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與 ‘상시 청문회법’ 처리 반발…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정의화 의장이 상정해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권이 각기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시사포커스 / 원명국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19일 19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국회와 청와대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법안 이외 중요 안건 심사나 소관 현안 조사에 필요하다면 재적의원 과반수 의결을 얻어 언제든지 청문회를 열 수 있는 이른바 ‘상시 청문회법’이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회 상임위는 인사청문회나 법률 제정 심사에 필요한 청문회만 개최할 수 있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야권이 과반을 이루는 20대 국회에선 야권이 원한다면 중요 안건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내놓는 모든 정책마다 청문회를 열 수 있게 돼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와 새누리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여소야대 상황이 아닌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건 비박계 등 여당 내 일부 의원이 이 법안이 처리되는 데 있어 야권과 공조했기에 가능했다는 걸 의미하기에 이는 과거 유승민 사태 이후 또 다시 국회법으로 인한 제2의 당청 갈등을 야기하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내홍 수습에도 바쁜 상황이어서 국회법 문제로 당청관계까지 흔들리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이번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실어준 당내 비박계가 탈당해 신당 세력에 함께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與 “국회법 개정안, 행정부 무력화 우려”
 
지난 19일 ‘상시 청문회’와 ‘권익위 비대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발의 하에 재석 222명 중 찬성 117명, 반대 79명, 기권 26명으로 통과됐다.
 
반면 이보다 앞서 조원진 전 원내수석부대표가 정 의장의 국회법 개정안 내 쟁점 조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상임위 청문회 관련 조항’을 개정하지 않는 내용으로 본회의에 제출한 수정안은 정 의장의 원안보다 먼저 상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7표의 찬성표를 얻는 데 그치며 부결됐다.
 
이는 지난 3월 30일 ‘조원진 수정안’의 공동발의자로 나선 30명 중 최소한 23명이 입장을 바꿨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 의장의 법안 상정에 맞서 당내 의원들에게 모두 반대표를 던지라고 지시했던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정작 정 의장의 ‘원안’은 통과되고 ‘수정안’은 부결되어버린 예상 밖의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같은 국회법 개정안 처리로 인해 폐회 중인 3월, 5월 셋째 주에 상임위를 개최할 수 있어 상시 국회 명문화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국회 상임위에서 법률안 이외 주요 안건 심사나 소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한 경우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을 때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됐고, 그간 국회로 접수되어온 각종 민원을 국민권익위가 정부 부처를 상대로 조사할 수 있게 돼 한 마디로 행정부의 권한이 크게 약화되고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임기 3년차를 보내면서도 총선 패배로 인해 벌써 레임덕 위기설에 휩싸인 청와대는 이 같은 국회의 움직임에 누구보다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새누리당 역시 여소야대가 되는 20대 국회에서 행정부마저 약화되면 더는 여권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어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법안이 통과된 19일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법 개정안은 여야가 이번 본회의에서 안건으로 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정 의장이 무시하고 전례 없이 독단적으로 상정했다”며 이번 사안을 ‘정 의장 독단 행위’로 규정하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김 원내수석은 “정 의장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20대 국회에서 다시 개정안을 내겠다”고 한껏 별렀다.
 
또 김 원내수석은 “시시때때 발생하는 현안에 대해 청문회를 여는 것은 이 법의 독소조항”이라며 이 개정안이 발효되면 상임위가 본래 업무에 치중하기보다 정부의 정책마다 청문회를 열어 ‘정쟁형 상임위’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법안은 앞서 지난 2014년 7월 정 의장이 직속으로 설치한 국회개혁자문위원회에서 내놓은 10가지 개혁방안 중 지난 2015년 5월 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심사해 위원회안으로 받아들인 ‘상임위 청문회 제도 활성화, 국회 민원처리 개선 및 청원심사 활성화 등 3개 의제와 7월에 추가한 8월 임시회 명문화 등 2개 의제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사퇴 직후인 지난해 7월 9일 전체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된 바 있다.
 
