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 확장 위한 대선주자 간 ‘사드’ 셈법 분주…야권 일각 반발 격화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안보 행보에 맞서 외연 확대에 나서고자 사드 관련 입장을 번복하는 모양새를 보여 정치권에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그간 배치 여부부터 배치 지역 선정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사드 문제가 이번엔 대선주자들 사이에 각자 지지층 확대를 위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먼저 보수층 사이에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 사흘 뒤인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2함대를 방문해 본격 안보 행보에 나선 가운데 이 자리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 “준전시 상태 같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마땅하다”며 처음 방아쇠를 당겼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주요 지지기반이란 특성상 안보 현안에 대해선 확고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 만큼 반 전 총장은 당시 천안함 기념관을 찾아 “안보교육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강조한 데 이어 이 자리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 안보에 관한 한 한마음 한뜻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찬성 의사를 적극 피력했다.
 
이에 문 전 대표 역시 반 전 총장의 안보 행보를 의식했는지 같은 날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문제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한다는 방침을 갖고 다음 정부로 넘기란 것이 아니다”라는 단서를 붙여 배치 재검토를 비롯한 기존의 강경한 반대 입장과는 수위조절이 이뤄진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의 이 같은 미묘한 입장 변화가 그동안 한 목소리로 배치 반대를 외쳐오던 야권 내에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면서 선명성 경쟁에 나선 민주당 내 다른 대선주자들에게 새로운 공격 구실이 되고 있어 이 같은 움직임이 대선판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文, 사드 입장 번복 감수하며 潘風 차단 부심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국회 비준절차 같은 공론화 과정이 필요했고 대외적으로는 사드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했다”면서도 “한미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그렇게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배치 철회엔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인 지난달 15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만 해도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는 진행을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발언과 일부 비슷한 논조를 띠긴 했을지언정 당시엔 “사드 재검토를 하는 게 한미동맹을 해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적어도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긴 어렵다는 듯 돌연 한 발 물러난 태도를 보인 문 전 대표의 이번 사드 관련 발언에 대해 중도우파 유권자들이 반 전 총장으로 쏠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내놓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즉, 현재 자신이 선두를 수성 중인 상대적 우위 상황은 자칫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안보 관련 현안을 반 전 총장이 주 공략요소로 삼을 경우 보수성향 지지층과 일부 중도층의 결집으로 인해 반전되어 버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입장 번복’ 논란을 무릅쓰더라도 이전보다 신중한 포지션을 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변화에 대해 당내 대선경쟁후보들은 물론 보수정당들조차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는데, 먼저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6일 비대위원-주요당직자 회의에서 “문 전 대표가 우리 당 핵심사항인 사드배치에 대해 또 말을 바꿨다”며 “그동안 누가 들어도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걸로 주장해왔는데 대안을 밝히진 않고 세태에 따라 말바꾸기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안보 현안에 대한 입장 선회까지 감수한 문 전 대표의 외연 확대 전략을 무력화시키고자 이를 신뢰성 떨어지는 ‘말 바꾸기’에 불과하다고 맞불을 놨는데, 같은 당 김성원 대변인도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문 전 대표는 작년 7월 사드 배치 발표 직후 ‘재검토·공론화 요청’, 10월엔 ‘사드배치와 관련된 제반 절차 잠정 중단’, 12월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게 옳다’고 했는데,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발언이고 민주당의 ‘전면 재검토’ 입장과도 상충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대변인은 “안보를 챙겨야 한다는 여론이 무서웠는지 잠시 소나기 좀 피하자는 심산인지 언제 돌변해 사드배치 반대를 외칠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서 “조변석개하는 안보관만으로도 국가 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 바른정당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이 뿐 아니라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박계 의원들이 세운 바른정당에서도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이 같은 날 오전 가진 전체회의를 통해 문 전 대표를 겨냥 “도대체 말 바꾸기를 수시로 하면서 어떻게 자기를 검증되고 준비된 사람이라고 하는지 민망할 따름”이라며 “그러니 민주당 내에서조차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개헌한다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당 장제원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에선 “국가안보는 대권욕에 사로잡혀 입장이 왔다 갔다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며 “국가지도자는 자신의 말에 책임지고 일관성 있어야 하지 말바꾸기는 신뢰할 수 없는 양치기 소년이 될 뿐”이라고 문 전 대표를 맹렬히 질타했다.
 
◆ 사드 입장 놓고 대선판 넘어 야권 전체 논란 확산
 
이 같은 문 전 대표를 향한 공세는 심지어 당내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불거져 나왔는데, 문 전 대표 따라잡기에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드배치 결정을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어려운 일 하라고 국민이 ‘권력’을 주는 것”이라며 “문 전 대표의 입장이 당초 설치 반대에서 사실상 설치 수용으로 왜 바뀌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말을 바꾸려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최근 들어 문 전 대표를 향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인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드는 이천오백만 인구가 사는 수도권 방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며 “정치적 표를 계산하며 말을 바꿔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의 셈법은 마땅히 정치적 득실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근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북핵의 동결과 종국적 제거는 중국의 협력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 없이는 불가능”이라며 “제가 사드배치를 반대하고 전면적 재검토를 위한 미국과의 교섭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강조해 문 전 대표와의 차별화를 통한 선명성 경쟁에 박차를 가했다.
 
이렇듯 사드 문제에 대한 당내 목소리가 이전과 달리 분열되고 있는 상황 때문인지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사드 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답변을 요구하는 성주·김천 사드대책반대투쟁위원회 측에 “그런 약속은 한 적 없다”고 답해 복잡해진 당내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특히 ‘사드 배치 반대’가 제1야당인 민주당에서 당론화되지 못하는 상황과 더불어 문 전 대표의 입장 변화에서 비롯된 야권 내 ‘사드 파장’은 그저 대선주자들에 국한되지 않은 채 일파만파 확산되는 양상인데, 사드 반대에 무게를 둔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의원 42명은 16일 이 같은 기류 변화에 격하게 반발하며 “대선주자들은 이 (사드) 문제에 손을 떼라”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성명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한 ‘사드배치 국회비준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의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야3당은 ‘사드 배치 반대, 국회 비준동의’가 분명히 당론이었는데 대선주자들이 본인의 대선 표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당론을 흐리고 있다”며 사실상 문 전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드 문제 관련해 중국 방문까지 나섰던 송영길 민주당 의원 역시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표도 어쨌거나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 아니냐”며 “국회가 심의하면 (사드 배치는)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고 문 전 대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심지어 무소속인 윤종오, 김종훈 의원의 경우 이날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의 사드 관련 발언에 대한 논평을 통해 “유력 대선주자들이 사드 배치 불가피성을 언급하는 배경에는 ‘보수 표잡기’라는 정략적 목표가 깔려있다”며 대선주자들의 사드 문제 언급 자체를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권 각계각층에서 사드 문제를 놓고 서로 엇갈린 반응이 나오면서 대선판에서 촉발된 ‘사드 입장’ 논란은 혼란만 가중시킨 채 한동안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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