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은 협치를 통한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총선을 치른 지 4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여야 3당이 추경안을 처리키로 약속한 공식합의문이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여야 협치를 바라는 민의는 온데간데없고 추경안 처리 불발을 두도 여야 네 탓 공방만 일삼고 있다. 야당은 선 추경 후 청문회를 야당은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증인 채택 합의를 요구하는 팽팽한 기싸움으로 22일 추경안 처리 국회 본회의는 무산됐다. 추경안이 무산된 데는 한 치의 양보 없는 여야의 이전투구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친문 친노세력을 겨냥해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행태만 보이고 특정 강경세력이 여야 협상의 근간을 흔들어 추경안이 불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최경환 전 부총리, 안종범 수석 등 증인 출석으로 이들의 해명과 검증이 필요하다며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가 제대로 성사돼야 추경안 통과를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추경은 통과돼야 하고 청문회 핵심 증인도 나와야 한다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국민의당의 절충안을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추경안 처리를 하겠다고 약속한 공식합의문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파기한 것은 어찌됐든 민생경제를 살리려는 의도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여야 모두 서로 추경안 불발이 내 탓이 아닌 네 탓 비난 전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네 탓이라는 협상과 정치력은 실종된 상태다.

추경은 현재 국내 경제사정을 볼 때 필요한 상황임에도 협치는 커녕 식물국회의 오명을 쓴 19대 국회의 판박이 국회가 될지 모르는 불안감마저 스며든다. 민의는 추경안 통과 목적에 앞서 20대 국회가 여야 합의를 통해 이뤄진 협치를 바라고 있다, 한 발짝씩 양보하는 미덕이 20대 국회에서 필요함에도 여야 첫 공식합의문이 깨진 것을 보면 20대 국회의 앞날은 19대처럼 불 보듯 뻔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야 공식합의문을 발표한 게 진정성이 묻어난 협치가 아닌 ‘보여주기 식 협치’로 밖에 안 보인다. 협상과 정치력 양보가 사라진 19대 국회와는 다른 20대 국회를 기대한 국민들은 또 다시 4년 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민생은 외치면서 정작 중요한 고비 때마다 정쟁만 일삼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더민주는 추경안 처리키로 합의했으면 다른 사항과 연계하지 말고 추경안을 하루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최경환 전 부총리가 총체적 부실을 떠안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천문학적 자금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 회의 핵심인물로 증인채택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친박계 실세인 최경환 의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라면 비판받아야 할 사항이다. 여야3당이 민의를 외면한 19대 국회의 판박이로 되돌아가는 우를 범하질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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