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 감독, 경쟁 유도·선수단 장악 노린듯

한국-이란의 아시안컵 예선전(9.2·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나갈 대표선수 명단에 박주영(21·서울)과 안정환(30)이 빠진 것에 대해 축구 전문가들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름값이 높은 선수라도 ‘으레 뽑힐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핌 베어벡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박주영 탈락에 대해 “최근 대표팀 훈련에서 보니 지난해 같은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며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베어벡 감독은 “현 시점에서 박주영 보다 최성국과 정조국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잃어버린 자신감을 K리그에서 찾는게 필요하다”며 분발을 요구했다. 베어벡 감독은 아직까지 옮길 팀을 찾지못한 안정환(30)도 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베어벡 감독은 “팀을 찾느라 훈련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대표팀에서 뺀 배경을 설명했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2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2일 오후8시 서울월드컵경기장), 대만(6일 오후8시 수원월드컵경기장)과의 2007 아시안컵 B조 예선 3·4차전에 출전할 25명의 ‘2기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설기현(레딩FC)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해외파들을 합류시켰다. ◆박주영 위기를 기회로 ‘축구 천재’로 불리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나갈 재목으로 평가받던 박주영이 시련에 봉착했다. 지난해 부평고를 졸업하고 화려하게 서울에 입단. K-리그의 인기를 주도했고,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박주영에게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번 이란전 엔트리에 박주영의 탈락을 놓고 축구 전문가들은 이런 충격이 기회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의 탈락을 두고 “상처받지 말고,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보약으로 삼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박주영은 주변의 기대가 높아 스스로 압박감을 많이 받으면서 위축됐다”며 “초기의 박주영처럼 더 공격적이고 위력적인 움직임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현옥 호남대 교수(축구학)는 “청소년 시절에는 박주영 중심으로 팀이 만들어졌지만 대표팀은 다르다”며 “더 활달하고 더 파괴적인 모습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화 감독은 “박주영이 정조국이나 조재진보다 컨디션이 떨어졌기 때문에 탈락한 것”이라며 “스스로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박주영도 최근 대표팀 탈락에 대해 담담하게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 박주영은 "국가대표 엔트리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론 편안하다"고 말했다. 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겠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K-리그)을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박주영은 "독일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유럽으로 가고 싶다. 3부 리그도 좋고, 4부 리그도 좋다.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겠다"며 자신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말을 했다. ◆안정환,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반지의 제왕’ 안정환 역시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베어백 감독이 선수선발 원칙의 기준인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이유다. 현재 안정환은 독일 뒤스부르크가 계약을 해지 하면서 무적 선수가 됐다. 대표팀에만 집중하길 원했지만 이번의 탈락으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대표팀에서 탈락한 안정환은 줄기차게 유럽의 팀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현재는 그게 잘 안되고 있다. 유럽진출은 선수이적 마감일이 다 돼 사실상 어려워졌고, 국내 K리그는 지난달말 선수등록 시한이 끝났다. 유럽의 이적 시장은 31일 모두 문을 닫았다. 안정환이 원하는 유럽팀으로 진출하지 못하면 내년 1월 겨울 이적시장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표팀 명단에도 빠질 수가 있다. 문제는 안정환의 상품성이다. 핌 베어벡 감독은 “소속팀이 없는 선수는 훈련량이 부족해 뽑지 않겠다”고 밝혀, 앞으로 안정환이 대표팀에 얼굴을 내밀 가능성은 낮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으면 유럽의 이적시장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진다. 매우 곤혹스런 처지다. K리그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규정을 거스르는 파격인데다, 관심을 보였던 일부 팀들도 냉담하게 태도를 바꿨다. 그렇다면 겨울이적 시장을 대비한 피나는 개인훈련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클럽이 없는 상태로 장기간 개인훈련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박성화 감독은 안정환과 관련해, “소속팀이 없이 개인훈련을 하면 체력과 감각이 떨어지는데, 그런 상태로 대표급에 합류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축구는 개인이 하는 경기가 아니어서, 정신·신체적인 컨디션은 11명이 함께 하는 팀훈련에서 제대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서현옥 교수도 “안정환의 체력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면 조광래 감독은 “안정환이 그동안 대표팀 경기에서 고비마다 많이 해결을 해왔다”며 “연습량이 부족해 떨어진 게 조금 걸린다”고 말했다. 베어벡 감독은 아시아 맏형 자리를 놓고 으르렁대는 강호 이란과의 맞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대표팀 구성을 가장 실리적으로 하려 했다. 그러나 충격을 통해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고, 선수단을 장악하려는 의도도 있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엔트리에 이동국을 배제했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2006 독일월드컵에서 차두리를 탈락시키는 방법으로 팀 장악력을 높였다. 물론 베어벡 감독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박주영과 안정환을 기용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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