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서해교전과 관련한 논란이 불볕더위처럼 뜨거워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서해교전을 계기로 대북 햇볕정책의 수정이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이의 유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햇볕정책이 북한의 도발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시급히 햇볕정책을 보완하지 않을 경우 8. 8 재보선과 연말 대선가도에 악재로 떠오를 수 있다며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는 지난 3일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 긴급 현안질의를 벌일 것을 민주당측에 요구했다. 이 총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후속조치가 적절한지에 대해 국회차원의 점검이 있어야 한다”며 “오늘 오후 예정된 총무회담에서 4, 5일 본회의를 열어 관계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긴급 현안질의를 벌일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오는 8일 원구성을 위한 본회의가 예정된 만큼 원구성이 안된 상태에서 본회의를 여는 것은 사회권 등 여러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4년간의 대북 화해정책의 부정적 결과로 주적개념에 대한 혼돈이 발생했고, 군의 정신무장과 응전태세에 허점이 발생해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고 햇볕정책의 근본적 수정과 금강산 관광의 일시적 중단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전날(2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햇볕정책을 계속하고, 금강산 관광을 계속한다는 정부 발표조차도 뭘 믿고 그러느냐는 얘기가 있다”며 “국민은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의아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이회창 대통령후보는 지난 30일 “이런 사태에 이르게 한 그동안의 대북정책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한데 이어 1일에는 “북의 무력도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보다 강력한 대응 뿐이라는 간단한 규칙을 잊고 있는게 아닌가”라며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햇볕정책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그동안 전쟁위기를 최소화하고 한반도 평화에 상당한 실효를 거둬왔다면서 지지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과 남북간 민간교류도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대북 정책의 골간을 함부로 흔들어선 안된다”는 입장에서 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고, 서해교전 관련 당정회의(1일)에서도 한나라당의 안보 공세를 겨냥,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대북정책 전체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내에서는 햇볕정책이란 용어에 대해 일부 국민 사이에 거부감이 있는 만큼 이 용어의 사용자제 또는 폐기와 함께 포용을 기조로 삼고있는 대북정책의 손질이나 부분적 보완을 주문하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군의 대응태세 미흡 등으로 국민감정이 악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안보태세는 완벽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전했다. 장영달 의원은 “북이 왜 도발했는지 분석한 뒤 정책기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북의 진의가 뭐냐에 따라 기조가 수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자민련 정우택 정책위의장은 “햇볕정책은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현찰을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고 금강산관광사업도 이런 사태가 나면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뒤 “주적개념과 6. 15 남북정상회담 합의서중 연방제 관련 부분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운영 대변인 직무대리는 논평을 통해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햇볕정책에 있다”면서 “국민을 불안케 하는 안이한 대북인식에서 조속히 벗어나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재검토해 국방과 안보에 만전을 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서해교전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군 수뇌부를 즉각 인책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반해 민주당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다소 유보적 입장이다. 한나라당 서 대표는 2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영결식에 국무총리나 국방장관 어느 하나도 참여하지 않은 기막힌 상황이 발생했다”며 “정부는 교전일지를 공개해야 하며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당장 해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어제 아침 우리당 이상득 사무총장이 전화를 통해 김동신 국방장관에게 영결식에 대해 문의했지만 영결식 시각조차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우리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반드시 규명하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당사에서 `서해무력도발 진상조사특위’(위원장 강창희)를 열고 당시 상황과 군 지휘체계, 적절 대응 여부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은 그동안 북한의 서해 무력도발 사태와 관련, 김동신 국방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 등의 해임을 촉구해왔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이번 사태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면서”임동원 특보는 진작 그만둬야 할 사람이며 기초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DJP 공조파기와 관련해 앙금이 남아있는 임 특보를 겨냥했다. 청와대는 서해교전 사태의 책임론이 정치권에서 비등하고 있는 것과 관련, ‘문책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를 시도했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3일 북한의 서해 무력도발 사태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책임자 문책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지금은 그런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면서 “어떠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책임있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또다른 관계자도 “지금은 사태를 수습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때”라면서 “문책 문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 대변인도 “서해교전 상황을 충분히, 그리고 정확히 파악해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있다면 물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 누구도 무턱대고 감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정확한 상황도 파악하지 않은 채 문책공방부터 벌이는 것은 사태해결이나 재발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민주당내 군 장성 출신인 천용택 의원은 “지금까지 파악한 것을 보면 군사교리 원칙대로 잘 대응이 안됐다고 본다”면서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면 장관에게 물어야 한다고 본다”며 김동신 국방장관 책임론을 거론했고, 정세균 의원도 “우리 화력이 우세하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당한 것을 보면 국방부에 문제가 있다”며 인책론에 동조했다. 민주당은 이어 미 국무부가 북한의 서해 무력 도발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북·미대화가 취소되자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해 있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3일에도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 취소와 관련, 논평을 내고 “이는 전적으로 북한측의 서해도발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유감이지만 원인은 북한측이 제공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 또한 1차적으로 북한측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측은 서해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며 “미국 또한 북한에 대해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만들어가는 데 우리와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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