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정상화, 친박 강경파의 ‘판정패’ 해석도

▲ 김희옥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0일 ‘무소속 복당’ 사태 뒤 나흘 만에 당무에 복귀해 비대위 정상화에 들어갔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희옥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0일 ‘무소속 복당’ 사태 뒤 나흘 만에 당무에 복귀해 비대위 정상화에 들어갔다.
 
전날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과로 어느 정도 내홍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당무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꼽혔던 권성동 사무총장 경질 문제를 두고 김영우 비대위원 등 비박계가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내면서 이날 회의 시작부터 불안한 징조를 보였다.
 
이런 와중에 초·재선 중심의 친박계 소장파 의원들은 지난 17일 1차 회동에 이어 이날 2번째 모임을 갖고 표면적으로는 권 사무총장 사퇴 촉구를 내세워 유승민 의원과 그의 복당을 주도한 비박계를 압박하고자 했지만 당내 70~80명에 이르는 친박계 의원 중 겨우 26명이 참석하는 데 그치면서 결속력이 예전만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일각에선 권 사무총장 사퇴 문제가 마무리되지 못해 당내 여진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비대위가 정상화됐다는 점에 비쳐 ‘유승민 복당’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비박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 권성동 사퇴 문제, 친·비박 ‘자존심’ 대결 양상
 
앞서 지난 16일 새누리당을 탈당했었던 무소속 의원에 대한 ’일괄 복당’ 조치는 비대위에서 논의된 첫 날부터 곧바로 확정될지는 친박계 측에서도 미처 예상할 수 없었기에 어떤 면에선 친박계가 자신들의 추천으로 내세워진 김희옥 비대위원장만 믿고 있다가 비박계의 허를 찌른 ‘투표’에 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당헌당규상 현재 비대위가 최고의결기관이란 점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을 번복할 명분도 마땅치 않던 친박계에선 뒤늦게 이번 복당 결정을 표결에 반대하는 비대위원장을 압박해 강행한 폭거로 규정하고 조원진, 김태흠, 김진태, 이장우 등 당내 친박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비대위 결정을 백지화하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이들은 당내 친박계가 다수라는 점을 내세워 실력행사로 밀어붙이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에서 승인했던 무소속 복당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는 입장을 내놓는 한편 김 비대위원장을 압박했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까지도 논의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초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를 논의하려던 1차 회의에 불과 6명이 모이는 데 그쳐 의총을 열만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실패하면서 정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섰는데, 대신 명목상 비박계인 권성동 사무총장이 책임지고 자진사퇴하는 선에서 매듭짓기로 했다.
 
그동안 유승민 의원의 복당에 강하게 반발해 온 친박계가 일부 강경파 의원이 회동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결집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단 점에서 박 대통령의 레임덕 징후가 나타난 것 아니겠느냐는 목소리도 일부 나오고 있지만 같은 날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비대위에서 정해진 복당 결정을 일단 수용해야 한다고 밝힌 점도 친박계가 일치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된 원인이란 해석도 나왔다.
 
실제로 서청원 의원 외에도 한선교 의원 등 당내 친박계 다선 중진의원들은 비대위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었는데 ‘유승민 복당’ 논란이 장기화돼봐야 유 의원에 대한 여론의 관심만 높아져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노리고 있는 친박계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비박계만 반사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이렇듯 8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실권이 비대위를 사실상 떠나게 된다는 점에서 친박 중진들은 전대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되지만 상대적으로 당내 소수파가 된 비박계는 이번 논란을 장기화시켜 전당대회까지 친박과의 계파 갈등을 이어가는 편이 향후 전대를 위한 여론전에 있어서도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권 사무총장 사퇴라는 친박계의 양보에도 사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친박계 역시 강경파를 중심으로 권 사무총장 사퇴만은 관철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는데 여기서도 또 한 발 물러나게 되면 당무거부까지 감행했던 김 비대위원장과 복당 결정을 비판했던 친박계의 입장이 우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권 사무총장의 사퇴 문제는 사무총장직 유지의 의미나 실익은 없더라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이는 친박과 비박이 서로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자존심 대결로 비화됐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보여주듯 비대위 내에서 친·비박계를 각자 대표하는 김 비대위원장과 권 사무총장은 이견 차를 드러내며 신경전을 벌였다.
 
