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던 비박계, 정진석 ‘비대위’ 겸직에 격한 반발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 문제로 당내 이견이 나오는 데 대해 고민에 휩싸여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11일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으로 마무리된 새누리당 중진연석회의 결과에 대해 하루 지난 12일부터 비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반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20대 총선 직후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직하기로 하자마자 이를 무산시키는 데 앞장섰던 새누리당 혁신모임 소속 의원까지 당장 이번 회의 결과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당내 반발 기류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다만 정 원내대표가 별도의 혁신위를 출범시켜 혁신안을 내놓기로 약속한 만큼 향후 혁신위 운영의 실효성 여부가 이 같은 반발이 잦아들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크게 확산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비박계, ‘정진석 비대위 체제’에 집단 격앙
 
나경원 의원을 내세웠다가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비박계 의원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혁신 비대위’가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직 겸직으로 사실상 무산되고 별도 특위 형태의 혁신위 설치로 사실상 격하된 지난 회의 결과에 대해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비박계 인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12일 PBC라디오 ‘열린아침 윤재선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어제의 결정은 지도부 공백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고 당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제 개인적인 생각과는 좀 다르다”라며 “혁신형 비대위를 꾸려 두 세달이라도 고통이 따르는 변화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빨리 얻어올 수 있는 데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이어 “국민들은 새누리당이 충격적인 참패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자세 변화가 나오길 원했는데 지금 이런 것은 충격을 느끼는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며 “(회의 결과에 대해)다소 실망스럽다. 새누리당을 사랑하는 분들이 원하는 방향과도 다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전날 회의에서 ‘혁신 비대위’ 대신 비대위와 별개의 ‘혁신위’를 설치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차선책으로 혁신위를 만들었으면 혁신위가 전권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세부 방안을 마련해 지도부가 계속 실천할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며 혁신위가 실패할 경우에 대해 “그렇게 되면 정말 (당이) 망하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 혁신모임 소속의 하태경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정진석 비대위 체제에 대해 “비대위원장은 전국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전국위원회에서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경고했다.
 
하 의원 역시 홍 의원처럼 “당 수습책을 듣고 굉장히 절망감을 느꼈다”며 “누가 보더라도 새누리당이 반성의 의지가 없다”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친박계를 겨냥해 “혁신 비대위를 구성했을 때 가장 영향받는 사람들이 총선 참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 아니겠느냐”라며 “이런 분들은 혁신 비대위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고, 그런 분들의 의사가 반영되고 있다는 의심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정 원내대표에 비대위원장까지 겸직시켜 권한이 집중된 데 대해 “원유철 원내대표가 저항에 부딪친 것이 원유철 비대위로 가려고 했기 때문인데 지금하고 똑같다”며 “혁신위에서 아무리 좋은 안이 나와도 비대위에서 통과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혁신위원장 영입에 대해 그는 “실질적인 권한도 없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라며 “비대위원장이 지금 최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산하에 있는 자문기구 혁신위원장은 더더욱 영입하기 어렵다”고 거듭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 원내대표의 결정의 비대위원장직 겸임에 대해 “당의 혁신을 최우선 과제가 아닌 부차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 뿐 아니라 지난달 19일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직을 사퇴했던 또 다른 새누리당혁신모임 소속 의원인 김영우 의원 역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 원내대표의 결정의 비대위원장직 겸임에 대해 “당의 혁신을 최우선 과제가 아닌 부차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계파 이기주의와 공천 추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 된다”며 “혁신 비대위가 당의 체질과 운영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대로의 평온함과 안락함이 지속된다면 나중에는 손도 못 써보고 가라앉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말 그대로 새누리당의 비상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 출범할 혁신위원회 위원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명진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윤리위원장까지 이날 SBS TV ‘3시 뉴스브리핑’을 통해 “지금 새누리당은 누가 봐도 (혁신이) 안 된다. 혁신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이어 “지금 새누리당 사람들은 우리는 잘못없다. 총선 민의는 양당체제에 대한 국회심판이지 새누리당 심판이 아니다.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현재 새누리당 상황을 재차 비판했다.
 
