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내용 중 김기춘 교체 빼곤 다 현실로” “문고리 3인방, 국정농단 책임져야”

▲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작성했던 박관천 전 경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가 2년전 언급했던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 JTBC
[ 시사포커스 / 고승은 기자 ]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2년여전 검찰 조사에서 이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박관천 전 경정(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그는 이른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검찰은 문건의 진위 내용을 살펴보기보다는 ‘문건 유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수사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검찰이 마치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움직인 듯.
 
당시 박관천 전 경정은 구속기소됐고, 그의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그러면서 ‘정윤회 문건’을 허위로 결론냈다.
 
검찰은 그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에 공용서류 은닉, 무고, 공무상 기물누설, 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1심에선 뇌물죄가 인정되며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4월 2심에선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그는 약 500여일간의 옥살이를 했고, 현재는 모든 혐의에 대해 면소 혹은 무죄판결을 받은 상황이다.
 
박 전 경정이 검찰 조사를 받던 상황에서 이른바 ‘권력서열’을 언급했을 때는, 여론은 ‘황당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주목하지 않았고 ‘정윤회 문건’이 언론에서 사라지면서 최순실이란 이름도 묻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전대미문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그의 발언은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네티즌 사이에선 ‘권력서열 강의’로도 불리게 됐다.
 
박 전 경정은 문건을 작성한지 3년여만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26일 방송된 JTBC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박 전 경정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상황과 청와대에서 좌천됐을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비선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취지에서 권력서열을 언급했다. 그는 “정윤회씨도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더 큰 문제가 최순실이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2013년 1월 인수위 시절, 친분이 있던 고위공직자로부터 ‘최순실이 대통령을 움직인다’는 정보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이 가장 힘이 강하고, 대통령이 최순실로부터 많은 의견을 받고 의견을 반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의 진원지는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중 한사람이었다는 것이다.
▲ ‘정윤회 문건’에는 최순실의 이름이 등장한다. ⓒ JTBC
그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작성된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 2014년 1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한 일간지에 자신의 교체설이 보도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보도 경위를 알아보라’고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박 전 경정은 “그래서 그 문서(정윤회 문건)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러 가지 크로스체크해서 만들어졌다. 다른 문서보다 수정하는 과정을 3배 정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굉장히 신중에 신중을 거쳐 작성한 문건이라는 것이다.
 
당시 문건에 담긴 내용 중에는 ‘김기춘 전 실장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 ‘박지만씨와 대통령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할 것’ ‘이정현(당시 홍보수석)은 근본도 없는 놈, 경질해야’ 등이 있다. 박 전 경정은 “그 문건에 담겨있는 내용 중 단 한 가지 빼고는 다 현실로 이뤄졌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곧 교체되는 것만 빼고”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문건이 김 전 실장에게 보고된 한 달 뒤, 당시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전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이 “할배(김기춘)가 너 (청와대에서)나가란다. 할매(박근혜) 지시란다”고 자신에게 통보했음을 언급했다.
 
그는 갑작스레 서울경찰청 정보부서로 인사 발령이 났다. 그런데 이틀 후에 발령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 인사과로 발령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결국 또 취소됐다. 결국 그는 서울의 한 경찰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누가 그러더라. 당신이 쓰지 말아야 할 보고서를 썼다고 하더라. 또 김 전 실장이 당시 국무조정실장을 불러서 지시했다더라. ‘박관천이는 이 정부에서는 정보를 다루는 부서에 절대 가서는 안 된다. 좋은 자리도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더라”고 토로했다.
 
박 전 경정이 청와대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상관이던 조응천 전 비서관도 해임 통보를 받는다. 바로 세월호 참사 하루 전날이다.
 
박 전 경정은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어떤 한 명은 뱀이라고 그랬다. 어떤 한 명은 개라고, 양이라 그러더라”고 말했다. 뱀, 개, 양은 청와대 직원들이 3인방에게 붙여준 별명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문고리 3인방을 향해 “한나라 한 정부에서 대통령을 바로 옆에 모시는 최측근 1급 비서관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책임져야 되지 않겠나? 잘못된 거 있으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 근무 문고리 3인방의 전횡, 비리에 대해서 포착한 게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밝히기 곤란하다”며 “그 문제에 대해 처리하는 부분에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다음에 필요한 여건이 조성된다면 그때 그 처리 과정까지 밝히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폭로 가능성을 경고했다.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비서관만 현재 구속수감된 상태며,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은 잠적 상태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사전횡에 관여한 건 안봉근이고, 이재만은 제가 알기로는 권력기관 외에 금융기관 공기업 이런 쪽에 (개입)했다. 지금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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