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골자로 여야 비주류 주자들과 킹 메이커들 간 접촉 확산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출범식 및 토론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차기 대선 구도가 친박계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의 반기문 대망론과 친노·친문계를 등에 업은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세론을 중심으로 양분되면서 길을 잃어버린 각 당내 비주류 세력과 원외 인사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그간 제각기 ‘제3지대’ 구성을 모색해왔다.
 
또 지난 총선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하며 3당 체제 구축에 성공한 국민의당은 차기 대선경쟁에 있어선 반기문-문재인의 ‘2강 구도’에 밀려 좀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이를 타개하고자 “국민의당이 ‘제3지대’”라며 판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각계에서 ‘합종연횡’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간 막연히 거론되어온 제3지대가 실체화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개헌’ 키워드, 제3지대 구성 촉매 될까
 
각 당의 비주류 세력을 하나로 묶어줄 가장 돋보이는 공통분모는 바로 개헌이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를 제외하고 정치권 내에서 개헌에는 대체로 공감을 표하고 있는 만큼 비주류 대선후보부터 원외인사들까지 이를 화두로 서로 부지런히 접촉하며 소위 ‘간 보기’에 들어갔는데,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출범식은 그 대표적인 자리라 할 수 있다.
 
이 모임은 김원기·임채정·김형오·정의화와 같은 전직 국회의장들부터 유인태 전 의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는 개헌 추진모임인데 이날 창립 대회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 여야 비주류 대선주자들은 물론 ‘대선 플랫폼’ 구상에 들어간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까지 참석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대선후보들은 현재 1, 2위를 다투는 대선 유력주자들과는 아직 격차를 크게 좁히고 있지 못한 만큼 그동안 여러 번 지적되어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헌을 통해 바꾸는 데 대해서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은데 행정부 권한을 대통령과 총리가 분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부터 지방 분권형 개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출범식 및 토론회에 참석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특히 이날 모습을 드러낸 대권주자들 중 새누리당 내 대표적인 비주류 후보인 김무성 전 대표는 축사를 통해 “정치는 여야 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것인데 절대 양보 없이 여야가 싸우는 이유는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며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하고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연합·협력하는 연정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다당제 연정 모델을 제안했다.
 
이밖에 이날 모임에서 기조 강연을 맡은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 역시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20대 국회의원 임기 말에 개헌한다면 차기 대통령 임기가 반으로 줄게 되는 문제가 있지만 임기 줄더라도 국가를 위해 개헌을 하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필요하다”고 내각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패권주의에서 벗어난 대선후보를 지원하겠다며 킹 메이커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김 전 대표는 최근 여러 대선주자나 정치세력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이 구상한 대선 플랫폼을 구성할 후보를 물색 중인데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20일 이미 김무성 전 대표와도 ‘동아일보 대담’을 통해 만나 개헌을 고리로 반패권주의 등 여러 측면에서 공감한 바 있다.
 
둘 모두 당내 비주류로서 제3지대를 구성할 만한 유력 인물로 꼽히고 있어 당시 만남에서 양측이 대체로 의견 일치를 본 데 대해 일각에선 제3지대가 실체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내놓았는데, 대선을 앞두고 분당이나 신당 창당의 형태로 제3지대를 형성할 경우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아 ‘연정’의 형태로 함께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무성 전 대표는 개헌 모델로 연정 모델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런 분석이 전혀 근거 없는 해석은 아닌데, 여기에 ‘임기가 줄더라도 개헌을 하려는 후보’를 찾고 있는 김종인 전 대표의 ‘2년 임기 개헌대통령설’까지 결부시켜 본다면 대권을 겨냥해 제3지대를 형성하고자 하지만 홀로 이뤄내기는 어려운 손학규 전 지사 등 원외 대선주자들과의 연대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앞서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1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주자들이 임기를 2년여로 단축하고 취임 후 1년 이내에 개헌해 오는 2020년에 21대 국회의원과 차차기 대통령 임기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맞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는데 그 역시 개헌할 후보를 위한 대선 플랫폼을 구성하는 데 경주하겠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제3지대인 이른바 ‘정상지대’에 국민의당은 물론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 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렇듯 김종인 전 대표와 많은 면에서 유사한 입장을 보인 정 의장은 23일 오전 광화문에서 김 전 대표는 물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과 함께 조찬 회동을 가졌는데 셋 모두 원내외에서 비주류 쪽에 힘을 싣고 있는 인사들이어서 이날 만남이 제3지대 구성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조심스럽게 나왔다.
 
