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만 가중시킨다며 반대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의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발의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무려 8개월 만에 국회 입법절차에 돌입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지난 전체회의를 열고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법사위)이 발의한 자배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키로 결정했다. 법안심사소위원장인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측은 “19일과 21일로 예정된 법안소위에서 자배법 개정안이 논의될 것”이라며 “늦어도 21일에는 법안의 소위 통과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배법 개정안의 경우 여야 간 쟁점법안이 아닌 만큼 ‘법안소위→상임위→본회의’로 이어지는 입법 과정이 의외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결국 자배법 개정안의 입법화 과정은 법안소위가 열리는 다음 주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처럼 자배법 개정안의 입법절차가 임박하자, 찬·반 양론으로 나뉜 보험업계와 의료계 간 공방도 한층 격해지고 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 백경렬 자동차보험협의회장은 지난 12일 윤두환 의원실과 건교위 전문위원실을 찾아 개정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보다 앞서 대한병원협회 김철수 회장은 직접 법안발의자인 김동철 의원을 방문해 재검토를 요청했고, 의협은 건교위에 반대의견을 담은 검토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부재환자=나이롱 환자' 맞나=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의견은 여러 면에서 보험사와 병원 간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개정안이 만들어지게 된 입원환자의 부재율을 보는 시각부터 확연히 다르다. 보험사들은 대체로 ‘부재환자=나이롱 환자’로 보고 있다. 대한손해보험협회가 지난 4~6월까지 전국 676개 병의원에 입원 중인 교통사고 환자 3592명을 조사한 결과, 병원의 허락없이 무단 외출 또는 외박한 환자가 618명(17.2%)에 달했다. 보험사들은 이 중 상당수가 나이롱 환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부재환자’나 ‘가짜환자’에 대한 정확한 개념정립도 없이 교통사고 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기관을 마치 부도덕한 집단으로 호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불만이다. 무단 외출·외박이 잦은 입원환자에 대해 보험회사가 해당 병원에 강제퇴원 또는 통원치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환자의 진료 및 입·퇴원 여부에 대한 판단은 환자의 질환에 대한 의학적인 판단이 가능한 담당 의료인이 전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 보험사가 좌지우지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단 외출·외박 등에 대한 신고포상제 도입 역시 논쟁꺼리다. 보험사들은 부적정한 입원을 적절히 규제해 보험금의 과잉지급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의사와 의료기관 종사자 간 또는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상임위 통과될까=현 시점에서 자배법 개정안의 건교위 통과 여부를 전망하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법안을 심사할 건교위 소속 의원들이 개정안에 대해 상당수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의원들이 법안에 대한 찬반여부를 묻는 질문에 “좀 더 검토 후 답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야 간 쟁점법안이 아닌데다 발의 후 8개월이 흐르면서 의원들의 관심에서 자연히 멀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이 때문에 건교위 전문위원실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는 법안내용에 대한 해설과 함께 반대측 주장을 소개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네티즌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나이롱 환자는 단속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누가 나이롱 환자란 말입니까’란 제목으로 의견을 올린 네티즌(아이디 jdh9731)은 “교통사고 나서 몸이 아프고 말도 못할 지경인데... 이러다 또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될까 걱정된다”며 “보험사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네티즌(아이디 kuy77) 역시 “정부가 거대 보험사들 편을 들어 안그래도 억울한 피해자들을 억압하는 법을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병원에서 일한지 13년째라는 네티즌(아이디 ptkds)은 “나이롱 환자는 17%가 아니라 50%는 족히 될 것”이라며 “오히려 더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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