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지침 개정·사드 배치...野 ‘베를린 구상’ 폐기 압박 가속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으로 인해 NSC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보수정권 때와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려던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로 인해 ‘베를린 선언’을 내놓은 지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대북정책에 대한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을 발사하며 미국까지 자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뒤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휴전협정 64주년인 27일을 기해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를 상호 중단하고 10·4정상선언 10주년인 오는 10월 4일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자며 대화에 방점을 둔 대북유화적 접근인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을 단번에 무시한 데 이어 오히려 미사일 발사실험을 늘려가며 기술수준을 점점 더 진전시키자 문 대통령 역시 국제적 압박 움직임에 발맞춰 결국 강경책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야권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한 문 대통령의 맞대응 조치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베를린 구상 폐기’와 ‘사드 완전 배치’ 등과 같은 보다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문 대통령은 대북정책 대전환의 기로에 선 상황이다.
 
◆ 베를린 구상 제안했지만 ‘미사일 도발’ 직면한 정부
 
지난 28일 북한은 심야에 전격적으로 화성-14형을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북 제재가 강화되어가는 와중에도 도발수위를 전혀 낮추지 않았다.
 
이미 남북군사회담 제안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새 정부의 대화 제안을 사실상 일축했던 북한이 도리어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대답하자 결국 문 대통령도 29일 주재한 NSC를 통해 “필요 시 우리의 독자적 대북 제재를 부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며 강경대응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베를린 구상’을 다시 거론해 이전처럼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이 나온 바 있다.
 
또 같은 날 먼저 발표된 정부성명에서도 “우리는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중단 없이 경주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은 우리 정부가 베를린 구상 후속 조치로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과 긴장 완화를 위한 회담에 지금이라도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여전히 북한에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여 야권에선 정부 이 같은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당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같은 날 전희경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강력 제재와도 맞지 않는 일방 노선을 택한 우리 정부가 과연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북한 도발에 대응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며 “북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방적인 구애에 가까운 대화 제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예 일찍이 핵 보유를 주장해왔던 같은 당 원유철 의원의 경우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 폭탄 대 규탄의 대결이 되면 안 된다. 행동 대 행동으로, 더 강력한 응징을 통해 북한의 무력도발 의지를 꺾어버려야 한다”며 “우리에겐 그러한 경제력과 과학력, 군사력이 있다. 문제는 의지와 결단”이라고 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그래선지 정부는 지난번처럼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훈련으로 무력시위 하던 데에 그치지 않고 탄두 중량을 늘리기 위한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협상을 개시하기로 했으며 불과 하루 전 사드 부지 환경평가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반환경평가’ 방식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해 배치 확정 여부를 사실상 후일로 미뤘던 나머지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해서도 일단 임시로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 사드 ‘임시’ 배치 조치에 도리어 논란만 증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임시 배치 조치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대체로 비판적 반응이 나왔는데, 우선 한국당에선 29일 전희경 대변인 구두논평을 통해 “안보위기에 대한 국민의 공분을 의식한 문재인 정부의 조치”라며 “임시 조치가 아닌 사드배치의 확정적 완료로 한미동맹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안보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북정책 기조를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발 더 나아가 한국당은 하루 뒤인 30일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 논평에선 “정부는 북한의 눈치만 살피며 지속적으로 대화를 구걸함으로써 오히려 김정은의 오판을 초래했다. 부정확한 정보, 뒷북 대응, 미숙한 안보정책으로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지킬 수 없다”며 “도발 하루 전날 사드 배치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 방침을 발표했고 연내 사드 배치를 무산시킨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정부의 사드 방침 관련 문책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당에서도 김유정 대변인이 30일 논평으로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 말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로 추가 배치 지시했다”며 “사드 보고 누락 파동부터 임시 추가배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상황을 보면 치밀하게 준비되었다기보다 매우 즉흥적이고 오락가락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대변인은 “그동안 남북대화나 남북군사회담제안,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우리의 일방적인 선언일 뿐 북한은 묵묵부답이고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미사일 도발”이라며 “대북문제에 있어서 북한을 우리 차에 태울 수도 없는데 남북관계의 운전석을 확보한 것이 어떤 실질적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남북관계에 이제는 변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분명히 하려는 듯 같은 날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베를린 구상’의 실체가 국민 앞에 허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국민의당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겠다. 조만간 햇볕정책 3.0인 대북정책의 새로운 제3의 길을 제시하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기존의 ‘대화’ 중심 대북정책에 선을 그었다.
 
특히 박 위원장은 “과거와 상황이 다르고 기존의 고장 난 레코드판 돌리듯 대화와 제재를 병행해선 대화의 시동조차 걸 수 없다”며 “한미동맹 강화를 기초로 한 새로운 대북 접근법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해 국민의당이 새로이 제시할 대북구상이 어떤 기조를 보일 것인지 은연중에 드러냈다.
 
▲ [시사포커스 오훈 기자]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31일 오전 국회 바른정당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바른정당 역시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혜훈 대표가 “ICBM 발사 하루 전 사드 추가배치를 사실상 1년 연기하는 결정을 발표한 것은 정보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정부를 한 목소리로 비판한 뒤 “사드가 당장 필요하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도 인정한 만큼 환경영향평가를 과감히 즉각 생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대통령도 안보 문제에 있어선 야당에도 정보를 공유한다고 직접 약속했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여야 영수회담을 열어줄 것을 제안한다”며 직접 사드 배치를 확실히 매듭짓기 위한 담판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이렇듯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까지 싸잡아 비판받으며 전면 전환을 요구받자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잇따르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데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송영무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 취소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환경영향평가 결과 다른 위치가 낫다면 (배치 장소를) 바꿀 수도 있다”고 밝혔다가 국방부에서 “성주기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서는 등 엇박자를 냈다.
 
그러면서도 송 장관은 이날 국방위에서 ‘안보’와 ‘환경’ 중 어느 쪽을 희생시킬 수 있느냐는 양자택일성 질문에 “급박한 상황이라면 환경이 희생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해 향후 북한의 추가도발 수위에 따라 사드 배치에 대한 정부 입장이 한층 분명해질 수 있음을 시사했는데, 실제로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사드의 전면적 배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했었다는 사실을 적극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은 한국당 소속의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국정원과 정보위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뒤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과 관련 “북한의 패턴이란 게 있기 때문에 향후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어떤 식으로든 추가 도발을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만에 화두로 오른 사드 배치 논란이 북한 도발로 인해 쉽사리 잦아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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