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전 원장 “국정원, ‘뜻이 맞는’ 보수단체에 지속적으로 자금지원”

▲ 국가정보원이 ‘뜻이 맞는’ 보수단체에 지속적으로 자금지원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전 국정원장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야당과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활동을 해 온 친 정부적인 성향의 단체에 국정원의 예산이 지급됐다는 것으로 지난 4일 밝혀졌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사찰과 함께 국정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요구가 정치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국가정보원이 ‘뜻이 맞는’ 보수단체에 지속적으로 자금지원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전 국정원장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야당과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활동을 해 온 친 정부적인 성향의 단체에 국정원의 예산이 지급됐다는 것으로 지난 4일 밝혀졌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사찰과 함께 국정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요구가 정치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이병기 전 원장 “국정원, ‘뜻이 맞는’ 보수단체에 지속적으로 자금지원”
국정원의 보수단체 자금지원은 박영수 특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조사를 위해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실시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진술과정에서 밝혀졌다.
 
특검의 조사내용을 보도한 ‘한겨레’에 따르면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월 특검 조사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은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기조실장한테 그런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계속 그런 지원이 있어왔기 때문에 국정원장이 굳이 터치할 입장은 안 됐다”고 진술했다.
 
이 전 실장은 “내가 (국정원장으로) 있던 시절에도 지원을 했고, 지금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상세한 내역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반정부적인 특정단체에 정부지원을 막는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친정부적인 특정단체에 집중지원을 해주는 ‘화이트리스트’에 해당되는데, 특검은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를 수사결과 발표에 포함시켰다.
 
특검발표에는 ‘2014년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경련 임직원들에게 특정단체의 단체명과 단체별 지원금 액수를 지정하여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요구하여 약 24억 원을 22개 단체에, 2015년에 31개 단체에 약 35억 원, 2016년 22개 단체에 9억 원 등 총 68억 원을 특정 단체에 지원토록 했음’이 명시되어 있다.
 
결국 전경련 지원 외에도 국정원 역시 친정부 단체에 지속적인 자금지원을 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최근 소위 ‘탄핵반대 집회’에 금전으로 인원을 동원하고, 막대한 장비료가 지출된다는 의혹들을 뒷받침하는 진술이다.
 
 
◆야권 ‘정권 보위대’ 맹비난...검찰수사·국정조사·국정원법 개정 등 추진
정치권 특히 야권은 가만있지 않았다. 특검의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면서, 국정조사를 추진키로 했고, 국정원 해체론까지 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지원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 국정원장이 인정했다고 한다”며 “국정원장이 인정했으면 틀림없는 것이다. 일방적 문제제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 원내대표는 “국정원이 지원한 보수단체들은 야당을 ‘종북단체’로 규정하고, 데모를 하고,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를 ‘좌빨종북인사’로 매도하는 정치활동을 해온바 있다. 지금도 탄핵반대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며 “이런 활동을 국정원이 지원해왔다는 것은 국내정치에 관여한 것이다. 이 점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다. 탄핵 반대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단체들도 국정원이 지원해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회 청문회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정원은 권력의 철저한 비호를 받으며 한 번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법 공작을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라며 “국정원이 더 이상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검찰은 국정원의 헌재 불법사찰, 그리고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에 대한 국정원 개입을 제대로 밝혀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라고 수사를 촉구했다.
 
안희정 캠프 박수현 대변인은 “대선 댓글 의혹, 박원순 제압문건, 세월호 유족 맞대응 집회에 이르기까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불법과 일탈 행위는 하나둘이 아니다. 심지어 탄핵심판 중인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법적 정보수집마저 당당히 자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국민을 외면하고 권력의 양지만 좇는 국가 기관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는 것이 새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국정원 개혁을 요구했다.
 
