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靑 - ‘개헌’으로 野, 두 마리 토끼 잡나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사진 / 고경수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돌연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대권 포기’ 선언을 통해 탄핵안 처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동시에 개헌 추진 의사도 함께 드러내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야권까지 압박하는 카드를 던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데 김 전 대표의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진격’의 김무성, ‘탄핵 정국’ 주도권 쥘까

 
대체로 탄핵에 미온적인 야권에 앞서 지난 13일 김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며 집권여당 의원임에도 과감하게 탄핵을 언급해 두각을 드러낸 데 이어 이날도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으로 재차 정면 돌파에 나섰다.
 
특히 그는 종전처럼 단순히 탄핵 의사를 피력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탄핵 정국’을 주도해나갈 것인지 일문일답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명했는데, 탄핵소추안 발의와 관련해선 “비상시국회의에서 탄핵안을 발의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고, 발의 시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오늘부터 시작을 하면 곧 되지 않겠는가”라고 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김 전 대표는 탄핵안 처리에 공조가 필요한 야권을 겨냥해선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는 “지금 야당이 탄핵에 대해 갖가지 잔머리를 굴리며 주저하고 있는데 새로운 보수를 만들고, 또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그런 논의에서 우리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 발의를 앞장서기로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김 전 대표의 발언은 차기 대권을 의식해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대선주자들과 달리 자신은 대권 포기를 통해 ‘사심을 버린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소속정당의 지지율 하락이 김 전 대표 자신의 지지율 하락으로 결부되는 상황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내 다른 핵심인사들보다 탄핵 정국에 적극적으로 치고 나간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날 그의 대권 포기 선언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제 정치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미보다는 어차피 최순실 사태로 당 지지율 회복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당선이 불확실한 차기 대권을 노리기보다 향후 개헌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로 정부형태가 바뀔 경우 사실상 실권을 쥐게 되는 ‘국무총리’를 노리겠다는 전략적 행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김 전 대표가 이날 대선 불출마와 탄핵 주도를 천명하는 자리임에도 ‘개헌’에 대해 언급했던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대선 불출마 선언과 개헌이 연관성이 있나’란 기자의 질문에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끝으로 다시는 국민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 문제의 해결은 개헌이라 생각한다.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고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단 김 전 대표의 이런 입장에 대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은 계파를 막론하고 존중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보수의 저력을 보여주는 자기희생과 결단”이라며 “국정 위기 수습과 당 혁신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찬사를 보낸 것은 물론 “지금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보수 전체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라며 “김 전 대표의 뜻을 받들어 보수 혁신의 큰 길로 나서야 할 때”라고 김 전 대표를 위시한 당의 결집을 호소했다.
 
또 김 전 대표와 비박계 내에서 신경전을 벌여온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김 전 대표의 이날 선언에 대해 “김 대표께서 당에 남아 지금 당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 말씀에 대해 다들 평가하는 그런 입장”이라며 “굉장히 숙연하게 생각하고 본인의 결단이니까 존중하고 있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유 의원은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쪽을 겨냥해 “오히려 민주당이 탄핵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나 이런 분들이 좀 계산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며 “민주당에서도 뜻을 분명히 해서 빨리 (탄핵안) 발의를 해서 받도록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가운데 김 전 대표와 날을 세웠던 친박계에서도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예상외로 김 전 대표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취지의 반응을 내놨는데, 이정현 대표는 이날 오전 당사에서 가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이 여러 가지 감안해서 불출마 선언을 했겠지만 평생 가져왔던 꿈을 포기하는 선언을 한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어 “그 분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제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진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당 대표로서도 책임이 없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겁다”고 거듭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대표는 김 전 대표가 개헌 얘기를 꺼낸 점을 꼬집어 “그 분이 이번에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만약 개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된다고 한다면 또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을 것”이라며 “또 좋은 기회가 있지 않겠나 싶고 개인적으로 번복하는 그런 시간이 오길 바란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金 발언에 문재인 ‘비난’ - 김부겸 ‘극찬’ 온도차 극명
 
반면 가장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의외로 탄핵안 처리에 협조해야 할 더불어민주당, 그 중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를 대선주자로 밀고 있는 친노 측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이날 “나라에 지진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니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정치 감각이 없을 수가 있겠나”라며 “이런 사태를 만든 그런 공범들이 뭐하느냐는 돌팔매를 맞기 전에 빨리 이 사태는 해결되는 게 좋다는 반성적인 자세를 한 번 더 촉구한다”고 비꼬았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무성 전 대표의 개헌 주장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 뿐 아니라 유승민 의원으로부터 탄핵에 대해 정략적 고려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동맹휴업을 결의한 숙명여대를 방문한 가운데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관련 “만약 새누리당이 그런 속죄를 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과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문 전 대표는 “만약 새누리당 의원이 탄핵 발의와 의결을 거부한다면 유권자인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야3당이 합동의총을 열어 야당 정원이 함께 (탄핵) 발의안을 서명하고 이어 새누리당 의원들을 상대로도 공개적으로 탄핵발의 서명을 받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김 전 대표가 이날 대선 불출마 회견에서 밝힌 ‘개헌 주장’에 대해서도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고 제왕적 통제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 헌법에 고쳐야 할 대목이 많긴 하지만 헌법이 무슨 죄가 있냐”고 반박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개헌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제왕적 대통령제’로 칭하는 데 대해서도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었나. 오히려 대통령이 힘이 없어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못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폐단을 제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대통령 개개인의 문제였다고 한정한 뒤 이런 대통령들이 선출된 이유에 대해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정치권력과 검찰, 언론, 재벌 대기업들간의 특권 카르텔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돼 그 속에서 늘 권력이 오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여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렇듯 문 전 대표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탄핵 처리 과정에서 찬성표의 다수가 야권일지라도 자칫 김 전 대표에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계심이 발동한 것은 물론 차기 대선후보군 중 김 전 대표는 저조한 지지율을 보였던 만큼 현재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대통령제가 아니라 개헌으로 총리 중심제를 추진해 판을 뒤엎을까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문 전 대표와 같은 당 소속의 대권경쟁자이면서도 친노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는 김부겸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과 관련 “정치인의 기개와 결단을 강조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계다운 절도 있는 정치를 보여줬다”고 호평해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이처럼 김 전 대표의 이날 선언이 야당 내에서도 평가가 갈라질 만큼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장차 탄핵안 의결 과정에서 여야 간 파워게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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