다만 이날 참석자 중 여권 잠룡인 남경필 경기지사를 지원하고 있는 윤여준 전 장관이 참석하고 있어 킹 메이커 역할을 자임한 자신이 드디어 후보를 결정했다고 해석될 것을 우려했는지 김종인 전 대표는 이날 조찬 직전 기자들에게 “특정인이나 특정정당을 포커스로 맞춘 게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이날 회동이 자칫 ‘제3지대’를 추진하는 자리로 해석될 것도 걱정했는지 회동 뒤엔 기자들과 만나 “제3지대란 말은 안 쓴다. 안철수가 자꾸 자기가 3지대라고 하니 헷갈려서 안 쓴다”라며 대신 ‘비패권지대’란 용어를 내세웠다.
 
이는 그동안 새누리당을 장악한 친박계와 더민주를 장악한 친문계를 겨냥해 양 극단을 배제한 중립세력으로서 제3지대를 국민의당이 주장해왔던 만큼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김 전 대표의 주장이 국민의당이 정의한 ‘제3지대’와 중복·희석된다는 인상을 주기 싫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함께 한 정 의장 역시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에게 “김 전 대표는 비패권지대라고 했고 나는 ‘정상지대’라고 했다”며 비슷한 입장을 놓고도 각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내비쳤다.
 
◆ 갈 길 바쁜 안철수, 제3지대 시동에 사활
 
한편 제3지대론이 불거지자 처음엔 경계심을 보이던 국민의당은 이제 제3당인 자신들이 곧 제3지대라는 논리로 손학규 전 고문 등이 당내 경선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새누리당 출마가 예상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더민주 내 유력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에 밀려 처지가 절박해진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1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분들이 당적을 내려놓고 나온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며 원내외 비주류 대권잠룡들을 향해 끈질긴 구애를 보냈다.
 
이를 놓고 ‘당적을 내려놓는다’는 표현에 비쳐볼 때 더민주 당적을 여전히 갖고 있는 손 전 고문을 향한 발언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는데, 손 전 고문이 만일 더민주 당적을 버리고 제3지대로 나오기만 한다면 안 전 대표 역시 국민의당이 아닌 제3지대에서 그와 공평하게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모든 가능성’이란 단어에 함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1일 강진을 곧 떠날 의사를 밝히며 정계복귀 초읽기에 들어간 손 전 고문은 일단 더민주 당적은 유지한 채 활동할 것으로 보이지만 더민주도, 국민의당도 아닌 제3지대에서 홀로서기에 나설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연이은 원외 인사 영입에 실패해 온 국민의당으로선 원혜영, 강창일 등 일부 더민주 비주류 의원들과 만나 ‘야권후보 통합경선’ 등 또 다른 대안도 모색하는 모양새지만 이미 더민주 내에서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문 전 대표가 양당 내 비주류 의원들이 추진하는 경선에 응할 이유가 없는데다 안 전 대표 역시 문 전 대표와 경쟁하면 온갖 불협화음이 일었던 지난 대선 때문인지 이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에선 통합경선은 정치공학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거론되는 건 유권자에 부정적 인식만 줄 뿐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어 적어도 반 총장이 등판하면서 대선판이 본격 달궈질 내년이 오기 전에 현실화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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