인 전 위원장은 혁신 비대위가 아니라 비대위와 별도로 혁신위를 구성하기로 한 데 대해선 “국민이 혁신해야 한다고 하니까 눈가림으로 넘어가기 위한 수단”이라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있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무슨 일을 하겠냐”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그는 과거 유명무실한 혁신위에 그친 실패 사례들을 열거하며 “김문수 전 지사도 혁신위원장을 했지만 아무것도 못했다. 더민주도 김상곤 전 교육감이 물러나고 난 뒤엔 도로아미타불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인 전 위원장은 친박계를 향해 유독 날을 세웠는데 “혁신위를 만들면 총선 책임부터 물을 것 아니냐하는 부담에 우물우물 가는 것”이라며 “친박계가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자중하며 가슴을 치며 (총선 패배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인 전 위원장은 친박계가 당권을 노릴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건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이는 자기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파 이득을 지킨다는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 비박계 공세에도 정진석 ‘꿋꿋’…친박 우세로 판단하나
 
이 같은 당내외의 맹공에도 정 원내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친박계의 ‘보이지 않는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는 거냐.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맞받아쳤다.
 
오히려 그는 친박계를 향한 당내 비판에 대해 “계파 한 쪽으로 어느 일방만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함께 책임을 느끼고 다시 일어서자는 각오를 다져야지”라며 “친박, 비박 다 책임이 있는 거야”라고 일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친박 2선 후퇴론’에 대해서도 정 원내대표는 “친박계가 (전대에) 나와선 안 된다? 그건 친박계 전체를 책임론으로 등식화시키는 건데, ‘친박=책임’ 이런 등식엔 동의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이렇듯 ‘친박 책임론’을 원천 차단한 것 뿐 아니라 ‘꼼수 혁신위’ 논란이 일어난 데 대해서도 정 원내대표는 적극 반박하고 나섰는데, 이날 오전 종로 조계사에서 자승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책임 있는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문제, 혁신안을 마련하는 문제 다 중요하고, 어느 하나를 택일할 수 없는 문제”라며 “단순히 이번 총선 패배에 대해 미봉책을 땜질하는 혁신위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지금 얼마나 위중한 상황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며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우리 새누리당을 재창조한다는 그런 각오의 혁신위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12일 정 원내대표가 주재한 당 상임고문단 오찬 뒤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한다는 건 별로 적절치 못하다”며 “우리 당에서 애당심을 갖고 동기들하고 희노애락을 같이 한 사람 중에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이처럼 정 원내대표가 혁신위 구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가운데 새누리당 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이날 정 원내대표가 주재한 당 상임고문단 오찬 뒤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한다는 건 별로 적절치 못하다”며 “우리 당에서 애당심을 갖고 동기들하고 희노애락을 같이 한 사람 중에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비대위에 이어 혁신위마저 친박이 장악하고 있는 당내 인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만일 이렇게 될 경우 비박계의 반발은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박 전 의장은 전당대회 개최 시기에 대해서도 “정 대표가 7월에 한다고 보고했는데 나는 스피드를 빨리 빨리 하라고 했다. 전대에서 뽑힌 당 대표가 실권을 갖고 당을 개혁하고 해야지 외부에서 온 사람이 뭘 하느냐”라고 말해 ‘책임론’이나 ‘혁신’보다 ‘당 안정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앞서 중진연석회의에선 혁신위가 전대 전까지 혁신안을 마련할 것을 감안해 전대 개최 시기를 기존 7월이 아닌 8~9월쯤으로 늦추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당권 도전에 뜻을 두고 있는 친박계 이정현 의원을 포함한 친박계 대다수는 전대 개최를 앞당기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혁신위가 모양새만 갖춘 ‘용두사미’로 사그라질 경우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의 반발이 대거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한데, 이번 20대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다수 당선돼 경선에서 유리했던 원내대표 선출과 달리 전당대회는 원내 계파 구도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혁신위에서 어느 정도 새누리당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릴 혁신안을 내놓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점쳐지는데, 혁신위원장 인선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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