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누리과정·개성공단’ 예산 요구에 본회의 무산…‘줄다리기’ 협상만 지속

▲ 야당의 추가경정예산안 단독 표결 처리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발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의원석이 텅 비어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25일 추가경정예산을 처리키로 합의했던 여야가 정작 세부 항목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자 정부 원안 수정 여부를 놓고 기 싸움한 끝에 30일 또 다시 본회의 개최가 무산됐다.
 
그간 추경 처리 시한을 3차례나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날 또 다시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막판까지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주요 관건은 누리과정 예산과 개성공단 피해기업 지원 예산을 야당이 요구하는 대로 여당이 수용할지 여부다.
 
하지만 여당 측에선 합의문에도 없던 사안을 돌연 반영하려 한다면서 아예 강경 대응하겠다는 기류가 흐르면서 시한 내 추경안 처리를 기대하기에 난망한 형국이다.
 
새로이 출범한 더민주 지도부조차 추경 처리가 지연되게 된 데 대한 책임 공방에만 열을 올릴 뿐 당초 입장을 철회하거나 양보할 뜻은 보이지 않으면서 불과 몇 달 전인 20대 국회 개회 때부터 3당이 입을 모아 강조해온 협치는 이제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탄식까지 세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野 누리과정·개성공단 업체 지원 예산 반영 주장
 
지난 29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지방채무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꼽으며 이를 상환하기 위한 예산 6000억 원(2016년 배정액 3천억 원에 추가로 3천억 원 증액)을 새누리당의 동의 없이 처리했다.
 
구조조정과 일자리 지원에 9조 8천억 원이 배정되는 등 약 11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이 당초 이날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이렇듯 야당이 여소야대를 앞세워 누리과정 예산을 3천억 원 증액하기로 교문위(유성엽 국민의당 교문위원장)에서 먼저 단독 처리하면서 일찌감치 파행이 예고됐다.
 
당장 새누리당은 이를 ‘날치기’로 규정하고 지난 7월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의 야당 단독 처리에 이어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다수에 의한 일방적 회의진행으로 날치기를 강행해 20대 국회 여야 협치를 파탄시켰다”고 야당을 성토했다.
 
번번이 여야 간 갈등의 불씨로 떠올랐던 누리과정 관련 예산 문제가 이번에도 재차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야당은 여기에 개성공단 폐쇄 피해기업 지원 예산 700억 원 증액분과 학교운동장 우레탄트랙 교체 등 소위 ‘민생예산’ 반영 등을 추가로 요구해 정부 원안대로 처리할 것을 주장해 온 새누리당과 각을 세웠다.
 
이런 야당의 태도에 대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오늘 오전 9시까지 꼭 (본회의 열어 추경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정부가 동의할 수 없는 조건을 걸고 있다”며 “기존 주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새 조건을 걸어 발목을 잡는다. 앞으로 이런 반칙왕 야당을 상대로 어떻게 국회 운영을 해나갈지”라고 개탄했다.
 
특히 정 원내대표는 헌법 57조의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점을 인용해 ”야당의 요구는 명백한 위헌 소지가 있는 행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당초 1박 2일간의 새누리당 연찬회 일정을 배려한 야당이 오전 9시에 본회의를 열기로 지난 주 합의했었던 점을 꼬집어 “연찬회 안 해도 된다. 새누리당이 받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며 “국회를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반면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이번 추경이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만큼 정부 원안에 포함된 국책은행에 대한 현물출자, 외국환평형기금 출연, 국가채무상환 등은 취지에 맞지 않다고 보고 이를 대폭 감액해 오히려 민생예산 쪽을 증액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위가 외평기금 출연액을 1000억 원 삭감하기로 했으나 야당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고 추가 삭감을 촉구하면서도 민생예산으로 분류되는 교육예산의 경우엔 “2016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제외한 일반 교육예산은 12조원이었으나 2017년도 일반 교육예산은 10조 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조 5000억원 감소했다”며 증액을 요구했다.
 
그 중에서도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가진 의총에서 새누리당을 겨냥 “부실 대기업은 수조원씩 지원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위해 예산 고작 몇천억 확보하자는데 못한다는 그런 태도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려 하나”라며 “우리 더민주는 민생예산을 더욱 더 확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의 있게 정부여당을 설득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협상 파행 책임까지 여당 탓으로 돌렸다.
 
이처럼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날 오전 본래 예정됐던 본회의는 고사하고 예결위조차 열지 못한 채 흘러갔으며 새누리당은 공언한 대로 연찬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야당 역시 지난번 합의 당시 서별관회의 청문회 출석 대상과 관련해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어 내년도 예산안 제출일인 내달 2일까지 처리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與野 강공 대치 속에서도 ‘무기한 신경전’엔 부담
 
일단 31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내달 1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되어 있어 여야 모두 추경 처리에만 매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오늘 중 추경안 처리를 하지 않으면 백남기 사건 청문회,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약속도 동시에 파기된다”고 야당을 압박했고, 추경 합의 당시 경제 우선을 내세우며 여당 측에 힘을 실어줬던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같은 날 의총에서 “추경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오늘 반드시 통과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뿐 아니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 인사들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회에 추경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는데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도중 “이번 예산안은 청년과 취약계층 지원, 미래성장 동력산업 육성, 문화융성, 중소기업과 지역경제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며 “반드시 오늘 중으로 처리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역시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2017년 예산안’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추경이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한시라도 빨리 추경예산안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호소에 부담을 느낀 여야는 ‘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면서도 정기국회가 열리는 내달 1일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처리하려는지 이날 오후 내내 추경안 조정을 위해 협상을 이어왔던 원내 교섭단체 3당 예결위 간사들은 내일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새누리당 김광림(가운데) 정책위의장, 주광덕(오른쪽) 예결위 간사, 추경호 의원이 함께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여당 측 간사인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은 “예결위 간사 간 추경안 합의가 되고 약 6~7시간에 걸쳐 처리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일 중으로라도 본회의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며 “내일 오전 중으로 추가 논의를 해서 만나기로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더민주 간사인 김태년 의원도 “최대한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도 “충분히 입장을 개진했고 경청했기에 그 내용을 갖고 여당이나 정부와 조율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관계자들과 조율해서 내일, 이른 시일 내에 타결해보도록 할 생각”이라고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함께 협상에 임했던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도 “각자 입장을 정리하고 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게 끝나면 조속한 시간 내에 만나서 합의에 이르도록 하겠다”고 밝혀 팽팽한 기 싸움 속에서도 어떻든 추경 처리에 대한 의지는 3당 모두 갖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렇게 막판까지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야가 쟁점 사안에 있어 접점을 찾고 11조원에 이르는 추경안을 제 때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인지 이제 모두의 이목이 국회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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