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재인계, 개헌파 주도로 반발 격화…문재인 대선가도에도 차질 불가피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최근 여러 기관에서 치러진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쾌재를 부르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돌연 재발한 개헌 반대·친문계파주의 논란에 직면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문병주 수석연구위원이 지난달 29일 내놓은 ‘개헌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란 제목의 정치 전략 보고서 내용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에선 ‘제3지대가 구축된다면 2017년 대선 승리에 치명적 위협이 될 것’이라며 ‘대선 전 개헌 논의 반대론에서 전략적 수정을 시도해 사전 차단 또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해 평소 개헌에 미온적이던 민주당이 제3지대를 저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개헌 논의에 임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특히 개헌특위 구성에 있어서도 “적극적 개헌론자나 이원집정부제 주장자의 특위 참여를 소폭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반면 “당은 개헌의 시기보다 개헌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적극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사실상 개헌 주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3지대에서 결합·결집한다면 비박·비문의 제3지대에서 나아가 ‘비문 연합과 문재인 전 대표’의 선거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어 당으로선 크나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한 내용은 더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당 싱크탱크에서 내놓은 보고서임에도 불구하고 자당에 대해서조차 분파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데다 문맥상 문 전 대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풀이될 여지가 없지 않아 대선 경선이 치러지기도 전에 대선후보를 이미 내정한 셈이냐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런 내용 때문인지 전날 일부 언론에선 이 ‘개헌 보고서’가 민주당의 개헌특위 위원들은 물론 당 전략기획위원장에게도 전해지지 않았고 그저 일부 친문재인계 인사들에게만 전해졌다는 보도까지 내놨었는데, 그러자 김용익 민주연구원장이 3일 반박 회견까지 열어 “다섯 명의 대선 후보와 캠프 내 정책 참모들을 다 만나 설명했다”고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 들끓는 非文, 逆으로 개헌 논의 촉발되나
 
그렇지 않아도 계파 패권주의로 집권여당까지 분당 사태를 맞고 있는 와중에 앞서 국민의당이란 동병상련을 겪어봤던 더불어민주당에선 이번 보고서 논란으로 친문패권주의란 해묵은 화두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서 긴장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먼저 당내 비문재인계 의원들 뿐 아니라 개헌에 동조하는 개헌파 의원들은 크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당내 비주류를 주축으로 한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30명은 지난 3일 성명서를 내고 “당 기구가 특정인을 편드는 사조직의 역할을 했다. 이번 파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투쟁에 가려졌던 당의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 것”이라며 “실무자 한두 사람 문책하는 것으로 봉합하지 말고 원장 등 고위직의 책임을 지우고 당 기구의 사조직화를 방지할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 모임의 일원이자 당내 중진인 노웅래 의원은 하루 뒤인 4일 B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것은 분명히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보고서고 확실히 책임을 물어야 된다”며 “당이 패권, 즉 패거리 정치에 아직도 함몰돼있다면 정권교체를 하는데 분명히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모임 소속인 박용진 의원 역시 이날 YTN라디오에 출연해 “(보고서 내용상) 문 전 대표를 당의 후보로 전제한 인식들이 보인다”며 “‘누구의 사당이냐’,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정당이냐’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부분”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 발 더 나아가 대선잠룡인 김부겸 의원 측에선 같은 날 허영일 공보특보를 통해 논평을 내고 “당 지도부는 연구자에 대한 보직 해임을 철회하고 모든 파동의 책임을 민주연구원장에게 물어야 한다”며 김용익 민주연구원장을 문책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공세에 앞서 김 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것은 제안하는 형태의 글이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방향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는 지도부 선택의 문제”라며 “저나 진성준 부원장이 문재인 후보와 가깝다고 다들 생각하실 텐데, 제 자신은 굉장히 엄격하게 공사구분을 하고 있다”고 특정후보를 상정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 역시 친문 성향이 짙다는 점에서 그의 이 같은 졸속 해명은 더 큰 반발만 불러일으켰는데, 계파와 관계없이 기동민, 김병기, 조응천, 최명길 등 초선의원 20명은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개헌은 사실상 실천하기 어렵다고 본 건 우리 당의 개헌 추진 의지를 스스로 