▲ 안희정 캠프 박수현 대변인은 “국민을 외면하고 권력의 양지만 좇는 국가 기관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는 것이 새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국정원 개혁을 요구했다. 사진은 국정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아이리스’의 한 장면. 사진 / 시사포커스 DB
야당 대변인들도 맹공에 나섰다. 이들은 국회청문회, 검찰수사, 국정원 개혁 등의 요구에 더해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고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국정원은 민간 보수단체에 어떤 규정과 명목을 들어 국민의 혈세를 지원해왔는지 지금이라도 당장 밝혀야 한다. 언제부터, 어느 단체에, 얼마나, 왜 지원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국민 앞에 밝힐 것을 촉구한다”면서 “국회에 나와 어버이연합에 금품을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거짓말을 했던 이병호 국정원장은 자신의 말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국정원 개혁을 주장했다.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 “분단이라는 특수성 뒤에 숨어 통제받지 않는 예산과 조직을 남용하고, 권한 밖의 불법행위를 일삼는 정보기관은 존재가치가 없다”며 “불법 정치공작이나 일삼는 국정원은 해체 대상”이라고 일갈했다.
 
김재두 국민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정원이 헌법재판관의 동향정보를 수집하고,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불법적인 정치개입이며 정보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한 중대한 국기문란”이라며 “국정원의 셀프개혁은 매번 거짓말인 것으로 몇 번이나 확인됐다. 국정원을 국정원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 국정원의 해체수준의 대 개혁을 즉각 논의해야한다"고 질타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국격을 시궁창으로 내동댕이친 청와대와 정부, 국정원이 쓴 위선의 가면은 반드시 벗겨질 것”이라며 “검찰은 문체부와 국정원 관계자들을 집중 조사해 영혼 없는 공무원들뿐 아니라 그 배후까지 엄중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 “‘정권 보위대’로 전락한 국가정보기관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정치공작소’ 국정원은 박근혜 정권과 함께 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은 돈’ 특수활동비 연간 1조원 추정...국정원 예산통제가 개혁의 목줄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있었으나, 전 국정원장의 진술과 같은 핵심 증거나 증언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국정원 예산이 불법지원된 것이어서 국정원의 개혁 중에서도 감시받지 않는 예결산제도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김종훈 의원은 “정보기관이 입법부인 국회 예산의 3-4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국정원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 고승은 기자
헌재 재판관 사찰, 불랙리스트 등 국정원의 문제가 불거지던 중 때마침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 등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개혁을 위한 토론회-리셋! 국가정보원’에서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통제되지 않는 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 소장은 “국가정보원의 예산은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결산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례 조항으로 점철되어 있고 이로 인해 국가 회계 중 가장 투명성이 떨어지는 영역”이라면서 국정원 본예산 외에 ▲기획재정부 예비비에 숨겨져 있는 부분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대상 부처 소관의 정보예산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예산은 예외 규정 등으로 빈틈이 생기는데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밀 사항 ▲ 원장의 책임하에 소관예산에 대한 회계검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그 결과만
을 대통령과 국회정보위원회에 보고 ▲예비비를 세항 또는 목별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배정 등의 규정이 규모파악은 물론 관리를 할 수 없도록하고 있다.
 
장 소장은 “결국 국가정보원 예산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단계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는 생략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국회 정보위원회의 심사가 유일한 검증장치인데, 국회 정보위원회의 경우에도 부실한 자료제출과 촉박한 시한으로 인해 제대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국가정보원이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가능하도록 예산회계특례법 폐지,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의 입법조치를 행하고, 아울러 민간참여를 통한 통제를 위해 가칭 ‘정보감독위원회’의 신설을 고려한다”고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김종훈 의원은 “정보기관이 입법부인 국회 예산의 3-4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국정원 예산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독립된 감사관 제도를 도입해 감사관이 직무감찰, 회계감사, 준법활동계획 등을 수립하고 이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국정원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경향신문’은 2015년 11월 20일자 기사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2013년 4672억원, 2014년 4712억원, 2015년 4782억원 등 매년 증가 추세다. 국정원은 본예산 외에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예비비도 따로 배정받고 있다. 여기에 정부 부처에 정보비 명목으로 책정된 예산까지 합하면 1조원이 넘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국정원의 ‘눈먼 예산’을 추정했다. 무소불위의 무법·불법·편법 권력을 지닌 국정원의 개혁을 위해선 예산통제가 체질개선의 목줄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