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입법이 순탄하게 이뤄지려면, 180석 이상 확보되는 정부형태라야”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회 대표가 7일 탈당결심을 확실히 밝혀, 시간만 남겨 둔 상황이 됐다. 그는 “탈당 할 거냐고? 그건 할 거예요”라며 “탈당을 비공식적으로 할 수는 없다. 날짜는 제가 알아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어제 6일 간만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회 대표가 7일 탈당결심을 확실히 밝혀, 시간만 남겨 둔 상황이 됐다.
 
김 전 대표는 6일 오전 페이스북에 “최근의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상황을 보면서 과거 우리 역사의 교훈을 되돌아본다”면서 “‘나라는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후, 국론 분열을 미리 막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인조가 한 말”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대표는 “안팎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을 때 정치가 대의명분만을 따져 국민을 분열시켜서는 안된다”면서 “옳고 그름을 다 따지기도 전에 국난이 코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 대가는 국민의 피눈물로 치르게 된다. 정쟁과 분열이 나라를 망치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현 정국에 대한 분석과 결심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 글을 남겼다.
 
그의 페이스북을 탈당예고로 받아들인 언론과 네티즌들은 탈당 조짐을 찾기 시작했고, 후원계좌가 폐쇄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탈당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고, 김 전 대표는 7일 오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김종인 “탈당한다...할일이 없어서...자유롭게 행동하려고...출마? 두고 봐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그는 “탈당 할 거냐고? 그건 할 거예요”라며 “탈당을 비공식적으로 할 수는 없다. 날짜는 제가 알아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탈당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할일이 없어서 탈당한다. 특별한 사유를 드릴 수 없지 않냐”며 “내가 늘 얘기했다. 어떤 자리라는 것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데 아무 일도 할 게 없으면 괜히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옳다고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경제민주화 추진이 당내에서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김 전 대표는 “대통령을 탄핵하게 된 기본 배경이 뭐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당연히 만들어 주는 것이 국회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별로 뜻이 없는 것 같다”며 “국회의원직 자체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의원직 자체를 버리려면 당을 떠나면 자동적으로 버려지니까 그래서 종합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해 달라”고 당과 국회운영에 대한 실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대선출마에 대해서는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미리 얘기할 수는 없다”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는데,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디 당에 들어가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또 비문계 의원들의 동반탈당 가능성에 대해서도 “나와 관계없다”며 “나는 누구보고 같이 가자는 얘기하는 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여기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는 것”이라고 확실히 밝혔다.
 
김종인 전 대표는 7일 오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오찬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내가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잖아”라며 대선출마에 대해서는 “그건 맘대로 생각하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오찬 강의 중에는 “국회에서 각종 입법이 순탄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180석 이상의 의석이 확보가 되는 그런 정부의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밝혀 빅텐트 또는 소연정 이상의 연정형태를 구상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말려야한다는 안희정·이재명, 나는 못 말린다는 문재인...손혜원 “이제는 적”
민주당 내에서의 반응은 난감해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곤란한 모습이어서 즉각적인 대응을 취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선후보들은 대체로 만류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각자의 입장만큼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진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 박수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전 대표는 당이 어려울 때 오셔서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함께 집권을 준비 하는 우리당의 중심이고 소중한 자산”이라며 “김 전 대표께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힘을 모으자고 다시 한 번 정중히 요청 드린다”고 탈당을 만류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 김병욱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당은 김 전 대표의 지적을 엄중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탈당을 온 마음으로 만류해야 한다”면서 “김 전 대표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탈당을 재고해 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재명 시장은 김 전 대표와 통화를 시도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만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경제현안점검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탈당 입장을 밝히셨다면 대단히 안타깝다”며 “그분이 어떤 선택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경제민주화 정신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정권교체 후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해 모셔왔고 끝까지 함께 하기를 바랐다”면서 김 전 대표를 직접 만나 설득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 손혜원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가 왜 계속 문재인 전 대표의 설득을 듣지 않고 이렇게 당에 등을 돌리면서 총질을 하시다 떠나느냐”며 “기관총이라도 난사할 생각인 듯 한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손 의원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는 예종석 더문캠 홍보위원장. ⓒ손혜원 의원 페이스북
이에 앞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김 전 대표의 탈당을 확인하며 더 이상할 수 있는 노력이 없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cpbc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많이 말렸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말린다는 것은 조금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 김 전 대표 나름대로 정권교체를 위해 본인이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뜻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김 전 대표의 영입에 일조를 했던 손혜원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김 전 대표가 왜 계속 문재인 전 대표의 설득을 듣지 않고 이렇게 당에 등을 돌리면서 총질을 하시다 떠나느냐”며 “기관총이라도 난사할 생각인 듯한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의원은 “이번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만은 김 박사님께 저도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치졸하게 공격하는 것을 하지 않겠지만, 어느 당에 가서 어떤 사람과 함께 대선 준비를 해서 만날지 몰라도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앞 다퉈 영입·연대 제의...안철수는 부정적
한편 국민의당은 물론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은 김종인 전 대표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보냈다. 개헌을 매개로 제3지대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종인 전 대표에게 한국당 영입을 제안했다”며 “본인도 한국당 후보로 대선 출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영입이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높다”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접촉이 있었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해 어려운 결단을 하셨다”며 “앞으로 어떤 정치행보를 하시려는지 미지수지만, 국민의당과 함께 나가는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인 의사를 표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의 속내는 모르겠지만 제3지대에서 (경선을) 하자 이런 의견도 있고, 여러 생각이 많으실 것”이라고 경선룰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며 “빨리 같이했으면 좋겠다. 저희는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모든 세력과 함께하겠다는 것이 당론 비슷하게 된 상황”이라며 재촉했다.
 
▲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가 탈당한 이유는 친문패권세력에 대한 실망과 개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하고 공통적인 고민이기 때문에 같이 논의가 될 것”이라며 “그분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면 자연히 만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 / 고경수 기자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김 전 대표가 탈당한 이유는 친문패권세력에 대한 실망과 개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하고 공통적인 고민이기 때문에 같이 논의가 될 것”이라며 “그분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면 자연히 만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가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력이 없고 개헌 의지가 없어서 탈당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제 협치 없이는 대한민국을 이끌지 못한다. 협치의 전제조건은 개헌이고 여러 패권세력에 대응하는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며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김종인 전 대표는 손학규 전 대표와 오찬을 함께했는데, 정가에서는 개헌과 제3지대론에 의견을 모으지 않았게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안철수 전 대표의 입장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안 전대표는 7일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에 출연해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전 잘 모르겠다”며 “그런데 자칫 예전처럼 그것이 연대론을 포함해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에 관심이 쏠리다보면 오히려 이벤트 중심으로 선거가 흐르는 것을 굉장히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과의 동반탈당은커녕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원직까지 던지며 혈혈단신 탈당을 택한 김종인 전 대표. 다른 당에 들어가지 않겠다면서도, 대선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180석 이상 확보 가능한 정부형태를 지향하겠다는 그의 퍼즐이 어떻게 맞춰질지 또 가능할지에 대해서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무대는 개헌을 매개로한 제3지대 연대 또는 비문연대일 것이다.
 
정당에 속하지 않고 다른 대선주자들을 주저앉히며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정당 간 후보의 단일화를 이루는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지, 어쩌면 정당연합을 형성해 새 정부와 180석을 채워주느냐 마느냐의 딜을 하는 선장이 될지 그의 구상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지속기간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주가가 오른 지금부터 탈당을 정점으로 1, 2주 안에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이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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