받은 과정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면서도 검찰에 낸 진술서에서 ‘사실 인수절차를 누가 진행시켰는지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이 부분을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변론을 재개한 것도 삼성측에 부담을 주는 요인. 그렇다고 재벌에 대한 기존 선고의 관대함만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재벌에 대해 기존의 관대한 구형을 기대했던 현대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만 하더라도 6년을 구형받아, 사실상 실형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차도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앞세워 막강한 변호군단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재판부의 자비만 기다리는 입장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의 해결 없는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는 편법에 대한 근본적인 원죄를 안고 간다는 부담을 지게 된다. 삼성 기업의 구심력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전폭적인 충성에 있었다면, 차세대 총수, 이 전무 입지기반 약화는 삼성으로서는 더욱 염려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성 측에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면 할수록 고개를 드는 ‘삼성 권력’에 대한 견제도 심해지는 터라, 삼성의 입장은 민감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 정지작업 산 넘어 산

삼성은 그밖에도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두 번째로 삼성생명 상장을 들 수 있는데, 삼성차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는 다급한 문제다.
하지만 그 또한 신통치 않다. 상장을 통해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가 오르게 되면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19.34%) 가치는 2조원 이상이 된다. 현재 3조 5천억원인 에버랜드 전체 자산의 50%를 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가 되기 때문에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 회사지분을 매각해야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형 지배구조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장이 쉬운 것도 아니다. 현재 최종 채택 된 생명보험사 상장안도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금년 초 생보사상장자문위원회가 생보사 상장안을 증권선물거래소에 제출해 지난 18년간 미뤄졌던 생보사 상장을 추진했지만,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조항이 문제 된 것. 또한 국회 재정경제위에서 상장자문위의 공정성, 투명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나서, 연내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생보사 상장안의 행보는 불투명해졌다. 삼성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그에 반해 지난 달 25일에는 국내 기업 상대 소송으로는 최대 규모인 4조 7천억원대의 소송가액이 걸린 삼성차 채권단과 삼성그룹 사이의 소송 공판 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서울보증보험과 우리은행 등 삼성차 채권단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들을 상대로 부채와 이자를 갚으라며 지난해 낸 소송의 첫 공판이다. 공판에서 채권단 측 변호인은 삼성그룹에서 작성한 합의서를 제시하며 “삼성차 채무 2조 4천500억원을 탕감하는 대가로 이건희 회장에게서 삼성생명 주식을 받았지만 상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열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삼성의 초석이 이번 인사이동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이번 삼성 인사의 핵심으로 부상되는 것이 바로 삼성그룹 홍보부의 대거 물갈이다. 지난 6년 동안 삼성그룹 홍보를 맡아왔던 이순동 부사장이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후임 홍보사령탑'으로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을 기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순동 사장이 담당했던 기획홍보 부문은 장충기 부사장(기획담당)이 맡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홍보를 사실상 총괄해왔던 김광태 전무가 이번 인사에서 안식년 휴가(1년)를 받아 최전선에서 물러난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이인용 전무 체제로 재편이 될 수밖에 없다. MBC 앵커 출신인 이 전무는 이재용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로 그동안 해외 홍보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이번 홍보라인 대거 인사이동에 대해 삼성의 안팎에서는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지만 삼성 홍보의 두 축을 이뤘던 핵심인물들이 본업과 멀어진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경질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공화국론이 불거지고 옛 안기부 X파일 사건 등이 터졌을 때 여론악화로 된 서리를 맞은 것에 대한 그룹 차원의 정리라는 것.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주력 홍보라인 강화를 통해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정치작업을 시도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용 전무 체재로 전환하기 위한 개편이라는 설명이다.

황태자 행보에 이목 집중

하지만 삼성가의 경영세습이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아직 내다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이다. 무리한 경영권 승계로 차기 총수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도 신중한 삼성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고,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전무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 경영권을 물려줄 수도 없으리라는 것. 정부의 순환출자 규제 움직임에 맞춰 정권교체 이전에 차기 후계 구도를 굳히려는 재벌들의 움직임에 반해 아직 삼성의 승계를 위한 움직임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올해로 39세를 맞는 초일류 기업의 황태자 이재용 전무. 남달리 승부욕이 강하다는 그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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