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우병우 의혹’ 계기 전면 개각 요구…靑 ‘레임덕’ 고심

▲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의 전면 개각 요구로 인해 개각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진 좌측에서 두번째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공동기자단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몽골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 전보다 한층 불어난 공직자들의 각종 의혹으로 고심에 빠져있다.
 
야권은 최근 ‘민중은 개·돼지’란 극언으로 나향욱 교육정책기획관이 파면된 데 이어 넥슨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120여억 원의 주식을 무상으로 증여받아 현직 검사장으로는 최초로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구속되고, 청와대까지 우병우 민정수석이 부인의 부동산 매각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르면서 검찰 개혁과 더불어 ‘전면 개각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공조하기로 합의하는 등 연이어 터져 나오는 공직 내 기강해이 및 비리 의혹을 기회로 박근혜 정부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매년 7월 말 혹은 8월 초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단행했던 개각이나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이번에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8일 박 대통령은 김재원 정무수석, 김용승 교육문화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을 새로 임명한 바 있어 내달 초쯤엔 청와대 참모진 개편보다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을 교체하는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야권의 ‘전면 개각론’ 압박으로 인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고려하는 개각은 집권 말기 국정동력을 확보하는 데에 방점을 둔 데 반해 야권이 요구하는 개각은 공직기강 해이 및 비리 문제 등에 대한 문책성 개각이란 점에서 그 성격과 방향이 분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권 말기 레임덕을 막기 위해 개각을 단행한다고 해도 오히려 ‘현 내각의 인사 전반에 문제가 많다’는 야권의 주장을 수용하는 모양새로 비쳐져 자칫 레임덕 전조냐는 해석까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박 대통령에게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개각 뿐 아니라 우병우 수석을 둘러싼 의혹을 연일 문제 삼으며 청와대 개편까지 촉구하고 있어 내달 초 박 대통령이 야권의 압박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野, ‘우병우 의혹’ 계기 ‘靑 개편-전면 개각’ 촉구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우 수석의 처가 지난 2011년 넥슨코리아에 부동산을 매각할 당시 진경준 검사장의 주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 보도가 나오자마자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나서서 “정부 내각을 보면 국무위원, 장차관 모두 복지부동을 넘어서 행동과 언행을 이해하지 못할 게 많다”며 “매일 터지는 사법부 비리는 국민을 실망시킨다”고 지난 15일에 이어 또 다시 개각론에 불을 지폈다.
 
김 대표는 “언론과 정치권이 총체적 위기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성과도 얼마 없는 순방외교에 몰두하는 것 같아 나라 걱정이 심하다”며 “전면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빨리 이행하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한 때”라고 거듭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지난 2012년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과거 때문인지 그간 박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발언은 가급적 하지 않았던 김 대표가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적잖이 이례적으로 비쳐졌는데, 이는 그만큼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민의당도 더민주에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지 전면개각을 주장하면서 청와대를 향해 포문을 열었는데,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우 수석과 진경준 검사장 의혹으로 총체적으로 무너진 정부 공직기강과 함께 검찰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도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한편 국민 앞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전면 개각을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박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폈는데, “권력기관 도처에 깔려 있는 우병우 사단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며 “권력의 정점에서 인사 사정의 모든 권력을 전횡했고 심지어 비서실장까지 무력화시킨 장본인”이라고 현 실세인 우 수석에 직격탄을 날렸다.
 
▲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19일 의원총회에서“전면적인 개각을 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참모를 정리할 때”라고 말해 개각은 물론 청와대 개편도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일 의원총회에서도 우 수석을 겨냥해 “만사의 시작인 인사검증 등 실무를 총 책임지는 사람이 각종 의혹의 한 가운데 있다”며 “전면적인 개각을 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참모를 정리할 때”라고 말해 개각은 물론 청와대 개편도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여기에 두 야당은 청와대 수석과 국회의원은 물론 판·검사 등의 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상설국가기관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까지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하는 등 수세에서 공세로 국면 전환에 나섰다.
 
◆ ‘레임덕 우려’한 靑, 野에 강경 대응…개각 연기 가능성도
 
이처럼 야권의 집중포화를 맞은 우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에선 끝내 맞대결을 택했는데,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9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정치공세나 국정 흔들기는 자제돼야 한다”며 “근거 없이 의혹을 부풀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야권에 맞받아쳤다.
 
이를 통해 보듯 청와대에선 야권의 우 수석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더불어 이를 명분 삼은 개각 요구조차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려는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하기로 뜻을 굳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흐름 때문인지 여당 역시 청와대에 맞춰 점차 분위기가 달라졌다.
 
새누리당에선 19일 의혹의 중심에 선 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왔는데, 비박계 당권주자인 정병국 의원은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대통령께 엄청난 부담”이라며 “대통령께서 경질하시기 전에 본인이 판단하는 문제”라고 해 사실상 자진사퇴를 종용했다.
 
이에 앞서 같은 비박계 당권후보인 김용태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검찰은 민정수석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남기없이 조사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야 한다”고 야당의 주장에 동조했다.
 
또 정병국·김용태 의원은 야권이 요구하는 개각에 대해서도 적극 찬성했는데, 김 의원은 지난 13일 PBC라디오에 출연해 ‘야권의 전면 개각 요구’와 관련, “적극 찬성이다. 개각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의 전면적인 대쇄신,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정 의원은 19일 CBS라디오에 나와 “개각을 해야 된다고 보고 야당이 주장해서가 아니라 개각을 해야 될 때가 왔다”고 역설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일 긴급현안 질문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먼저 우 수석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에게 신속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불과 하루 뒤인 20일 비대위 회의에선 “당과 국가 미래를 위해 애당적, 애국적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며 돌연 수습 국면으로 들어가 청와대의 입장과 발맞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논란의 당사자인 우 수석 역시 청와대의 이 같은 ‘강 대 강’ 기조에 힘을 받았는지 20일 춘추관에서 의혹을 해명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고 검찰 수사에도 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며 그간 제기된 의혹에 일일이 반박했다.
 
아울러 야권에서 자신에 대해 정무적 차원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는 데 대해서도 “그럴 생각이 없다”며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하지 않은 의혹 제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맞지 않다”고 단칼에 거부했다.
 
이렇게 야권이 청와대 인사 개편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은 우 수석조차 정면으로 맞서는 양상을 띠면서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우려해 차선책으로 야권과 맞대결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청와대 개편은커녕 개각조차도 상당히 뒤로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박 대통령이 평소 ‘인사를 위한 인사’를 하지 않아 특별한 이유 없이 인사 개편을 자주 하지 않는데다 신임을 받는 인사일수록 가급적 교체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정윤회 문건’ 사건을 깔끔히 처리한 우 수석을 비호하기 위해 개각을 포함한 야권의 모든 요구에 강공으로 맞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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