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發 분당 주장, ‘친박 지도부 압박용 공갈포’ 해석도

▲ 비박계에서 분당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친박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보수정당 사상 여태 일어난 바 없었고 심지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던 ‘분당’이란 단어조차 이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올 만큼 새누리당의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최순실 사태’의 책임 문제를 놓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서로 친박계와 비박계 양측이 난타전을 벌이는 상황이지만 상호 비난수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난국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분당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 ‘지지층 중첩’ 與, 과연 분당 가능할까
 
현재 새누리당은 분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지도부는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져 분당이나 다름없는 모양새다.
 
이렇게까지 온 이상 봉합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두 계파 중 한 쪽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치킨 게임’만 남은 실정인데, 이 상황에서 비박계도 배수진을 친 채 요지부동인 친박계에 비난을 퍼부을 뿐 쉽게 당을 떠나지 못하는 건 기반이 되는 주요 지지층이 친박계와 중첩된다는 딜레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콘크리트’라 불리는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구·경북에 다수 포진해 대통령과 집권여당 지지도가 급락하는 걸 막는 ‘브레이크’가 되어왔을 정도로 새누리당은 본래 영남에서 강세를 보여 왔었고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과 영남 일부(경남지역)를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은 국민의당이 장악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분당 여부를 떠나 비박도 당장 영남 지지층에 의존하는 것 외엔 별 다른 대안이 없다.
 
하지만 그 영남지역에서도 가장 굳건하게 여당 지지율을 보내온 TK지역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친박계이다 보니 비박계 입장에선 이들을 지도부를 비롯한 요직에서 ‘최순실 사태 책임’을 구실로 퇴출시켜 대의명분을 확립하지 않는 한 비박끼리 탈당해 분당한다고 한들 그간 이어온 정통보수세력이라기 보다 새로이 떼어져 나온 제3세력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최순실 사태’에 이르고도 TK지역에서 새누리당에 보내는 지지는 상당할 정도인데, <한국갤럽>이 15~17일 간 조사해 1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정현 체제가 여전히 지속되는 등 여당 내부사정이 지난주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음에도 일주일 만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민주당(19%)을 제치고 새누리당(26%)이 다시 1위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번 주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 제안을 번복하는 등 야권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인 채 사태를 수습하는 대안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반면 여당은 내홍만 한층 격화된 채 특별한 변화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금세 회복됐다는 점에서 이 지역 유권자들이 언제든지 이전처럼 새누리당 지지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여권 강세 지역이란 특성상 여야를 대하는 데 있어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 지지정당을 택하는 게 아니다보니 야당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부동층으로 남아 사태를 관망하기보다 상황이 어떻든 종전 지지하는 여당으로 돌아가는 보수적 특성이 강하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비박계의 고민이 깊어진다고 할 수 있다.
 
◆ 비박, 분당해도 ‘머리’만 많은 제2의 ‘캐스팅 보트 黨’ 그칠 우려
 
여기에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당내 비박계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수적으로나 당내 직위로나 친박계가 우위에 있는 상황이 되었기에 여당 의원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분당을 감행해봐야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할지언정 자칫 야권 내 국민의당과 같은 처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당장 비박계가 이탈할 경우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입을 타격은 막심하겠지만 탈당 세력이 ‘친박계 새누리당’ 규모를 상회할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검찰 수사 결과로 최순실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내년 1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해 차기 대선 분위기가 본격 고조될 즈음에 가선 다시금 결집력 강한 여권 지지층이 야권에 정권을 넘길 수 없다며 상대적으로 다수인 기존 친박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비박계가 분당을 쉬이 결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별 다른 대권후보가 없어 오히려 원외 출신인 반 총장을 내세우기로 쉽게 의견이 모아진 친박계와 달리 김무성 전 대표부터 유승민 전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당선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서로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은 차기 대선후보들이 계파 내에 과잉 수준이라는 점이다.
 