이렇게 운영위를 통과한 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일부 조문만 다듬어 본회의로 올렸는데, 원유철 원내대표가 유 전 원내대표의 후임자로 나와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반대하면서 근 1년 간 통과되지 못하고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까지 끌어온 것이다.
 
▲ 정의화 국회의장은 20일 새누리당이 자신을 향해 독단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고 비판한 데 대해“여야 합의 없이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건 의장 권위를 무시하는 누워서 침뱉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 때문에 정 의장은 새누리당에서 자신을 향해 이날 독단적으로 직권상정 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을 놓고 20일 기자들과 만나 “내가 직권상정한 게 아니라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본회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일정 잡는 건 전적으로 의장의 권한”이라며 “여야 합의 없이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건 의장 권위를 무시하는 누워서 침뱉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역설한 대로 당초 취지가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보다 간단한 절차로 청문회를 열자는 데 방점이 있을지언정 기존 국회법에 있던 청문회 폐지 요구 조항까지 사라진 이 개정안에 대해 20대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제대로 본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여전히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더 큰 고민은 아직 20대 국회가 열리지도 않은 시점에 벌써부터 여당의 야권 견제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뭉쳐도 모자랄 여권까지 분열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날 본회의 표결에서 새누리당의 강길부·김동완·민병주·윤영석·이병석·이종훈·정병국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과 새누리당 출신이지만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조해진·정의화 의원이 만일 개정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야권 표만으로는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靑 ‘거부권 행사’로 ‘판세 뒤집기’ 나설까
 
당 내홍이 아직 수습되지 않아 정당 지지율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도 ‘판세 뒤집기’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인데, 일각에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저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럴 경우 더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고 있어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와 달리 당장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인데 이미 ‘상시 청문회’ 조항에 대한 재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내부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도 여기에 발맞춰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소야대 상황인 만큼 현실적으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외엔 원내 역량으로 여당이 되돌리긴 역부족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국회로 넘겨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거부권 행사를 하려고 한다 해도 현재 마땅한 명분이 없는데다 재의 요구된 법안이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법안으로 확정되기에 새누리당이 과반에 못 미치는 20대 국회에선 대통령 거부권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여당이 이를 저지시킬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만일 끝까지 표 대결로 갈 경우 123석의 더불어민주당과 38석의 국민의당, 6석의 정의당 등 야권 연대와 무소속 및 여당 내 일부 비박계의 행보에 따라 또 다시 법안 통과 저지에 실패할 수 있어 재의결돼버리는 상황에선 오히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한층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지도부 표류가 장기화되는 부분도 이러한 난국에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어 그야말로 내우외환, 설상가상의 지경에 처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野 국회법 개정안 처리 환영…‘청문회’ 권한 활용엔 온도차
 
한편 야권은 일단 이번 국회법 처리에 대해 정 의장과 마찬가지로 한 목소리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는데, 더민주는 모처럼의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우상호 원내대표가 20일 “더민주는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남용 안 한다”며 새누리당에서 내놓는 국회법 개정안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차단하고 나섰다.
 
다만 이종걸 원내대표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미리 반대하고 나온 것은 물론 “다행히 새누리당의 혼란과 분란 속에 이 내용을 잘 알지 못한 새누리당도 동참하는 바람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다소 노골적인 반응을 내놓는 등 국회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한 입장 표명에 있어 제대로 내부 정리가 되지 못한 모습을 내비쳤다.
 
여기에 국민의당 역시 국회법이 통과되기 무섭게 벌써부터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가습기 살균제’, ‘어버이연합’ 문제 등에 대한 청문회를 열겠다고 천명했는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개혁을 후퇴시키는 법안을 새누리당이 원한다고 해도 20대 국회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며 ‘협치’보다 ‘대결’ 의지를 드러내 여당의 우려가 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줬다.
 
문제는 장차 청와대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따라 정국이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감행해 야권과 ‘치킨 게임’에 돌입할 것인지 거부권을 쓰지 않고 ‘상시 청문회’가 이뤄지도록 지켜볼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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