폄하한 것”이라며 “추미애 당 대표는 당 대선의 공정한 관리 책임자로서 이 문건의 작성, 배포 경위 등 진상조사와 관련자 문책, 재발방지대책 등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뿐 아니라 이들은 보고서 내용에 있던 ‘비문’ 표현을 꼬집어 “당의 공식 기구에서 낸 보고서에서 ‘비문 연대, 비문 전선, 비문 결집’ 등의 표현을 쓴 것은 당 분열을 자초하는 행위”라며 “경선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특정인을 당의 후보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처럼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당 지도부도 부랴부랴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추미애 대표는 3일 최명길 등 초선 의원 5명과 가진 회동에서 “당 지도부는 작성을 지시한 적이 없고, 보도가 나온 뒤에 문건 내용을 알게 됐다”며 “나도 놀랐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다만 이 정도 수준에서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당 지도부도 비문계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책임자에 대한 처분이나 구체적 개헌 논의에 들어가는 건 불가피해졌는데, 이에 따라 우선 안규백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해당 문건이 작성·배포된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또 해당 문건을 작성한 문병주 수석연구위원에 대해서도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 조치했는데, 당내에서 강한 사퇴 압박을 받은 김용익 민주연구원장도 4일 오전 ‘책임을 지겠다’며 결국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당 지도부에선 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 사의 수리 여부를 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 번 들끓어 오른 개헌파는 좀처럼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지난달 27일 ‘미완의 촛불 시민혁명, 어떻게 완결한 것인가’란 개헌 토론회에 참석했던 민주당 의원이 35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친문 주도의 민주당이 크게 요동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개헌’ 명분 삼아 새누리 등 민주당에 총공세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에 총공세를 펼쳐온 각 정당들도 이번 보고서 논란을 구실로 민주당을 겨냥해 공동으로 십자포화를 퍼부었는데, 민주당과 달리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은 일찌감치 개헌을 주장해 왔으며, 국민의당도 최근 즉각 개헌을 추진하자고 당론으로 정해 이들이 한 목소리로 공세를 취하는 덴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새누리당에선 정우택 원내대표가 4일 주요당직자 회의를 통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 싱크탱크가 특정 대선주자를 위한 정치공학적 보고서나 냈다는 데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당의 국회 개헌특위 위원 선정조차도 개헌 저지 의도를 가진 특정세력의 기획선정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라고 민주당에 일침을 가했다.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박계의 개혁보수신당도 같은 날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이 정강정책 토론회에서 이른바 ‘개헌 보고서’ 사태를 꼬집어 “민주당이 특정세력의 패권정당, 문 전 대표의 사당임을 자인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개헌을 야합으로 몰아붙이는 게 민주당 당론이고 문 전 대표 생각인지 밝혀라”라고 강하게 몰아세웠다.
 
이밖에 국민의당에서도 박지원 의원이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민주에서 대선후보 경선 규정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것과 함께 이번 개헌전략보고서는 공당으로서 비열한 행동”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4일엔 주승용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민주당 친문세력은 개헌을 방해하는 게 목표인 것 같다”며 “집권을 위해 개헌을 방해하는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자는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주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도개혁 그리고 개헌’ 토론회에도 참석해 “개헌이 되면 선거제도도 당연히 (개혁)해야 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문제, 선거연령 인하, 결선투표제 등 문제들이 보완돼 20대 국회가 역사적으로 남는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개헌 뿐 아니라 선거제도까지 손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이 자리에 함께 한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개편이 개헌보다 힘들다”면서 “개헌이 물론 중요하지만 선거제도나 각종 개헌에 부수되는 제도에 대해서도 꼭 개헌특위 차원에서 토론되어야 한다”고 발언해 한꺼번에 밀어붙이려는 이들의 시도에 제동을 걸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보고서 파문’이란 돌발 상황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된 상황에서 그간 개헌에 소극적이던 민주당 주류 측이 당내 저항은 물론 타 정당들의 ‘개헌 공조’에까지 맞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란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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