비박인 권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헌당규를 보면 당 대표, 비대위원장은 (사무총장) 임명추천권만 갖고 있다”며 “(사무총장) 해임안은 비대위 의결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혀 자진사퇴하지 않는 것은 물론 김 비대위원장의 경질 의사를 인정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를 증명하듯 본래 경질됐다면 참석이 불가능한 비대위 회의에도 권 사무총장은 이날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선 비박계인 김영우 의원이 모두발언을 통해 “권 사무총장의 경질 방침이 지난주 비대위에서 있었던 복당 문제와 연계된 거라면 이는 비대위의 자기 부정이자 자기 모순”이라며 “만약 비대위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면 전체가 사과해야지 특정인 경질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권 사무총장을 두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당사에서의 비대위 회의 직후 가진 지상욱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권 사무총장을 경질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다 친박계 의원들 역시 이날 오후 26명이 모인 2차 회동에서 일괄복당 결과는 일단 받아들인다면서도 ‘복당 사태에 대한 정 원내대표의 공식 해명’ 및 ‘권 사무총장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해 ‘복당 승인’ 후유증으로 인한 진통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날 친박 5선인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여의도의 한 식당에 친·비박 인사 40여명을 초대해 오찬을 갖고 “우리가 맛있는 고래 고기를 통해 화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여야를 아울러 같이 가야되는 판에 지금 친, 비박을 따져서 뭐할거냐”고 화합을 강조해 친박 내 소장파와는 상이한 친박 중진들의 의중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 침묵하던 비박 김무성, 친박계에 본격 맞서나
 
▲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위해 2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같은 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런 가운데 이날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9일 오후 경남 함양의 선영을 찾아 참석자들과 대화하던 중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집토끼(고정 지지층)’ 생각만 하고 과거에 함몰되는 등 너무 극우적 이념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 이념을 가지고는 앞으로 도저히 안 된다”고 사실상 친박계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김 전 대표는 개헌에 대해서도 “합리적 국정 운영과 민주주의를 하려면 권력을 나눠야 한다”며 “정세균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개헌 여론이 확산되고 있으니 나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생각”이라고 전했는데, 이런 발언을 두고 다시금 대선을 의식한 활동을 재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20일 본회의 참석 뒤에도 기자들에게 “개헌은 내 소신”이라며 “대통령 권력을 축소해야 한다. 분권형 (개헌)이 맞다”고 말해 전날과 마찬가지로 연정제에 뜻을 뒀음을 피력했다.
 
아직 청와대에선 개헌이 민감한 사안인 만큼 논의하는 자체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인데 과거 개헌론을 꺼냈다가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났던 김 전 대표가 또 다시 개헌 주장을 폈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친박계를 겨냥한 선전포고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시각 때문인지 김 전 대표 역시 계파 갈등이 첨예한 현안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꼈는데 자신의 측근인 권 사무총장이 비대위에서 경질되는 문제에 대해선 “난 아무것도 모른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간 침묵하던 김 전 대표가 이처럼 갑자기 정치 행보를 재개한 데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비박계가 비대위를 통해 유승민 복당을 성사시켜 친박계를 어느 정도 위축시킴으로써 비박계 대표로서 활동을 재개할 배경이 마련됐다는 점과 이대로 침묵할 경우 총선 패배의 주역으로 낙인찍힌 채 비박계의 주도권조차 복당한 유 의원에게 내주게 된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 의원은 자신의 복당으로 인한 내홍이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만큼 아직 별 다른 입장은 내놓지 않은 채 몸을 사리고 있지만 친박 윤상현 의원은 벌써 복당 승인 나흘 만인 이날 충청권 맹주인 김종필 전 의원을 방문하는 등 정치 행보를 재개한 데 이어 새누리당 복당 신청을 아직 하지 않았던 무소속 장제원, 주호영, 이철규 의원 등 3인도 이날 모여 오는 22일 쯤 복당하기로 결의하면서 유 의원 역시 조만간 정치 행보를 재개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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