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靑 기대 속 일부 법안 두고 시작부터 ‘이견 차’ 비쳐

▲ 정세균 국회의장이 10일 자신을 예방한 새누리당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최악의 19대 국회에서 후반기 의장직을 맡아 쟁점 법안 직권상정 문제 등을 놓고 극심한 당청 갈등을 빚었던 정진석 전 의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 지난 9일 20대 전반기 의장에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새로 선출됐다.
 
이번 의장은 14년 만에 야당에서 배출됐다는 부분과 더불어 부의장인 새누리당 심재철,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 모두 정 의장처럼 호남 출신이란 점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한 지역 출신이 의장단을 석권하는 진기록까지 남겨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또 정 의장이 ‘범친노’로 분류되면서도 계파적 성격이 강하지 않아 여야를 막론하고 별 다른 반감을 일으키지 않은데다 6선의 다선 의원으로 오랜 기간 의정활동을 이어오면서도 ‘미스터 스마일’이라 불릴 정도로 온유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아왔다는 점 역시 ‘협치’를 필요로 하는 20대 국회의 성격에 걸맞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 의장 체제가 20대 국회를 ‘협치’의 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많은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데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각종 쟁점법안을 비롯해 여야 간 충돌할 만한 사안이 여전히 산적해 있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리더십이 발휘될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정세균 리더십, 20대 국회 이끌 수 있나
 
정 의장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 국회에 첫 입성한 이래 전북 진안-무주-장수에서 4선을 한 데 이어 19대 총선에선 전통적 여권 강세 지역인 ‘정치 1번지’ 종로에 도전해 당시 여권 실세이자 5선인 홍사덕 전 의원을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20대 총선 직전엔 공천 과정에서 강기정·전병헌·오영식 등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컷오프되며 당내 기반을 상실한 데다 차기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 의장의 지역구인 종로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지역구 수성이 어려울 것으로 점쳐졌으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 큰 격차로 오 전 시장을 따돌리고 6선 고지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렇듯 어려운 국면에서도 어떻게든 돌파해내는 정 의장의 승부사적 기질 외에 여러 정치·경제적 역량 역시 의장직을 맡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열린우리당, 민주통합당 등에서 세 차례나 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관리형 리더십을 펼쳤고 경제적으로는 쌍용그룹에서 17년 간 근무해 상무이사까지 오르며 쌓았던 실무경험은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았던 경력과 당에선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그간 ‘경제 브레인’ 역할을 전담해왔다.
 
이 같은 그의 경력에 비쳐 3당 구도를 이뤄 상호 견제가 쉬워진 20대 국회에선 그가 정쟁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이 절박할 만큼 어려운 현 경제 난국을 인지하고 정부의 경제 관련 법안 처리 등에도 협조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그가 지난 9일 국회의장직 수락연설에서 “국회가 책임정치의 주체로서 당면한 경제위기, 앞으로의 구조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의장으로서 유능한 갈등관리와 사회통합의 촉매 역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발언한 점에 비쳐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에 야권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까지 호의적 반응을 내비쳤는데, 청와대에선 10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재원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과 함께 국회를 찾아 정 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제가 (취임 후) 외부활동으로는 첫 번째로 의장님을 뵈러 왔다. 막중한 시기에 기대가 크다”며 “대통령께서도 의장님께 기대가 크시다”고 전했다.
 
김희옥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역시 같은 날 국회 내 의장실을 찾아와 정 의장과 10여 분간 면담한 자리에서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인데 의장으로 부임하게 돼서 국민으로서도 든든할 것”이라며 “의장님께서는 많은 경험을 가지시고 국민의 삶에 관계되는 여러 고민을 중재하시는데 많은 노력을 해주셔서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정 의장을 높이 평가했다.
 
◆ 정세균, ‘상시 청문회법’ 놓고 정부여당과 충돌하나
 
이처럼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정 의장이지만 그가 과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계속해서 중립적 입장에 머물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인데, 지난 19대 국회에서 본래 새누리당 출신이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출신 정당과의 갈등도 불사했던 정의화 전 의장의 경우처럼 개인적 판단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정 전 의장이 기습적으로 직권상정해 청와대가 거부권까지 발동하는 사태가 빚어졌던 이른바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선 벌써부터 여당 측과 정 의장이 이견차를 보이고 있다.
 
상시 청문회법이란 기존 국회법에선 청문회를 개최하기 위해 여야가 먼저 국정조사에 합의하고 별도 특위를 구성하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이 조건을 크게 완화시켜 각 상임위별 소속의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바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국회법을 일부 개정한 법률이다.
 
또 절차적 요건을 완화했을 뿐 아니라 청문회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 역시 확대해 법률안과 관계없는 주요 이슈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열 수 있게 했는데,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이나 ‘정운호 게이트’ 등에 대한 청문회도 개최할 길이 열려 여당 입장에선 야권이 각종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청문회 개최를 주장해 국정 운영에 발목이 잡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법과 관련해 정 의장은 10일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로부터 “신임 의장으로 상시청문회법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먼저 법리적인 검토를 거치고, 교섭단체 대표들과도 논의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둬 여당과의 충돌을 예고했다.
 
▲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10일 정세균 의장이 상시 청문회법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친 것과 관련해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에 새누리당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는데, 김도읍 원내수석은 같은 날 경기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정책 워크숍에서 “오늘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법에 대해 법리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며 “대통령께서 재의결을 요구한 그 법률안은 19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법률안에 불과하다.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고 검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렇듯 새누리당이 확실히 못을 박음으로써 온건한 성향의 정 의장이 더는 이를 거론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전날 정 의장이 의장 당선 소감에서 “많은 의원들이 나에 대해 온건하다는 평가를 하지만 20대 국회는 온건함만으론 충분치 않을 것이다. 때로는 강경함이 필요할 것”이라고 발언한 점을 상기한다면 19대 때의 정 전 의장처럼 정면충돌할 여지도 없지 않다.
 
이를 보여주듯 정 의장은 10일 “국회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나 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도울 일은 아주 유연하게 잘 협력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든지, 의회주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의회 입장을 개진하고 필요하면 잘 따질 것”이라고 밝혀 ‘상시 청문회법’ 재검토로 정부여당과 충돌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를 통해 일단 20대 국회 역시 ‘협치’로 가는 길이 마냥 순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장차 정 의장이 ‘제2의 정의화’가 될 것인지 어떨지는 앞으로 그의 행보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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