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봉이 김선달 ‘제2의 이석호 사건’ 재출현

▲ 원주세무서 홈페이지
현직 국세공무원이 공문서를 위조해 ‘국유지’를 팔아 거액을 챙기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공무원은 국유재산을 팔아 치운 후에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버젓이 2년여를 세무서에서 근무해오다 관련 사실이 발각되자 곧바로 잠적해버렸다.

이 공무원은 국세청소유지를 팔기 위해 세무서장 관인을 훔쳐 매매계약서에 관인을 찍는 방식으로 공문서를 위조하는 한편, 땅을 사는 사람이 의심하지 않도록 세무서 고유의 계좌번호 외에 세무서 명의로 또 다른 계좌를 트는 치밀함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제2의 이석호 사건 재현이 된 게 아니냐”라며 당국의 국유지에 대한 허술한 관리실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9일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강원 영월세무서 이모씨(6급)는 원주세무서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4년 5월 세무서장의 관인을 훔쳐 공문서를 위조한 뒤, 국세청 소유의 원주시 단구동 1478의 1 등의 토지를 불법으로 매각, 약 5억원을 챙겼다.

세무서장 관인 훔쳐 국유지 매각

이씨의 ‘간 큰 사기행각’은 거액을 챙긴 뒤에 더 빛을 발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근무를 해왔던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이씨의 사기행각은 국세청이 2007년 새해업무계획을 세우기 위해 보유자산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씨가 종전까지 근무했던 영월세무서에서는 이씨의 사기행각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씨의 영월세무서 동료인 김모씨는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이씨의 평소행동으로 봐서는 절대 그런 사기행각을 벌일 만한 위인이 못 된다”며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벌인 희대의 사기극 전모는 이랬다.

이씨가 사기를 벌일 당시는 원주세무서 업무지원팀장에서 같은 세무서 재산세계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세무서장은 기관장 관인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총무과장이나 업무지원팀장에게 관례적으로 관리를 일임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씨가 업무지원팀장을 맡으면서 원주세무서가 보유한 토지현황을 비롯해 관인이 어디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해도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이씨가 상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업무지원팀장이란 직책인 총무과장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업무지원팀장에 있을 당시가 아니었다. 재산세계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다. 이씨는 부근 중개인 등을 통해 2004년 5월 원주시 단구동 일대 1269㎡ 규모의 국세청 소유 토지 6필지를 매입할 자를 물색했고, 당사자가 나타나자 매매계약서에 훔쳐낸 세무서장의 관인을 찍어 공문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주도면밀한 사기수법을 보였다. 그는 거래당사자가 세무서와 거래하는 것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 납세자가 세금을 납부하는 세무서 고유의 계좌번호 외에 세무서 명의로 또 다른 계좌를 개설했다. 거래상대방이 계좌이체를 할 때 수취인으로 ‘원주세무서’가 나타나도록 치밀함을 보인 것.

이씨가 이 토지를 김모씨 등 2명에게 급매하면서 받은 돈은 현 시가에 훨씬 못 미치는 5억4천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범행을 저지른 이후 2년여의 기간 동안 이 세무서에는 3~4명의 세무서장이 거쳐 갔으며, 2005년과 2006년 등 2번의 새해업무계획을 세우면서도 문제의 토지가 사라진 사실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만큼 국유재산 관리가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춘천지검 원주지청에 따르면 이씨의 단독범행으로 나타났으나 국유지 매각이 담당자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업무 성격임을 감안, 내부 공모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팔아먹은 토지는 현재 제3의 취득자가 집까지 지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 법률상 매입자가 선의(국유지를 불법으로 사들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경우)라면 국세청으로서는 그 땅을 되돌려 받을 길이 없어진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휴가원도 제출하지 않은 채 잠적했다. 영월세무서는 이씨를 파면조치 시켰다.

국세청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가 해외로 도피할 것을 우려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위해 검찰에 고발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를 당시 거래당사자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씨가 계약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총무과장이라면 모를까 재산세계장은 세무서를 대표해 재산을 매각할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 이에 따라 국세청은 매각자체가 원천무효임을 입증, 사라진 땅을 되돌려 받기 위한 원인무효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져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바 대로 쉽지 않을 듯하다.

안일한 국유지 관리가 빚은 촌극

일각에서는 이씨의 사건이 ‘제2의 이석호 사건’으로 비화하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희대의 사기꾼 이석호씨로 인해 충분한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한데 당국의 국유지에 대한 허술한 관리실태와 안일한 대응 등은 비난 여론을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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