일부 친박계에 있던 의원들이 시류를 타고 합류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박계는 당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머리’는 많은 상황이다 보니 현 시점에서 친박계가 공공의 적이란 점만 같을 뿐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분당을 감행할 경우 일부 사안에도 이견 차가 나올 만큼 결속력이 한층 약해질 수 있어 탈당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비박계 결집 과정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와의 사이에 상호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시각에서 일부는 비박계 내에서조차 벌써 주요 인사들 간 상호 견제 분위기가 일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는 상황인데, 일례로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한 때 함께 당 지도부를 이끌었지만 지난해 유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결국 원내대표 사퇴 국면으로 몰렸음에도 비박계 수장격인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을 의식해 그를 적극 비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올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김 전 대표가 자신의 측근 이외엔 사실상 유승민계 등 여타 비박계를 제대로 구제하지 않아 둘은 여전히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관계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지자 지난달 27일 김 전 대표는 과거 자신이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활동한 점 때문에 연대 책임론이 거론될 것을 의식했는지 “박근혜 대통령 옆에 최순실이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 그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소위 ‘물귀신 작전’을 펼쳤고, 이에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최고위중진의원 연석회의 직후 “내가 만약 최씨를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만약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던 사람이 정상이 아니지 않느냐”고 곧바로 선을 그었다.
 
심지어 이 두 사람은 이보다 앞선 지난 13일에도 박 대통령을 압박하는 상황에서조차 엇박자를 냈었는데, 이날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서 김 전 대표가 “대통령에게 저도 여러분도 속았다”면서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탄핵’이란 초강수를 던져 선수를 차지하자 유 전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이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부산 엘시티 비리와 관련해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던 데에는 부산이 지역구인 김무성 전 대표가 즉각 “이 시점에서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건 옳지 못하다”는 반응을 내놨지만 대구가 지역구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17일 “최순실 게이트 책임 묻는 것은 별개의 일로 물타기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수사하는 게 상식”이라고 온도차를 보인 바 있다.
 
이렇듯 둘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같은 비박계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4일 TBS와의 인터뷰에서 원 지사는 사회자가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 모두 친박 전력이 있지 않느냐는 점을 언급하자 “그 부분(친박 시절)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과정이 있어야 된다”며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비상시국임에도 치열한 대선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인지 앞서 지난 16일 사실상 비박계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비상시국회의가 처음 열리는 중요한 자리에도 대선잠룡 중엔 김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만 참석했을 뿐 유 전 원내대표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각자 사정을 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회의 역시 특별히 기대할 만한 결론을 내놓지 못한 채 논의만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비박계의 분당 주장, ‘공갈포’에 그치나
 
그러다보니 분당은 집권여당의원으로서 최순실 사태에 대한 공동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박계가 면죄부로 내세울 수 있는 ‘친박 지도부의 퇴진’을 이끌어낼 엄포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오는데 현재까지 나오는 분당에 대한 언급 역시 반드시 조건부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등 상당히 소극적이고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비박계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이정현 대표가 끝까지 사퇴하지 않고 당 주도권을 가져간다면 결단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다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면서 논의하자는 분위기”라고 곧바로 수위조절에 들어갔다.
 
같은 비박계인 권성동 의원은 이날 앞서 YTN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분당을 얘기하기는 조금 이른 것 같다”며 아예 노골적으로 분당에 미온적 반응을 드러냈다.

여기에 비박 내 대표적인 김무성계 인물인 김성태 의원 역시 지난 15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분당에 대해 “결국에는 분당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우선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당내에서 끝까지 싸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총선 날아가도 진박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분들이 지금 지도부인데 분당을 두려워 하겠냐”고 ‘분당무용론’으로 해석될 여지까지 남겼다.
 
▲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17일 현재의 친박 지도부가 계속 퇴진하지 않을 경우 탈당할 가능성까지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나마 가장 발언수위가 높았던 이는 과거 소장파로 분류됐던 비박계 남경필 경기지사인데, 이정현 대표로부터 ‘대선주자 사퇴하라’는 비아냥을 들은 다음날인 17일 ‘이 대표 사퇴 촉구 단식 농성’ 중인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탈당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결정하는 시점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반면 지난 17일 “제 스스로가 당을 뛰쳐나가 어찌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탈당 가능성을 일축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18일 “친박, 비박이 합의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됐으면 좋겠다”며 계파 편중 없는 혼성·중립적 비대위 구성안을 들고 나와 비박계 일각의 분당 주장을 진화하고 있어 비박의 분당 여부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 결론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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